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끝 무렵, 1년 전 내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
며칠 전 친구 H와의 약속을 위해 오랜만에 서울 강남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역에서 나오자마자 해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다. 어두워져 가는 하늘이 민망할 만큼 밝은 불빛이 나는 화려한 조명 아래 강남역 대로변, 골목골목은 작은 빈틈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각양각색의 코트와 점퍼를 입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평일이라도 오후가 되면 강남역은 많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평소보다 더 많은 인파에 오늘이 무슨 날인가 가만히 떠올려봤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불금' 그리고 '연말'이었다.
맞은편에서, 양 쪽에서 내 앞길을 막는 수많은 인파를 요리조리 피해 가며 약속 장소로 걸어가는데 어떤 가게의 간판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바로 작년 이맘때 강남역에서 친구들과 한파 속에서 힘들게 찾은 2차 장소, 그 2층 술집 간판이었다. H와의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해보지만 쓸데없이 이럴 때만 좋은 내 기억력은 2018년 12월 마지막 주 주말의 강남역에 있던 나를 기어코 데려왔다.
"뭐야, 뭐야! 와.. 진짜 신기해.. 우리 정말 서울, 그것도 강남에서 만났네?"
"그러니까.. 왠지 우리는 인도에서 만나야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아무튼! 이렇게 보니까 너무 좋다!"
인도라는 낯선 나라에서 만나고 그곳에서 헤어진 지 1년 4개월 만에 서울 강남역에서 다시 만난 우리들은 반가움과 약간의 어색함, 그리고 신기함을 얼굴에 잔뜩 묻힌 채 긴 인사를 나눴다. 나는 세계 여행 초반에 만난 이들을 그 어떤 동행들보다도 많이 아꼈고 좋아했다. 길 위에서 만나면 곧 헤어질 것임을 알기에 최대한 마음을 숨기지만 이들에게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함께하는 동안 나는 필터 없이 주책맞은 내 모습부터 진지한 내 모습까지 전부 다 보여줬었다. 굳이 어떤 사람인 척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편한 그들이 좋았었고, 그런 그들과 있는 내가 좋았었다.
우리가 다 함께 여행을 같이 한 기간은 2주였고 그 후 각자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떨어져 있던 시간은 1년 4개월이라 '조금은 할 말이 없지는 않을까, 조금은 어색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만난 지 단 5분 만에 증발해버렸다. 긴 인사 뒤에 우리는 꼭 우리가 자주 가던 인도의 한 레스토랑에서 처럼 태연하게 서로의 안부와 일상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은 곧 한국을 떠날 나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다.
"그래서 이제 호주는 언제 돌아가는 거야?"
"아마 세컨드 비자 승인받으면 바로 나갈 것 같아. 늦어야 봄..? 4월쯤에는 가려고."
"그럼 가서 하던 일 (바리스타) 계속하는 건가? 영어는 어때? 많이 늘었어?"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잘하지는 않지만, 직업을 갖고 살다 보니까 확실히 많이 늘은 것 같긴 해. 그래서 1년 더 살아보면 좋을 것 같아. 영어적인 측면이나, 경제적인 측면이나, 호주 카페에서 더 배우고 싶은 것도 있고.. 그리고 미래는 모르지만 아주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호주 쪽에 몇 년 살아보고 싶기도 해."
"아 그래? 생각보다 우리 정말 오랫동안 못 볼 수도 있겠네.. 우리 슬기 나가기 전에 짧게라도 여행 갔다 오자! 아니면 다음 달에 한번 다시 이렇게라도 보이자! 꼭!!"
"아오.. 발아파.."
아무래도 오늘 새로 개시한 부츠 때문인 것 같다. 약속 시간은 칼 같이 지키는 나인데.. 오늘따라 걸음걸이가 상당히 느리다. 한 발자국 움직일 때마다 새끼발가락이 아프더니 이제는 제법 부은 것 같다. 엉금엉금 걷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희미한 신음 소리를 내며 일단은 뛰기 시작했다. 결국 약속 시간에 10분이나 늦게 카페에 도착했다. 미리 자리 잡고 앉아있는 H의 모습이 멀리서부터 한눈에 들어왔다. 얼굴 상태를 유리창에 비춰 확인도 못하고 급하게 문을 열고 H의 테이블에 앉아 늦지 않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는 듯 더욱 가쁜 숨을 내쉬었다.
H와 나는 일 년에 1~2번 보면 정말 각별한 사이가 아니냐며 2019년이 되고 두 번째 보는 이 만남을 자축했다. sns를 통해 서로의 일상과 특별한 소식은 간간히 전해 들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알지만 자세한 내막은 또 직접 얼굴 보고 나눠야 제 맛이니까.
우리의 대화는 흐르고 흘러 우리의 공통 관심사인 '여행'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리고 H는 내게 말했다.
"나는 너처럼 여행 친구들 많은 거 참 부러워. 지금까지 각별하게 잘 지내는 것도."
"음.. 지금 내가 한국 들어온 지 딱 1년 됐잖아. 근데 여행에서 만나서 지금까지 그 인연이 잘 이어진 사람들은 정말 몇 명 안되더라.."
"아.. 그래? 나는 네가 여행에서 만난 친구들 이야기 sns 포스팅에서 읽었는데, 네가 엄청 그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아직까지 대부분 가깝게 잘 지내는지 알았어."
"그땐 진짜 나도, 그들도 진심이었지. 그중에 정말 오래된 친구처럼 가까운 사이로 발전된 인연도 몇 명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연락도 잘 안돼. 인연이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처음에는 나와 같지 않은 그들의 마음이 야속했지만 어쩌면 당연했던 것 같아.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같은 경험을 해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을 받고 다른 기억을 갖는데, 이미 여행이라는 시공간에서 나와 각자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나는 나와 같기를 바랐었어. 결국은 내 욕심이었지."
1시간 전, 이 카페로 걸어오며 내 기억이 기어코 불러왔던 사람들과 그때의 내가 다시 한번 뇌리에 선명히 떠올랐다. 이제는 담담히 말할 수 있게 된 나의 마음이 오늘따라 괜스레 아려왔다.
도대체 1년 사이에 내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나는 왜 호주를 못 가게 되었을까?
그렇게 아끼고 좋아하던 인연들과는 사이가 왜 멀어지게 된 걸까?
내가 호주를 못 가게 된 이유는 건강이 심각하게 안 좋아졌기 때문이다. 세컨드 비자는 지난 2월에 문제없이 빠르게 승인되었고, 계획대로 4월 출국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3월 어느 날 거짓말처럼 하루아침에 거동을 못 하게 될 정도로 몸이 아파졌고, 그 후 2개월 동안 투병 생활을 해야 했다. 아주 심각한 병은 아니었지만 이 건강 상태로 외국에 나가 일을 한다는 건 무리였다. 처음으로 내 의지나, 능력 때문이 아닌 건강 때문에 큰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게다가 내가 유일하게 돈을 벌면서 좋아했던 일인 바리스타를 이번 건강 문제로 인해 앞으로는 쭉 할 수 없게 되었다. 한국에서 바리스타로 약 4년, 프랜차이즈 카페 본사에서 2년, 호주에서 바리스타로 8개월 동안 일하며 훗날 나만의 카페를 차리고 싶던 꿈이 있던 내게는 결코 받아들이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애틋하던 사람들과 멀어진 이유는 다퉜거나 의견 충돌이 있었거나 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 더욱 무서운 것, '무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이 모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내가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약속 날짜를 잡으려고 시도했었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과 이제 막 한국으로 돌아온 나와는 지난 여행에 대한 여운과 그 온도가 달랐다. 약속을 잡으려고 하면 모두들 내가 느끼기에는 반응이 미지근... 아니, 차가웠다. 그 과정에서 홀로 지쳤고, 결국 나도 손을 놔버렸다. 나는 일부러 관심을 주지 않았다. 나와 다른 그들에게 자꾸 혼자만 상처를 받는 게 두려워졌다. 그리고 우리 대화방의 침묵은 점점 길어졌고, 깊어졌다. 내게는 존재감과 의미가 컸던 사람들이었던 만큼 그들과 멀어져 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바라보는 일이 생각보다 꽤 아프고 씁쓸한 일이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일찍 귀가해야 하는 나 때문에 H와는 그날 풀지 못 한 이야기보따리들을 한껏 남겨둔 채로 헤어져야 했다. 건물에서 나와 다시 강남역으로 걸어가는 길, 여전히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여전히 칼바람은 세차게 불어댔다. 꼭 1년 전 그날처럼.
강남역의 바쁜 거리도, 차가운 겨울바람도, 나를 스치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한껏 들뜬 표정마저 다 그대로인데,
내게 '1년 전 나'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흔히 말하는 '서른'이라는 나이에 들어섰기에,
혹은 1년 7개월이라는 긴 방랑을 마치고 돌아왔기에,
아니면 태어나 처음으로 거동을 못 할 정도로 몇 개월간 아팠기에,
그래서 계획했던 일들이 모두 한 순간에 무산됐기에,
그리고 긴 슬럼프에 빠졌기에,
결국 이 모든 일들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기에,
그래서 그런 걸까.
돌아보니 내게 2019년은 세계여행을 시작했던 2017년 보다, 호주에서 외노자로 살았던 2018년 보다,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고 아팠던 한 해였다.
사람이 가장 많이 배우고, 성장하는 시기는 '어려움'을 견뎌낸 후이다. 매일매일이 평온하고, 모든 일이 내 마음처럼 흘러간다면 우리가 그 후에 배우는 게 있을까? 우리가 말하는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려보면 '그 안에서 웃고 있는 나'의 모습은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그 후에 성장한 나'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가 어떤 것이든 배우고, 그 배움을 통해 성장할 때, 그와 함께 '고통'은 항상 함께 찾아온다. 아니, 그 고통이 전제 조건이고 그것을 견뎌낸 후에야 우리는 어떤 것을 얻는다.
2019년의 끝 무렵 나를 돌아본다. 2018년 12월 같은 자리에 있던 나부터 1년을 살아낸 후 2019년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나까지. 1년 동안 나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바꾼 내 모습이 낯설었던 것이 아니라 1년 동안 내가 모르고 있던 나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래서 낯설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잘 버틴 나의 모습을, 생각보다 약하지 않은 나의 모습을,
절망 속에서 희망을 기어코 찾아내는 나의 모습을 마주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그런 나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1년 동안 치열하게 견뎌내 주어서 참 고맙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좋은 모습으로 계속 낯설어지자고."
오늘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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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렇게 끝까지 버텨낸 삶을 스스로 잘 기억해주고 알아주는 일이 연말에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2019년의 나에게 힘들었겠다고, 또 고맙다고 말해주면 더욱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2020년은 그 힘으로 더 멋지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2019년, 모두 각자의 삶 속에서 버텨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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