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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비결

내 곁에 좋은 인연들이 있는 이유

by 기록하는 슬기


최근 3~4년 전부터 나의 인간관계는 상당히 단출하다. 워낙에 친구들과 미주알고주알 일상을 일일이 공유하는 스타일이 아닌 데다가 오랜 타지 생활과 해외 생활 덕분에 내 인맥은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현재 내가 '최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열 손가락 안이다. 그중에는 오래된 고향 친구 몇 명과 대학생 때부터 친했던 동생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세계 여행 중 알게 된 사람들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렇게 여행으로 알게 된 인연이 오래, 그리고 진하게 유지될 줄은 몰랐다.


언젠가 한 번 길 위에서 들었던 말이지만 내 기억에는 유독 오래 남던 한 마디가 있다.

'술친구는 술을 끊으면 사라지고, 여행 친구는 여행이 끝나면 그 인연도 끝이 난다.'라는 말.

아마 내가 술과 여행을 좋아하기에 이 말이 더 뇌리에 깊게 박혔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나도 위의 문장에 동의할 수 있는 경험을 겪었기에 듣자마자 공감이 됐었다.


특히 여러 번의 짧지 않은 여행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여행 인연이 생각보다 그리 질기지 않다는 것을 직접 느낀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한 경험을 한 후 나는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는 일부러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었다. 여행이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후에 매번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과 그들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확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한 기억 속에서 늦게까지 살다가 겨우겨우 나오는 한 사람이었기에 늘 그들의 시간보다 느릴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가장 늦은 사람은 나였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만 덩그러니 그 기억 속에 남겨져 있었다.



함께 했던 누군가보다 나의 시간이 느리게 간다는 것은, 그만큼 진심을 줬다는 것. 그런 진심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2018. 호주 퍼스>



그런데도 인연이란 참 알 수 없다. 그렇게 마음을 주지 않을 거라고 다짐 또 다짐했으면서 5년 전 길 위에서 결국 나는 무겁고도 진한 진심을 주었고, 받았다. 우연인지 운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하게도 나의 이런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지난 여행 속 한 페이지 안에서만 생명력 없이 기억되는 사람들이 아니라 나의 20대 중후반부터 30대인 지금까지 내 인생 속 여러 장에 없어서는 안 될 빛나는 주연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미 그들은 내게 있어서 한 줄, 한 단어로 감히 형용할 수 없는 의미가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에게 고마움과 소중함을 느끼는 순간 또한 손으로 꼽을 수 없다. 그럼에도 가장 큰 고마움과 소중함을 느꼈을 때를 굳이 말하라고 한다면, 누구보다 나의 삶과 꿈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고 지지해줬을 때이다.


3년 전, 나는 회사에 들어가지 않고 글을 쓰며 살고 싶다는 무모한 꿈을 품고 첫 발을 내딛었었다. 그때 그들은 두 손, 두 발 벗고 나서서 나에게 용기와 힘을 전해줬다.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들은 그들만의 방법대로 나에게 그 마음을 전달해줬고 나는 그 힘으로 견뎌낼 수 있었다.


그들의 응원은 내가 제주살이를 할 때에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무런 날이 아닌데도 카페에서 글 쓰는 나를 위해 고액의 카페 쿠폰을 깜짝 선물로 보내주기도 하고, 또 갑자기 내게 필요한 화장품, 책 등을 보내주기도 하고, 잘 챙겨 먹으라면서 마트 상품권부터 영양제까지 보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먼 곳에서 나를 보러 1박 2일이라는 시간을 만들어서 제주도로 날아와 주기도 했다. 제주까지 와서도 그들이 하고 싶은 일 1순위는 예쁘고 멋진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제주를 찾은 목적이자 이유는 나에게 맛있고 든든한 밥과 맛있는 안주와 술을 먹이는 것이었다.


나는 이렇게 친구들에게 넘치는 마음을 받을 때면 늘 사진을 찍어두고, 기록을 해뒀다. 그리고 SNS를 하는 친구라면 동네방네 "내 친구가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난 이런 친구를 둔 사람입니다!"하고 자랑을 하곤 했다.



생각보다 더욱 외롭고, 건조했던 제주살이였지만 당신들 덕분에 견뎠고, 웃을 수 있었다. <2021. 8. 제주 서귀포. 나를 보러 제주의 사계절을 찾아준 수지와 함께한 여름>



작년 이맘때 홀로 제주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갈 때 였다. 그때도 여행 인연인 내 최측근 동생이 제주도에 다녀갔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남겼다. 그러자 당시 제주에서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생 한 명이 나의 블로그를 봤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보면 언니는 주변에 언니를 좋아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친구가 한 명도 없는데.. 정말 부러워요.."


부러움보다는 뭔가 모를 씁쓸함이 더욱 묻어나는 그 동생의 얼굴을 보며 나는 대답했다.

"나도 오래된 친구들은 정말 몇 명 안 남았어. 어른되고 나서 친해진 건 거의 다 여행 때 친구들이야. 그리고 여행 때 친했던 친구들도 정말 더 많았는데 이렇게 완전히 가까워진 친구들은 정말 정말 극소수야. 나도 이런 친구들 만난 게 20대 후반이니까.. 지금 네 나이 보다도 더 나중에 만난 거야. 너도 앞으로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진짜 좋은 친구들 만날 수 있어!"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던 동생은 내 말이 끝나자마자 대뜸 이렇게 물었다.

"언니.. 도대체 어떤 여행을 해야 그런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음...."소리를 내면서 시간을 벌고는 솔직한 나의 생각을 전했다.

"글쎄.. 나는 여행을 오랫동안 여러 번 했었는데, 돌아보면 '어떤 여행'이 '어떤 인연'을 만나게 했는지를 결정했던 것 같지는 않아.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 속의 시간과 그 의미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확률은 높지. 하지만 나랑 비슷하다고 해서 오래가는 인연도 아니고, 또 오래가는 인연이라고 해서 좋은 인연도 아닌 것 같아. 그냥 나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고, 소중히 여기는 인연이 좋은 인연 같아."


그리고 나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이렇게 좋은 인연을 어떻게 만났냐고 그 비결을 물어본다면..

'마음을 아끼지 않고 진심을 표현하고 전했다는 것..!' 이거 같아.

왜냐면 내 마음을 먼저 표현을 해야 나의 이 마음을 고마워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알 수 있으니까.. 네가 저번에 그랬잖아. 전에 친구들은 다 너의 그런 진심을 이용하고 너는 상처만 받았었다고. 그래서 너는 이제 마음을 먼저 못 열고 표현도 못하겠다고. 아마 나도 그 상처가 무서워서 다가가지 않고 표현하지 않았다면 지금 내 주변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못 만났다고 생각해. 아니지, 만났었겠지만 모두 다 기억 속에서 조차 희미한 여행자 1, 여행자 2로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








동생에게는 자신만만하게 말했지만 누구보다 겁쟁이였던, 여전히 겁쟁이인 나는 그녀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가 그 질문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정답은 단 하나였다.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건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어떤 장소, 어떤 때, 어떤 환경 같은 것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머리보다는 마음이 가는 대로 솔직하게 나의 마음과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닐까.

내게 좋은 인연이라면,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분명 나의 그 마음과 나라는 사람 자체를 소중하고 특별하게 생각할 테니까.

그리고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닿은 운명 같은 이 인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할 테니까.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남겨주시는 따뜻한 공감과 댓글은 글 쓰는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되고, 희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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