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꿈에게 내 삶을 잡아먹히지 않는 방법

꿈이 있어서 행복하기도, 아프기도 해 봤던 모든 사람들에게.

by 기록하는 슬기


인간의 삶에 있어서 '꿈'이란 무엇일까.

'꿈'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고, 소리로 들리지도 않는다. 그렇다. '꿈'은 우리가 실감할 수 없는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 조차 모른 채로 내 머릿속, 마음속 그 어딘가에 깊숙이 박혀버린 것이다. 만져지지도 않기 때문에 꺼내어서 내 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도 없고, 아무리 나를 아프게 한다고 해도 꺼내어서 버리기도 쉽지 않다. 한 번 꿈이 생긴 사람은 그 꿈으로부터 해방되기 어렵다. (그래서 꿈의 낭만적인 별명 중 하나는 '운명'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을 살면서 진심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라고. 그만큼 한 사람의 인생에서 꿈을 만나는 일은 드문 일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에서 '꿈'은 축복도, 행복도 아닌 '불행'이라고. 꿈은 이룰 수 없기에 꿈이라고. 그래서 꿈은 끝까지 한 사람을 괴롭힌다고.



그렇다면 나에게 있어서 '꿈'은 무엇일까.

한때 나는 꿈이 있어서 다행인 사람이라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꿈은 잘 보이지 않는 까마득히 먼 곳에 있지만 그럼에도 꿈에서 뿜어져 나오는 반짝이는 빛을 쳐다볼 수 있어서, 그런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자체로 좋았다. 언젠가 그런 꿈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나를 어렵지 않게 그렸다. 그리고 그런 꿈과 나를 떠올리면 설레었다.


또 다른 한때 나는 꿈이 있어서 아픈 사람이라고, 슬픈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꿈은 내가 아무리 걷고, 뛰고, 다시 뛰어도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계속 멀어져 가는 꿈만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살짝 돌렸을 때, 그제야 너무도 차갑고도 무서운 현실이라는 눈보라가 불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눈보라 속에서는 멀리서 빛나는 꿈의 반짝거림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정말 불행한 건 그럼에도 꿈은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꿈은 나를 아프게, 슬프게 만들었다.




P20201215_171218000_ED82B1D6-1932-4544-9D30-48F45672F1FC.JPG 그럼에도 나는 꿈을 꾸는 사람, 꿈이 있는 사람이고 싶다. <사진 : 2020. 12. 제주 서귀포>



나는 10대부터 항상 어떠한 꿈을 꾸고, 품고 살아왔다. 그래서 원치 않게도 꿈이 내게 가져다주는 행복과 슬픔을 그 시간 동안 학습해야 했다. 그리고 20대 후반부터는 '꿈'에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무모한 선택들을 해왔다. 그 무모한 선택에 따른 여파는 생각보다 깊고 길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살아가고 있다. 문제가 하나 있다면 최근 4~5년은 그 어느 때보다 꿈이 알려주는 학습 난이도는 혹독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이다.


꿈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배워야 하는 기쁨과 슬픔을 온몸으로 익히는 과정을 반복하던 중, 질문 하나가 내게 찾아왔다. '왜 그런 꿈을 가지게 되었는지, 이렇게 힘들어하면서도 왜 꿈을 포기하지 않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질문은 단순했지만, 나는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네 꿈은 뭐야?'



각자가 갖는 꿈에 정답은 없다. 꿈은 어떤 직업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장면이 될 수도 있다. 어떤 명사가 될 수도 있고, 어떤 동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꿨던, 그리고 여전히 꾸는 꿈은 무엇이냐고?

내 꿈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며 사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찾은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글쓰기'였고, 그래서 나의 가까운 꿈이자 목표는 '글쓰기로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며 사는 것'이었다. 물론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책임진다는 것은 기본으로 꿈에 포함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꿈은 곧 지금 내가 사는 현실이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꾸는 꿈처럼 오늘 하루하루를 살았다. 하루하루 쌓은 어제와 오늘이 꿈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썼다. 그렇게 매일을 분명 꿈처럼 살았는데,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꿈처럼 오늘을 살수록 나는 아픔, 슬픔, 불행함을 자주 느꼈다.


나는 이 고통의 원인을 찾고 싶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꿈은 원래 그런 성질이라서' 그래서 당연히 아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꿈'이라는 한 글자로는 나의 아픔을 납득시킬 수 없었다. 동시에 이 모든 것에 대해 '꿈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나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내 꿈'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그 고통의 원인을 어렴풋이 나마 찾았다. 꿈에 다가갈수록, 현실을 꿈처럼 살수록 내가 불행했던 이유, 그 이유는 내가 꾸는 꿈에는 너무도 많은 꿈들이 있었다. 나는 내 꿈에 바라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꾸는 꿈에게 어떤 '대가'를 바랐다. 쉽게 말하자면 '너 내가 이만큼 좋아해 주는데, 너도 나한테 뭔가는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와 같은 생각으로 꿈을 대했던 것이다.


차라리 내 꿈이 '부자 되기' 혹은 '유명해지기'와 같이 간결했으면 덜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도 하고 싶고, 그 일로 인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도 끼치고 싶고, 유명해지고도 싶고, 돈도 벌고 싶었다. 내 꿈에는 동사가 유독 많았다. 내 꿈은 다른 꿈보다도 멀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깨닫고 나는 조금 더 간결하게 내 꿈을 정리하기로 했다. 물론 저기 위에 쓴 모든 동사들은 내 꿈이기에 어떤 것을 생략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이 중에서 내 꿈이라는 문장을 완성시킬 때 빠져서는 안 될 단어부터 찼았다.


'좋아하는 일'


다른 단어들은 다음 순서로 보낼 수 있다고 해도 '좋아하는 일'은 뒤로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나란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하는 일'부터 지키자고. 좋아하는 것을 위해 좋아하지 않은 일을 해야 한다면 그렇게 하자고. 삶의 진리 중 하나는 더 소중한 것을 얻기 위해, 지키기 위해 때로는 그에 못지않게 소중한 것을 놓아주는 것이니까. 그래야 더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니까.








덕지덕지 욕심이 붙고 붙어서 무겁고 기름지던 내 꿈을 조금 더 슬림하게, 담백하게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꿈을 길게 한 줄로 나열하기보다는 여러 줄에 걸쳐서 짧게 짧게 나열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첫째줄에 쓴 나의 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나는 나에게 뿌듯함, 보람과 같이 긍정적이고도 짜릿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 때문에 아프기 싫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미워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내 인생의 힘듦과 아픔을 '내가 좋아해서 내가 선택한 나의 꿈' 때문이라고 탓하고 싶지 않다.

물론 때로는 정말 그 꿈 때문에 힘들 때도 있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 꿈 때문만은 아니리라.

꿈이 아닌 것을 선택했다고 해도 삶이란 원래 내 계획대로,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으니까.



예전에 내가 썼던 글의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나는 꿈이 있어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라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다.

나는 꿈이 있어서 불행한 사람도, 행복한 사람도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늘 꿈이 있는 사람, 그 꿈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 그래서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내 인생과 내 꿈, 그리고 나를 건강하게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번 연도 안에 출간을 목표로, 요즘에는 출간 기획서 작성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부쩍 저 스스로에게 질문이 많아지는 요즘입니다.

그러면서 다시 '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꿈은 그 자체로도 빛이 나는 존재이지만,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배우는 모든 것들이 가장 빛나고 가치 있는 것들 같아요.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멀리서 여러분의 일상과 꿈을 응원합니다.


공감과 댓글은 글 쓰는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