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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먹고 전화하는 사람들의 마음

나와 닮은 당신의 외로움이 자꾸만 들리고, 느껴지는 이유

by 기록하는 슬기


온몸에 닿는 온도와 습도가 완연한 가을이라고 느껴지던 며칠 전의 늦은 저녁이었다. 작업을 모두 마치고 집에 들러 노트북을 내려놓고 집 주변 공원으로 운동을 하기 위해 나왔다. 운동복을 입고 산책하는 한두 명의 발자국 소리만 들리던 조용한 공기 속에 갑자기 날카로운 아이폰 기본 벨 소리가 울려댔다. 휴대폰 액정 화면 위에는 S의 이름 두 글자가 떠있었다. 이전에 몇 번이나 S의 전화를 받지 못했던 적이 있어서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라는 네 글자의 짧은 한 마디가 끝나기 이전에 휴대폰 너머로 S의 하이톤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언니! 왜 이렇게 전화하기가 힘든 거야~!"


S는 5년 전에 세계여행을 할 시절 알게 되어 지금까지 연락을 하며 지내는 동생이다. 우리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각자 서로의 생존을 위해 바쁘게 지냈다. 입국 후 나는 글을 쓰며 먹고살아보겠다는 다짐으로 글쓰기에 매진했고, S는 자신의 전공분야를 살려 열심히 입사 준비를 했지만 결국 합격 통보를 받지 못했다. 결국 S는 6개월 전에 새로운 분야의 직장에 취직했다. 그러면서 홀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S는 도대체 어떻게 지내는 거냐며, 왜 이렇게 연락하는 것도 어렵냐고 내게 서운함을 토로했다. 나는 그간 내가 바쁘게 지냈던 일들을 말하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S는 오히려 섭섭함이 더 폭발했는지 사실은 나에게 삐졌었다고 고백 아닌 고백을 했다.


"언니! 인스타그램 보니까 요즘 서울에 자주 오는 것 같던데? 어떻게 나한테 연락을 안 하고 갈 수가 있어? 나 솔직히 진짜 서운했어. 아니 좀 삐쳤었어. 언니한테 티는 안 냈지만..! 정말 나빴어~"


내가 알고 있는 S의 성격과 표현은 상당히 심플하고 직설적이기에 이렇게 시간이 흐른 후에 '서운했다', '삐쳤다'라고 말한 적이 없었다. S와 알고 지낸 지 언 5년이 지났지만 그녀의 입에서는 처음 나오는 표현들이었다. 그런 S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내가 연락을 못 받았고, 못 했던 자초지종을 세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렇게 S와 대화를 하던 도중 나는 평소와는 다른 S의 말투를 느낄 수 있었다.

"근데 지금 집이야..? 뭔가 네 말투가 살짝 소주 한 잔 걸친 느낌인데?"


그러자 S는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

"오..! 역시.. 족집게다 언니! 나 그냥.. 오늘 일 끝나고 집에 와서 혼자 소주 조금 마시고 있어.."


이 한마디는 지금까지 내가 들어온 S의 목소리와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뭐랄까. 내가 아는 S의 목소리에는 말랑말랑한 '감성'같은 것이 없었달까. 늘 S의 목소리는 또렷했고, 단단한 힘이 느껴졌었다. 그런데 오늘 S의 목소리는 내가 알고 있던 S의 것 같다기보다 꼭 과거의 나의 것 같았다.



P20201215_170525000_8896DAAE-6D33-4D94-B311-B7C802DE66D6.JPG 우리는 나와 닮은 외로움이 느껴지는 어떤 사람, 장소를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내겐 바다가 그렇고, 섬이 그렇다. <사진 : 2020. 12. 제주 서귀포>



지방에서 대학교를 다닐 때,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해외에서 혼자 생존을 할 때, 제주에서 홀로 살 때.. 하루의 일과를 모두 끝낸 후 방 안에서 혼술을 할 때 내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리 맛있는 안주를 준비해놓았다고 해도 혼술을 하면 사실 그 '맛'은 처음 한 입, 두 입이면 끝이 난다. TV나 유튜브에서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영상이 나온다 해도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술을 좋아하지만 평소 주량의 반만 마셔도 벌써 눈꺼풀이 무거워져 온다. 그리고는 아무런 소식 없는 휴대폰을 집어 들어서 여기저기 흥미 없는 구경을 한 후,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전화해도 될라나? 바쁘겠지? 전화해볼까? 말까?' 긴 고민을 한다. 결국 '에잇 모르겠다' 하며 통화 버튼을 누르던 그 장면 속 내 모습과 내 목소리가 보이고 들렸다.


한 마디로 S의 목소리에는 짙은 외로움이 묻어있다 못해 뚝뚝 흘러넘치고 있었다. 이제 막 사회 초년생으로서 가족도 친구도 없는 타지에서 홀로 생활을 하는 그 일상이 얼마나 고단하고 외로운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사실 사회 초년생이 아니라 타지 생활이 오래되어 익숙하다고 할지라도, 주변에 사람이 많다고 할지라도, 가끔씩 혼자 있을 때 감당할 수 없이 밀려오는 공허함과 외로움은 그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20살 이후로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줄곧 타지에서 살았던 나는 그 공허함과 외로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날 S의 마음이 더 잘 들렸고 느껴졌다. 아마 S는 내가 서울에 갔을 때, 촉박한 일정 때문에 자신에게 연락조차 못한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S는 그런 나에게 삐쳤다기보다 그녀가 외로움을 마주해야 했던 순간, 그 순간 속 모든 존재들에게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는 TV 속에 나오는 이름 모를 연예인을 보면서, 거리 위에 손잡고 지나가는 얼굴도 모르는 커플을 보면서, 누군가와 전화 통화를 하며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행인 1을 보면서도 괜스레 서운함과 서러움을 느끼곤 한다. 그때는 나를 둘러싼 나 이외의 모든 존재들이 다 나를 외롭게 만드는 존재 같으니까.


S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한참 동안 S의 목소리가 귓가에 머물렀다. 곧이어 과거 언젠가 들었던 취기 섞인 진한 외로움이 묻은 목소리와 그 외로움이 당연하다는 듯이 가만히 들어주고 안아줬던 누군가의 포근한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한때 나도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해 그 외로움을 알아달라고 전화기를 붙잡고 있던 사람이기도 했고, 또 다른 한때는 그런 외로움을 다 안다는 듯이 타인의 외로움을 들어주고 안아주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S도, 그리고 우리 모두는 수시로 전자, 후자의 역할을 번갈아 가며 전화기 너머로 서로의 외로움을 들어주고 알아주고 있지 않을까.






앞으로도 우리는 나의 표정, 나의 목소리, 나의 몸짓에서 느꼈던 외로움을 타인의 표정, 목소리, 몸짓에서 어쩔 수 없이 알아차릴 수밖에 없다.

외면하려 해도 나의 것과 너무 닮아있기에, 그것이 얼마나 아픈 줄 알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렇다.

어쩌면 우리의 외로움은 운명과 같은 것이 아닐까.

각자 다른, 하지만 너무도 닮은 외로움을 서로가 알아볼 수밖에 없는 운명.

그 외로움과 외로움이 만나야, 그 순간 서로의 외로움이 잠시 사라지는 그런 운명.

우리는 그런 외로움을, 그런 운명을 타고났나 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외로움을 미워해서도, 지우려고 해서도 안된다.

나의 외로움과 닮은 누군가의 외로움이 나를 찾을 것이고, 나를 알아봐 줄 것이고,

나도 그러한 외로움을, 그 외로움을 지닌 누군가를 알아보고 안아줄 테니.

그게 나와 당신, 우리들의 숙명이니까.








저는 외로움과 외로움이 만나면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고 믿어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당신과 나의 외로움이 사라진다고, 잊힌다고 믿어요.

그래서 저는 저의 외로움을 기록하고, 나눕니다.

나의 외로움을 만났을 때, 나와 닮은 당신의 외로움이 아주 짧게라도, 아주 희미하게라도 잊혔으면 좋겠거든요.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남겨주시는 따뜻한 공감과 댓글은 글 쓰는 저에게 가장 큰 힘이 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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