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아직도, 여전히'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의 고백
며칠 전, 인스타그램으로 DM이 하나 도착했다.
계정명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묘하게도 낯이 익었다. 메시지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인스타그램을 지우고 몇 년을 살다가 정말 오랜만에 접속을 했고, 예전 인스타 친구들의 계정을 방문하던 도중 내 계정을 들어와 보셨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슬기님! 아직도 글을 쓰고 계시네요..! 소식을 듣지 못했던 동안 슬기님이 쌓아 올린 이야기들을 둘러봤는데, 정말 멋지세요!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그 계정에 들어가 보니 누군지 기억이 정확히 났다. 7~8년 전 즈음, '여행, 사진, 글'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알게 된 인스타 친구분이셨다. 어느 순간 그분의 계정은 사라졌었고, 나의 기억 속에서도 자연스레 없어진 분이었다. 반갑고 또 고마운 마음에 바로 답장을 드렸다. 분명 그분과의 대화는 훈훈하게 마무리가 잘 됐는데 뭔가 불편했다. 어느 한 문장이 까슬까슬하게 마음 한 구석을 찔러댔다.
바로 "아직도 글을 쓰고 계시네요..!"라는 한 문장이다.
난 솔직히 찔렸던 것이다. 요즘 나는 '내 글'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기장에 혼자 끄적이는 글, 블로그에 한 달에 한 번 올리는 일상 글을 제외하면 글을 쓰고 있지 않다.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일'에 쓰고 있다. 지금 내가 하는 주된 일은 글쓰기 클래스이다. 즉, 나는 나의 글이 아닌 타인의 글과 함께 하는 시간이 월등히 높다는 뜻이다.
어찌 됐든 '글'로 먹고살아보겠다는 내 목표는 한 달, 한 달 가까스로 이뤄내고 있다. 이렇게 한달살이로 먹고사는 일에 집중하다 보니 내 글을 쓰는 일은 뒷전이 되었다. 매 달 벌리는 수입은 다르고, 평균값은 예상할 수 조차 없다. 일이 많을 때는 일단 다 받아야 한다. 지난겨울, 한 번에 수입이 80% 줄은 경험이 있다. 매달 살얼음판을 걷는 프리랜서의 삶에 '내 글을 쓴다'는 작품활동은 사치처럼 느껴졌었다.
맞다. 여기까지는 내 핑계였다.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만들면 만들 수 있었고, 물론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쓰고 싶지 않았나 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글태기(글+권태기)였을 수도 있다. 완전히 마음이 떠나서 다시 보기 싫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내 옆에 가까이 두고 싶지는 않았다. 조금 멀리하고 싶었다. 솔직히 잠시지만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글로부터.
차근히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봤다. '나는 왜 글을 외면하고 싶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며 마음 깊은 곳 터널 안을 뒤져봤다. 아주 어두운 곳에 덩그러니 두 단어가 놓여 있었다.
'외로움' 그리고, '두려움'
우리는 사람은, 삶은 외로운 것이라고 말한다. 또 외롭기에 사람이라고, 삶이라고도 말한다. 글쎄. 여기서 내가 말하는 외로움은 조금 다르다. 시작도 끝도, 오로지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이 글쓰기라는 일이 주는 외로움이 극에 달했던 것 같다. 사람 관계에서 느끼는 외로움이 아닌, 일에서 느끼는 외로움이었다. 5년을 내리 네모난 하얀 페이지 위에 깜빡이는 키보드 커서, 온도도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 검은 선들을 바라봐야 했다. 이를 마주할 때마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해소되지 않은 채 점점 내 마음에 응고되어만 갔다.
외로움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갈 때 즈음 나를 뒤덮은 건 '두려움'이라는 감정이다. 글을 쓰는 일을 포함하여 세상에 많은 직업은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아야 한다. 글, 유튜브, 음악, 영화 등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카페, 음식점, 헬스장 등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 모두 타인의 선택과 관심을 받아야 먹고 산다.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나의 것을 만들고 또 만드는 일, 나의 것을 알리는 일, 그리고 기다리는 일이다.
30년 중반 넘는 인생을 살면서 '선택받은 횟수'보다 '선택을 받지 못한 횟수'가 현저히 많다. 그게 인생의 이치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한다는 그 사실은 어째 익숙해지지 않는다. 거절이라는 것은 늘 아프다. 그래서 두렵다. 매 번 내 글을 발행하고 맞닥뜨려야 하는 조회수, 공감수, 댓글수라는 숫자들. 그리고 준비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돌아오는 거절 메일들의 숫자들. 선택받지 못했음을 한 치의 오차 없이 알려주는 사실들은 꾸준히 누적되어만 갔다.
그럼에도 항상 덤덤하고 씩씩하게 지나가려고 했고, 실제로 그렇게 지나가진 적도 있다. 하지만 참 기억이란 것도, 감정이라는 것도 늘 제멋대로여서 내 마음대로 된 적이 없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어둡고 깊은 곳으로 박혀버린 거였더라. 그리고 그렇게 박히고 박힌 외로움과 두려움은 불쑥불쑥 나타나서 나를 하얀 백지 앞에서 멀어지게 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한다.
'작가란 누구인가? 글로 돈을 벌어야 작가인가? 책을 내야 작가인가?'
사람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 다르다. 몇 해전 나는 나 스스로에게도, 글 쓰는 친구들에게도 이렇게 말했었다.
"써야 작가지. 책 한 권 썼다고, 글로 돈을 번다고 작가는 아닌 것 같아.
계속 글을 쓰는 사람, 그 사람이 작가인 것 같아."라고.
그래서 그때 나는 돈을 벌지 못해도, 책이 없어도 당당했다. 쉼 없이 내 글을 써왔었으니까.
나는 이제 다시 당당해지고 싶다. '글 쓰는 사람'이라는 다섯 글자 옆에 내 이름을 자신 있게 쓰고 싶다. 오래전 인스타 친구분이 말씀해 주신 "아직도 글을 쓰고 계시네요..!" 한 문장 다음에 "저 요즘 사실 제 글은 잘 못 쓰고 있어요.."라는 자신 없는 답이 아닌, "글은 써도 써도 어렵지만, 그래도 여전히 글을 쓰고 있어요..!"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싶다.
물론 아직도 내 가슴 깊은 곳에 박힌 '외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제거하지 못했다. 아니, 아마 영영 제거하지 못할 것 같다. 이것은 내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사는 한 내내 마음속에 품고 가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서 생각을 조금 바꿔봤다.
이 감정을 내 가슴에 박힌 파편이 아닌 내 가슴 깊은 곳에 심어진 씨앗으로.
외로움과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내 이야기의 씨앗이다.
이 씨앗에 물을 주고 햇빛을 주면 꽃을 피워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그래서 나처럼 외로움과 두려움이 마음 깊은 곳에 심어진 사람들에게 향긋한 꽃으로 다가가 그 마음을 알아주고 싶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끝까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제가 다시 글을 쓰고 싶고, 쓸 수 있는 건 오랜 시간 동안 제 이야기를 안아주시고 느껴주신 독자분들 덕분입니다.
곧 새로운 브런치북 연재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