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스 중독자는 어쩌다 책에 빠졌을까

'남'에서 '나'로 시선을 옮기는 방법

by 기록하는 슬기


요 근래 2주 동안 책 2권을 읽었다. 어제도 도서관에서 책을 또 빌렸다. 나에게 이 정도 독서량은 꽤나 유의미한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 책을 많이 읽을 것 같지만 평소에는 일 때문에 읽는 책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내 원고를 쓸 때는 의도적으로 다른 책은 읽지 않는다. 무의식에 내가 읽었던 표현이 나올까 봐.


뭐 이런저런 핑계가 길었다. 아무튼 난 다독가는 아니다. 나도 요즘 보통 사람들처럼 글자들이 빽빽하게 쌓여있는 책보다는 엄지 손가락 하나로 휙휙 넘겨버릴 수 있는 릴스를 더 많이 본다. 그런 내가 책을 가까이하게 된 계기가 있다.


바로 그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릴스'였다. 이번 연도에는 릴스를 만들어서 올리리라 다짐했다. 이는 작가를 포함한 모든 크리에이터들에게 숙명과 같은 일이다. 나를 알리기 위해, 내 창작물을 알리기 위해 대세인 콘텐츠를 만들어서 올리는 것. 문제는 어떤 콘셉트를 가지고 올려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P20260326_214251111_E991DFD6-4D8E-4E67-A362-1FE1812FCA9E.JPG 이 물음표를 몇 번이나 썼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맞는 레퍼런스를 찾기 위해 2월에는 주구장창 닥치는 대로 릴스만 봤다. 처음에는 분명 내가 만들 영상을 위해 본 릴스였는데 보다 보니 첫 의도를 망각해 버린 채 릴스에 푹 빠져버렸다. 15분 본 것 같은데 정신 차리고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때마다 내 기분은 똑같이 불쾌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불쾌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영상을 보면서 느낀 내 감정이다. 짧은 영상의 특성상 시작부터 강렬한 주제, 소재가 나와야 한다. 사람들이 다음 영상으로 도망가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서 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릴스는 과정을 다루기보다는 한 줄로 말할 수 있는 '결과'를 담는다.


릴스를 본 후, 내가 느끼는 주된 감정은 '부러움'이었다. 그 바로 뒤에는 '왜 나는 저 사람처럼 하지 못하는 거지?' 하는 자책이었다. 1시간 동안 집중해서 뭔가를 봤는데 머릿속에 남은 것은 거의 없었다. 아, 남은 것이 있다면 남들의 화려한 성공담, 외모 같은 것뿐이었다.


짜고 매운 음식을 매일 먹다 보면 질려서 슴슴한 음식을 찾게 되듯, 난 본능적으로 책을 찾았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지는 않아도 자주 빌려온다.) 한 장, 두 장 읽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소리를 내는 영상과 달리 글은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흰 종이 위에 검은색 글자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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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주 동안 읽은 두 권의 책. '남'에서 '나'로 시선이 옮겨졌다. (어쩌다 보니 모두 임경선 작가님 책)



그래서일까. 글은 읽는 도중에 내게 곁을 내어준다. 글을 읽은 나를 돌아보고,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준다. 글은 빨리 다음 장으로 넘기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한 페이지에 오래 머물러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려준다.


글은 다 읽고 나면 무언가가 남는다. 그 무언가는 때때로 다르다. 어느 날은 질문이기도 하고, 다른 어느 날은 명제이기도 하다. 공통점은 질문과 명제 모두 주어가 '나'라는 것이다. 글은 '남'의 이야기이지만 읽고 나면 '내'가 남는다. 내가 글을 읽는 동안 글의 곁에서 '나'를 주어로 생각하며 머물렀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요즘 내가 깊게 자주 고민하던 것들의 해답이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내 무거운 고민은 '나이와 경제적 능력'이다. 또 실생활 속에 고민은 '어떤 주제로 짧은 영상을 만들어야 할까?', '앞으로 난 어떤 글을 써야 할까?'이다.


이 고민들에 해답을 찾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끊임없이 릴스를 봤던 이유와 같다. 나는 내가 아닌 '남'을 봤다. 남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누군가 첫 책을 내고 일주일 만에 2쇄를 찍은 이야기, 36살에 아파트를 산 이야기는 내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없다. 남을 보면 불안함과 조바심만 들뿐이다. 나는 나를 봐야 한다.






아직 고민들에 대한 답을 한 줄로 명확하게 쓸 수는 없다. 다만 몇 가지 나의 문장은 찾았다.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이와 경제적 능력이 아니라, 내가 만든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난 남들에게 불안감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지 않다. 삶에 대한 이해와 동질감을 주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이 복잡하고 정신없는 세상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난 글을 읽고 글을 쓴다. 글 속에는 내가 있다. 글은 느리고 넓다. 세상이 말하는 보통보다 느린 나를 기다려주고, 보통과 다른 나를 품어준다.



글은 내 인생에 마지막 동아줄이다.

'이 동아줄을 놓치지 말고, 나를 놓치지 말고 살아가야지' 다시 한번 이 글 속에 다짐해 본다.










오늘도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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