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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행자가 잊지 못하는 곳

내가 공항이라는 장소를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이유

by 기록하는 슬기


1~2개월 전부터 주변 지인들이 해외여행 간다는 소식을 자주 들었다. 코로나 19가 출현한 이후로 처음 떠나는 여행인 만큼 그들의 설레는 마음은 SNS에 그대로 전해졌다. 그들은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공항'에서부터 쉴 새 없이 짧은 사진과 영상들을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한때 내 주변 사람들에게 '여행'하면 '이슬기!'가 떠올려질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고, 세계여행을 떠났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포스팅을 보고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지인들이 올린 다양한 사진과 영상 중에서도 내 마음에 가장 큰 파도를 일으킨 사진은 바로 '공항 사진'이다. 2년 가까운 세계여행, 불과 반년 전까지도 제주살이를 하며 많이 오갈 수밖에 없던 곳은 공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어떠한 여행지 사진 보다도 공항 사진을 볼 때 어느 순간의 감성과 기억이 내게 물밀듯이 밀려온다. 얼마 전 지인 올린 제법 북적이는 인천공항 사진을 봤다. 그리고 나는 작년 3월 제주살이를 하다가 처음으로 육지를 오기 위해 찾았던 제주공항에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2021년 3월 첫째 주 금요일 이른 아침, 경기도 본가를 가기 위해 제주공항을 찾았다. 공항의 자동 출입문이 열렸고 내 몸집만 한 캐리어를 끌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KF 94 마스크 필터를 뚫고 어떤 진한 냄새가 코끝에 닿자마자 나도 모르게 마스크 속으로 혼잣말을 했다.


"어..? 공항이다.. 공항 냄새..."


이렇게 보면 조금 이상할 수 있지만 나는 매번 공항에 들어설 때마다 공항에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를 좋아한다. 정말 신기한 건 세계의 어느 나라의 공항을 가더라도 공항에서만 맡을 수 있는 그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요 근래 잊고 있던 공항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오자마자 내게 찾아온 감정은 '설렘과 아련함'이었다. 곧이어 코로나 19 전에 공항의 모습과 그 분위기가 내 머릿속을 뒤덮였다. 그리고 당장 내 두 눈에 들어온 현재 공항의 모습과 분위기를 보고는 내 감정은 금세 '아쉬움과 안타까움'으로 바뀌었다.


예전부터 나는 공항이라는 장소를 참 좋아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공항을 갈 이유가 없는데도 그냥 공항이 가고 싶다는 이유로 가끔씩 인천공항에 다녀오기도 했었다. 공항을 가는 목적이 다름 아닌 '공항'이었던 것이다. 나는 다른 곳에서는 보지 못하는, 느낄 수 없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과 그들의 에너지를 보고 느끼는 것이 좋았다.


누군가는 코앞으로 다가온 이별 앞에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이제 막 눈앞에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 긴장감을 온몸과 온 얼굴에 묻힌 채 걸어가고, 또 누군가는 세상에서 가장 익숙한 사람을 한눈에 알아보고는 큰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부르고 달려가 진한 포옹을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이곳이 공항이기 전에 매일 출근하는 자신의 일터이기에 아무런 감정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고, 다른 누군가는 어디선가 급한 일이 생겼는지 목에는 걸려있는 사원증을 휘날리며 한 손에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로 어딘가로 급히 뛰어간다.



아직도 나는 공항만 오면 마음속에 알 수 없는 감정 액체들이 일렁거린다. <사진 : 2022. 6 친오빠 출국길에 함께한 인천 공항>



공항에서 이러한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을 볼 때마다 내가 느꼈던 감정은 단순히 '설렌다', '슬프다', '바쁘다'와 같은 감정이 아니었다. 공항에 가만히 앉아 여러 사람들의 얼굴 표정, 언뜻 들려오는 그들의 대화 소리를 듣고 행동을 보다 보면 '살아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눈과 귀에 보이고 들리는 모든 사람들의 표정과 감정이 그대로 전달됐다. 유독 공항이라는 곳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솔직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숨길 수 없는 그들의 감정과 표현 속에 휩싸여 있으면 생생한 그 에너지들이 내게 그대로 다가왔다.


세계 어느 공항을 가도 비슷한 공항 냄새가 나듯이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솔직한 모습은 어느 공항을 가도 같았다. 아마도 공항이라는 곳은 '낯섦과 익숙함, 헤어짐과 만남'이 당연한 곳이기에, 공항을 갈 때만큼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고, 그 감정을 숨기려고 하지 않는 것 아닐까. 이곳을 떠나는 누군가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지금 보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하늘 아래로 사라져 버린 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이곳에 돌아오는 누군가는 낯선 곳에서 가장 익숙한 모든 것들을 그리워하는 법을 배우고 돌아왔기에...


그래서 나는 공항을 좋아했던 것 같다. 공항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들 속에서 내가 가장 생생하게 마주하는 감정은 '솔직함'이니까. 언제나 감정을 일부러 속이고 참고 숨기는데 익숙한 나 같은 사람도 공항에서 만큼은 솔직해졌었으니까.


중학생 이후로 한 번도 손을 잡아본 적도, 껴안아본 적도 없는 엄마와 공항에서 만큼은 헤어지기 전 손에 깍지를 끼고, 진한 포옹도 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 앞에서 기쁘든 슬프든 눈물을 흘려본 적 없는 내가 공항에서 만큼은 누군가를 꼬옥 안고, 그 품에 묻혀서 두꺼운 눈물을 쉴 새 없이 흘려보기도 했었다. 항상 "괜찮다"라고 말하는 내가 공항에서 만큼은 "괜찮지 않다고, 슬프다고, 아프다고.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솔직해질 수 있는 곳, '공항' <사진 : 2021. 9. 다시 제주로 돌아가기 위해 찾은 김포공항>



이번에 제주를 떠나기 위해 찾았던 그때, 유독 공항 냄새가 내 코끝에 진하게 와닿았던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나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 위해 떠났던, 그 감정이 좋아서 떠났던 여행을 가지 못하게 된 지 3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러면서 나는 일상이라고 불리는 이 시간 속에서 오래전부터 그랬듯이 나를 속이고 나를 숨기면서 나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견딜만해'라고 말했지만 '견디기 어려웠던'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힘들지 않아'라고 말했지만 '힘들었던'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좋아'라고 말했지만 '좋지 않았던'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아프지 않아'라고 말했지만 '아팠던' 순간들이 많았다.

나는 '괜찮아'라고 말했지만 '괜찮지 않았던' 순간들이 많았다.


이번에 제주를 떠나면서 찾았던 공항에서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예전에 공항에서 만큼은 숨기지 않았던, 숨기지 못했던 나의 감정을

나에게만큼은 보여줘도 된다고.

그게 어떤 감정일지라도 그 자리를 내어줘도 된다고.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바라봐 주시는 따뜻한 시선과 마음 덕분에 제 이야기와 제 꿈은 지켜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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