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할 때, 결혼할 때. 과연 그 '때'는 언제일까?
[30대 솔로, 자만추의 다짐]은 1편-2편으로 이어집니다.
1편인 오늘 글은 '2021년 30대 초반'이었던 제가 쓴 글입니다.
2편은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후, 30대 중반'이 되어 쓰는 글입니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 들리던 오후 4시, 조용한 방 안이었다. 그 고요함을 깨는 휴대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 위로는 '막내 이모' 네 글자가 띄워져 있었다. 이모는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는 아빠의 생신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전화하는 이모와 나는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근황 토크를 잘 나누다가 갑자기 이모는 목소리 톤을 바꾸더니 '팩폭+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슬기야. 근데 너 진짜 결혼 생각은 없는 거야? 너네 엄마 아빠도 지금 나이가 60이 훌쩍 넘었는데, 손자 손녀 얼마나 보고 싶겠어. 엄마 아빠가 겉으로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얼마나 너네 결혼하고, 아기 낳고 이런 모습 보고 싶겠니. 근데 너나 네 오빠나 둘 다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
평소에는 잔소리를 하지 않고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는 막내 이모한테 '결혼' 공격을 직빵으로 받고 나니까 머리가 띵해졌다. 그래도 결혼, 출산, 연애에 대한 잔소리 공격에 이미 굳은살이 꽤 두껍게 생긴 상태라 나는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이모한테 굵고 짧게 한 마디를 날렸다.
"아.. 이모! 근데 이모가 몇 살 때 결혼했지?"
맞다. 막내 이모가 결혼한 나이를 알고 일부러 물어본 거다. 이모는 조금 당황한 듯 웃으며 대답했다.
"나? 내가.. 음. 나 37살 때 했지."
"이봐~ 이모도 결혼 늦게 했는데 이모부 만나서 잘 살잖아. 다 짝이 나타나는 시기가 있는 거 아니겠어? 그럼 내가 약속할게. 이모가 결혼한 그 나이까지는 내가 결혼할게!!! 딱 두고 봐!!"
이모는 내 공격에 할 말이 없는지 가볍게 웃고는 수긍을 했다. 그리고 곧바로 이모는 '출산'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맞아. 사람이 다 때가 있지. 근데 이모가 늦게 결혼하고, 거의 마흔에 출산하면서 엄청 고생했잖아. 그때 깨달았어. 왜 다들 나이에 맞게 결혼하고 아이 낳는지. 아기만 아니면 늦게 결혼하는 건 아무 상관없다고 봐. 이모가 네 나이 때는 진지하게 독신으로 살려고 했었잖아. 어쩌다 보니 결혼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니까 아기가 갖고 싶고. 이렇게 나도 내가 변할 줄 몰랐어. 그러니까 너도 결혼할 생각 있으면 너무 늦게는 하지 말아."
내가 어렸을 때 이모가 혼자 산다고 선언해서 외할머니랑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런 이모가 이렇게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결혼, 출산'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하니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이건 반칙이었다.
내가 벙쪄 있는 틈을 타 이모는 넌지시 물어봤다.
"그래서 너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고?"
이모는 내 20대 시절을 생각하고 은근히 기대감을 갖고 물어본 것 같았다. 20대 때 이모들이 "요즘 남자 친구는 있어?"라고 물어볼 때마다 당연하게 "있지~"라고 대답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내 답을 듣고 이모의 리액션이 어떨지 예상됐기에 나는 더욱 오버해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물어보지도 않은 그 이유까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어우~ 이모! 당연히 없지! 뭘 물어봐 그걸. 나 요즘 진짜 글만 쓴다니까? '집-도서관' 이 생활의 무한 반복이야. 게다가 오늘 같은 날은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어. 글만 쓰고 있어..
그리고 이모. 나한테 지금 가장 절실한 건 내가 하는 일로 자리 잡는 거야. 누가 돈 못 버는 작가를 만나겠어.. 내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마음도 준비됐을 때 연애하고 싶어."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던 이모는 침착하게 입을 뗐다.
"맞아. 이모도 그렇게 생각해. 근데 슬기야. 모든 걸 다 준비하고 만날 수는 없어. 너도 이제 슬슬 네 나이 생각해야지. 너만 괜찮으면 언제든지 소개팅 시켜줄 수 있어. 이모부네 회사에 네 또래 괜찮은 친구들 있다더라."
'소개팅'이라는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며 나는 이모한테 말했다.
"이모.. 소개팅은 괜찮아! 나는 '자만추'니까. 자만추라고 알지?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하는 사람'의 줄임말. 소개팅같이 인위적인 만남을 안 좋아한다는 뜻이야. 내가 자연스러운 만남으로 남자 잘 만날 테니까 걱정 말아."
이모는 내게 가지가지한다는 듯이 코웃음을 한번 치고는 대답했다.
"자만추? 그럼 자연스러운 만남도 적극적으로 하란 말이야. 괜히 또 만나보지도 않고 다 싫다고 거절하지 말고! 넌 생각이 많아서 만나보지도 않고, 너 좋다는 사람 거절도 잘하잖아. 이제는 열린 마음으로 만나봐 봐. 알겠지? 아무튼 바쁠 텐데 얼른 할 거하고. 잘 지내고 있어. 소개팅 하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하고."
통화가 끝나기 직전 나는 이모에게 마지막으로 다짐하듯 말했다.
"이모.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비혼주의 아니야. 좋은 사람만 만난다면 결혼하고 싶긴 해. 지금 당장 막 결혼이 1순위가 아니어서 그렇지. 다시 한번 내가 진짜로 약속한다! 이모가 결혼했던 그 나이 전까진 한다! 결혼할 남자 생기면 바로 이모한테 말할게! 이모도 잘 지내고 있어~ 끊어~"
이모와 쫓기듯 전화를 끊고 글을 쓰려고 노트북 화면을 쳐다봤다. 내 눈에는 글과는 상관없는 '부모님 나이, 내 나이, 연애, 결혼, 출산'과 같은 단어들만 보였다. 한 해, 한 해 신체적으로 나이를 먹어가면서 '결혼, 출산'과 같은 문제에 대해 걱정이 하나도 없다면 거짓말이다. 특히 출산과 관련된 부분은 아무리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신체 나이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
불과 2~3년 전만 해도 주변에 어른, 언니, 친구들이 이런 잔소리를 내게 해도 겉으로든 속으로든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더 자신만만했다.
'결혼을 꼭 나이에 맞게 해야 하나?'
-> '결혼은 다 때가 되면 하겠지'
'아기를 꼭 낳아야 하나?'
-> '아기 뭐 낳고 싶으면 낳고, 말면 말고.'
'연애를 꼭 해야 하나?'
-> '난 지금 내 인생 하나도 버거워. 일단은 나한테만 집중할래.'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예전보다는 내 마음의 확신이 조금씩 줄어가고 있다. 문득 예전에 봤던 연애 유튜버의 영상이 떠올랐다. '결혼을 꼭 해야 하냐'고 물어보는 20대 후반 구독자에게 이렇게 답했다.
"20대 후반 여러분. 지금은 막상 주변에 '나 결혼 안 할 거야. 혼자 살아도 상관없는데?' 이런 친구들 많죠? 그 사람들 30대 중반 돼서 봐봐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에 80%는 다 결혼해 있을걸요? 그리고 결혼 안 하고 있는 사람들 중에 절반 이상은 솔직히 결혼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거예요. 그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요."
왠지 이 질문을 했던 20대 후반 구독자는 유튜버의 이 답변을 듣고 콧방귀를 뀌었을 것 같다. 예전에 나처럼. 하지만 이제 30대 초반인 나는 그 유튜버 말에 조금 더 공감이 간다. 진짜 솔직히 말하면 나이를 먹어가면서 결혼은 안 하게 되기도 하고, 못하게 되기도 한다. 한 줄로 설명할 수 없는 아주 복합적인 이유들 때문에.
그런데 역시나 대책 없는 30대 자만추 한 명은 오늘도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위로와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래. 지금은 진짜로 내가 남자를 '안'만나는 거야.
혹시 알아? 이모처럼 갑자기 37살 때 이모부가 나타난 것처럼 나한테도 어느 날 딱 누군가 나타날지?
아 맞아.. 저번에 S(친구)가 괜찮은 남자 있다고 소개팅 시켜주고 싶다고 했었는데..
어우!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가 무슨 소개팅이야 이 상황에..!
책상 앞에 앉자.. 글 쓰자. 슬기야. 지금 네가 당장 해야 하는 일부터 차근차근하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누군가를 만나고 있을 거야.
그래. 난 자만추니까..!'
이 글은 다음 2편으로 이어집니다.
2편은 '1편으로부터 4년이 지난 후, 30대 중반'이 되어 쓰는 글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 )
오늘도 제 이야기를 찾아주시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