인간관계가 소중한 사람이 인간관계를 지키는 방법
요즘 인스타그램, 유튜브에 들어가면 자주 눈에 띄는 콘텐츠 제목이 있다.
'손절해야 하는 인간관계', '00 하는 사람과 손절해야 하는 이유'
이러한 콘텐츠들의 내용과 결론은 대부분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 나에게 노력하지 않는 사람 등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은 자꾸 받아주지 말고 과감하게 끊어내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이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10년 전부터 '이차단'이라고 불렸던 한 사람으로서 실제로 저런 삶을 살아왔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각자의 성향마다 다르게 행동하지만 나는 삭히고, 노력하고, 노력하다가 영 아니다 싶으면 서서히 멀어지거나 아니면 칼을 빼들어서 관계를 잘라내는 스타일이었다.
나의 이런 가치관과 성향은 내가 쓰는 글에도 묻어날 수밖에 없다. 나를 실제로 오랜 시간 옆에서 겪었던 사람들보다 나를 글로서 먼저 알게 되거나, 실제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내 글을 여러 편 읽은 사람들은 나를 '차단' 그 이상으로 '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1년 전 즈음, 제주살이를 시작하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그때 지인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한 사람 (이하 : P)이 있었다. P는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게 브런치 주소를 물어봤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P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평소 에세이를 좋아한다는 P는 100편이 넘는 나의 모든 글들을 3~4일 만에 완독을 하고 온 것이다.
그 자리에는 P를 포함해 S와 M, 두 명의 친구들을 더해서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들의 대화는 흐르고 흘러 각자의 '친구 관계'에 대해 말하게 됐다. 누구는 자신이 친구에게 받은 상처와 배신에 대해 말하기도 했고, 누구는 자신의 둘도 없는 베스트 프렌드에 대해 말하기도 했고, 또 누구는 정말 친한 친구와 손절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때 마지막으로 들은 S의 친한 친구와 손절한 이야기를 듣고는 다들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니 친한 친구와는 20년 넘는 세월을 함께했었고, 무엇보다 서로 직접적으로 싸우거나 상처를 주고 손절한 게 아니라고 했다. 전반적으로 각자 상황이 너무 좋지 않을 때 계속해서 작은 오해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S는 "앞으로 우리 연락하지 말자."라는 말을 하고 친구의 연락처를 차단했다고 했다. 마지막에 S는 그 선택을 후회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S에게 "맞아요.. 그 마음 뭔지 알 것 같아요.. 차단을 한 마음도 이해가 가고 차단하고 나서 후회한 마음도 이해가 가요. 만약에 차단을 안 했다면 연락이 뒤늦게라도 친구분한테 연락이 왔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면 친구분이랑 관계가 다시 회복됐을까요..?! 됐겠죠..? 이런 거 생각하면 차단이 답은 아닌데.. 참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P는 나의 이런 반응이 의외라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아.. 근데 슬기 씨 글 읽었을 때는 엄청 칼 같고 냉정하실 것 같았는데 가끔 보면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저번에 들려주신 전 남자 친구 이야기도 그렇고, 예전 친구분 이야기도 그렇고.. 다 딱딱 끊어내지는 않으시나 봐요."
이런 P의 반응은 그리 당황스럽지 않았다. 이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종종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P에게 '차단'에 대한 내 생각을 이렇게 말했다.
"아.. 제가 솔직히 차단을 잘 하긴 하지만.. 조금 잘 안 맞는다고, 섣부르게 아무한테나 막 하는 건 아니에요. 특히 저렇게 진짜 친한 친구였다면 더욱이요.. 함께한 세월이 있고, 그 세월 동안 제가 친한 친구로 지냈던 이유가 있을 거 아니에요..?! 분명 내가 좋게 봤던 면이 있고, 믿었던 부분이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 경우에는 저는 일단 제가 이 관계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요.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요. 그렇게 노력을 해보고 나서는 일단 기다려요. 그게 진짜 제가 하는 마지막 노력 같아요. 그 친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요. 내가 나중에 후회하기 싫어서요.
그러고 나서도 서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라면, 특히 제가 계속해서 상처를 받는다면 그때는 정말 끊어내요. 더 이상 그 관계로부터 다치지 않으려고요, 더 이상 아프기 싫어서요.
어떤 노력이든 차단이든.. 사실은 다 저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
인간관계에서 맺고 끊기가 확실하다고 하면, 특히 차단을 한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 사람은 정말 마음이 강한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인간관계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다르다.
나는 나를 잘 파악하고 있다. 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고, 정도 많고, 인간관계가 소중한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 마음을 보여주고, 내 감정을 다 쓴다. 그런데도 힘들다면 그때 끊어내는 것이다. 그래야 그다음에도 그 관계로부터 덜 흔들리니까. 그래야 그 사람으로부터, 그 감정으로부터 덜 아프니까.
역설적이지만 나는 인간관계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니다' 싶을 때는 더욱 확실히 잘라낸다. 그래야 진짜로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가치 있는 사람들이 보이고, 그들에게 진심을 다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야 나와 상대방, 서로에게 건강하고 의미 있는 인간관계로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는 이러한 인간관계가 평생을 간다거나 내 인생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언제든 인연은 멀어질 수도 있고, 어긋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도 살아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기에 계속해서 흐르고, 변하기 마련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 순간'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믿고, 응원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방법 중에는 어떤 게 옳고 그른지 그 기준은 따로 없다.
그저 자기 자신의 성향대로, 자신의 가치관대로,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대로 이끌고 가면 된다.
대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어떠한 소중한 감정을 나눈 관계일지라도 '나'를 잃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시고 느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겨주시는 공감과 댓글은 글 쓰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