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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자가 4년 넘게 글을 쓰며 먹고살 수 있는 비결

포기가 쉬운 사람이 꾸준함의 아이콘이 될 수 있던 방법

by 기록하는 슬기


요즘 들어 제가 주변 지인들한테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너 정말 꾸준하다.."

이 말을 했던 친구 한 명이 며칠 전 저한테 이렇게 말하더군요.

"나는 네가 4년 년 전에 한국에 오고 나서 글 쓴다고 했을 때, 네가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글을 쓸 줄 몰랐어. 왜냐면 글 쓰는 일 자체도 힘든데, 그 일로 먹고사는 건 더 힘들잖아. 그래서 조금 하다가 말 줄 알았어.

게다가 영어 공부랑 운동도 아직도 꾸준히 하고 있고 있는 거 보고 나 놀랐잖아."


사실 저 친구 말이 맞아요. 저도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글 쓰는 생활을 할 줄 몰랐어요. 또 이렇게 글을 매일매일 쓰고 있을 줄은 더욱 몰랐고, 글로 수익을 창출해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어요.

그리고 사실 영어 공부는 호주에서 온갖 서러운 일 다 겪으면서 그나마 배워왔는데 잊어버리는 게 너무 아까워서 시작했죠. 그런데 어쩌다 보니 아직까지 하고 있네요.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몇 년 전에 휠체어를 탈 정도로 건강을 잃고 나서 재활로 시작했던 거였어요. 그 후에는 정말 살려고, 아프지 않으려고 운동했어요. 그때 몸이 아프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건지 제대로 겪었거든요.




3년 넘게 해오고 있는 운동. 이제 운동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왼쪽 사진 : 2019년 어느 날 운동 중에 / 오른쪽 사진 : 2022년 어느 날의 오운완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요, 저는 친구들에게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너무 어색하다는 거예요. 저 겸손 떠는 거 아니에요. 제가 어쩌다가 요즘 주변 사람들한테 '꾸준함의 아이콘'이 됐는지 조금 부끄럽기도 해요. 왜냐면 저 어렸을 때 엄마한테 가장 자주 들었던 한 마디가 뭐였는지 아세요?

"너 그거 또 하다가 말 거잖아~" 였어요.


자자, 이제부터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제가 기억하는 '중도 포기'의 역사에 대해 살짝 말씀드릴게요.

일단 저는 유치원도 다니다가 말았어요. 유치원 입학도 제 또래에 비해 늦게 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유치원 졸업 6개월 정도 남기고 제가 너무 가기 싫다고 했던 것 같아요. 이게 아마 제가 기억하는 첫 포기였을 거예요.


그 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피아노 학원을 5년간 다녔었어요. 엄마는 제가 피아노를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저는 그때 유행하는 컴퓨터 학원에 너무 가고 싶은 거예요. 사실은 매일 피아노 학원 가기 싫었는데 억지로 다녔던 거거든요.. 5년이란 시간이 아깝긴 했지만 과감하게 관뒀어요. 그런데 웃긴 건 그렇게 오래 배운 피아노를 포기하고 선택한 컴퓨터 학원은 3개월도 채 다니지 못하고 그만뒀다는 거예요.


제 포기의 역사는 스무 살 이후부터가 진짜예요. 재수까지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저는 바로 편입을 준비했어요. 삼수할 자신은 없고, 그렇다고 이 학교를 계속 다니기는 더 싫고요. 3월부터 바로 평일에 세 번, 저녁 8시에 토익학원으로 갔어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제 동기나 선후배 다해서 제가 편입 준비했던 거 아무도 모를걸요. 한.. 두 달 정도 다니다가 그만뒀거든요. 제가 생각보다 적응력도 좋고 친화력은 더 좋더라고요. 뭐 그냥 노는 게 너무 재밌었던 거죠.


그래도 제 성격상 속한 집단 안에서는 눈에 띄는 결과를 만들어야 직성이 풀려요. (성적표를 공개하기 전까지 특히 선배 오빠들이 한 명도 안 믿어주기도 했지만)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 성적으로 1~2등을 놓친 적이 없어요. 3학년 중반부터는 박물관학에 관심이 생겨서 그쪽으로 공부를 더 해볼까 기웃거리고 거리고 있었죠. 그렇게 4학년이 됐고, 어느 날 조교선생님이 따로 저를 부르셔서 7급 공무원을 준비해보는 게 어떻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제가 다녔던 학교가 국립대인데요, 국립대 학생 중에 학교 성적이 좋고 다른 어학 성적이 좋으면 지원할 수 있는 전형이 따로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바로 박물관학은 손에서 놓아버리고 그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죠.


당시에 저는 조기 졸업을 할 수도 있었는데 마지막 학기까지 수업 몇 개는 재수강까지 하면서 4년 동안의 총평점을 4.5점에 가깝게 만들었어요. 여름방학 때는 서울에서 2개월 동안 자취까지 하면서 토익만 죽어라 공부했어요. 이 두 성적이 그 학교 안에서 상위 0. 몇 프로가 돼야 그 공무원 시험 전형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었거든요. 기본 조건은 그렇게 몇 개월 고생해서 만들었고, 진짜 본시험 공부를 시작하기 직전이었어요. 노량진에 올라가느냐 마느냐 고민을 하는데 문득 '이게 나한테 맞는 걸까' 싶은 거예요. 그래서 한 달 동안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가 결국 그 시험 준비 안 하기로 했어요. 제 길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래도 이건 꽤 무거웠던 포기였던 것 같아요.


이외에도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중도에 포기했던 일은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거예요. 그리고 비슷한 결심을 하고 또다시 비슷한 포기를 했던 경험 또한 많았어요. 맞아요. 저 사실은 꾸준함의 아이콘이 아니라 포기의 아이콘이었어요. 포기하는 내 모습 자체를 마주하기가 싫어서 애초에 시작 자체를 안 했던 적도 있었어요.



나의 꾸준함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 브런치 작가 활동. 왼쪽 사진은 브런치 시작한지 얼마 안된 2019년, 오른쪽 사진은 2022년의 내 브런치 계정.


돌아보니 정말.. 꾸준히 카페에서.. 묵묵히.. 쓰고 쓰고 있습니다. 내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꾸준함은 글





그런데요, 처음부터 '끝'을 생각하고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게 뭐가 됐던지요. 솔직히 지금 저도 제가 꾸준히 해오고 있는 글쓰기, 운동, 영어 공부를 언제 그만두게 될지 아무도 몰라요. 만약 그만두게 된다면 어떤 이유 때문에 그만두게 될지, 그만두고 다시 어떤 것들을 하게 될지 그것도 몰라요. 더 나은 선택을 위해 하고 있던 것들을 놓아주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아니면 정말 어느 순간 단순히 너무너무 하기 싫어서 안 할 수도 있어요. 반대로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꾸준히 해나갈 수도 있어요. 본인의 의지와 상황, 모든 것이 다 맞아떨어진다면요.


문득 궁금해졌어요. 도대체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끝까지 한다', '끝장 본다'라고 말할 때 이 '끝'이란 과연 뭔지요. 생각해보면 제가 끝까지 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들도 다 이미 제 몸이 기억하고, 제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예를 들면 아직도 피아노 위에 두 손을 올리면 손가락이 알아서 제가 초등학생 때 좋아했던 가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처럼요. 돌이켜보면 어느 하나 쓸모없었던 시도도 포기도 없는 것 같아요. 지난 시간 속 도전과 포기, 그리고 또 다른 선택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주는 거니까요.


우리가 시도했던 모든 것들은 인생이라는 긴 과정 속을 채우는 짧은 과정들 같아요. 그러니까 조금 더 오래 한 과정이냐, 짧았던 과정이나 그 차이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나 스스로가 원해서 선택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 됐든지 그 당시에는 진심을 다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끝'이 나는 것 같아요. 누군가가, 사회가 정해준 끝보다도 나 자신이 '끝'이라고 외칠 수 있을 때까지는 해봐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나 끝까지 했다."라고요.






그러니 우리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을 멋대로 그리지도 상상하지도 말아요.

또 포기하는 내 모습? 보면 어때요.

다시 시작하면 되죠. 아니면 다른 거 새롭게 해 보면 되죠.

그래야 미련도, 후회도 없어요.


포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요 우리.

포기를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건 말 그대로 포기지만,

포기를 하고 다른 것을 한다면 그건 포기가 아니라 또 다른 '선택'일 뿐이에요.


우리 처음부터 꾸준함과 끝을 생각하지 말고요,

처음에는 처음에 걸맞게 우리 그저 '시작'만 생각하고 해 봐요.

그러다 보면 조금 더 오래 할 수 있는, 나에게 잘 맞는 '어떤 일, 어떤 장소, 어떤 사람이라는 진하고 깊은 과정'을 만나게 될 테니까요.









오늘도 저의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의 꾸준함은 제 글을 함께 느껴주시고, 읽어주시는 구독자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항상 고맙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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