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겪은 인종차별 (feat. 뒤통수 맞은 썰)

인종차별의 완전한 피해자는 있을까

by 기록하는 슬기

작년 3~4월 즈음 전 세계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뉴스를 통해,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종종 들려오는 기분 나쁜 소식이 하나 있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뉴스 제목은 '미국에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폭행당한 한국인'이었고, 동영상 제목은 '호주 마트에서 당한 코로나 인종차별'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관련해서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소식이 없지만 특히나 이런 '인종차별'과 관련된 이야기는 더욱 내 미간의 주름을 짙게 만들었다.


그런 소식들은 지난 장기 여행과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에 당했던 인종차별을 떠올렸다. 사실 1년의 첫 번째 워킹홀리데이 비자 만료 후 세컨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쓰러 다시 호주로 돌아가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것은 인종차별이었다. 특히 호주에서도 인종차별이 심하기로 유명한 곳인 서쪽 도시 퍼스(Perth)에서 지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 보면 크고 작게 당했던 인종차별 때문에 무서웠고 불안했던 적은 셀 수 없다.


인종차별 중에 정말 어이없고 억울한 일을 꼽으라면 잊을 수 없는 날이 있다. 2018년 11월, 토요일 저녁 9시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세컨드 잡인 레스토랑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고 퇴근하는 길에 친한 동생 S를 만나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내가 일하는 가게가 있는 동네는 여러 레스토랑과 술집이 몰려있는 곳이라 특히 주말이면 젊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날도 길거리에 사람들은 많았고, 일을 마치고 힘 없이 걸어가는 나와는 달리 이미 많은 사람들은 술에 취해 에너지들이 넘쳐 보였다.


때마침 4m 정도 떨어져 있는 맞은편 횡단보도의 신호등은 초록불로 바뀌었고 많은 사람들이 건너편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때 수많은 인파 속에서 어떤 여자(A)와 (호주 원주민 '에보리진'으로 보이는) 동생 S와 살짝 부딪혔고, S는 바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여자도 괜찮다며 쿨하게 웃어줬다. 3초 정도 지났을까. 그때 내 바로 옆에서 '퍽!!!' 소리가 들렸다.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곧이어 또다시 '퍽!!!!!!!'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바로 S의 뒤통수를 누군가가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치는 소리였다. 그 손의 주인공은 조금 전에 S와 살짝 부딪혔던 그 여자(A)와 그녀의 친구(B)였다.


그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그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의 생각을 했다.

'지금 바로 싸워야 하는 건가? 아니면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까? 아 아니지.. 여기는 무조건 백인 편 아니면 못해도 자국민 편만 들어준댔는데.. 그럼 어떡하지? S가 많이 놀랐을 텐데..'

나보다 더 당황한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S와 그녀들을 번갈아가며 쳐다봤다. 그런데 뜬금없이 A가 나를 와락 껴안으며 잔뜩 꼬인 혀로 "미안해~ 내가 좀 취했어.. 미안해 정말~ 오늘 토요일 밤이잖아? 이해해줄 거지? 미안해~"라고 말하는 거 아닌가.


그 행동에 너무너무 화가 났지만 그래도 사과하는 그녀를 보니 더 크게 일을 만들지 말고 빨리 이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응 알겠어. 근데 너 나한테 사과할 게 아니라 내 친구한테 해야지."

곧바로 A는 S를 와락 껴안으며 나에게 했던 것 그 이상으로 "sorry~~~"를 연발해가며 S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녀의 친구 B 또한 1m 떨어진 곳에서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보냈다.


딱 봐도 그들의 눈동자는 이미 술이든 약이든 뭔가에 취해있는 것 같았다. 이쯤에서 마무리를 하고 가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 S와 나는 억지로 그녀들과 웃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 앞에 섰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또 "퍽!!!!!"소리가 났다. 동시에 내 뒤통수가 아파왔다. 이번에는 A도, B도 아닌 그저 옆에서 바라만 보고 있던 그녀들의 친구 C가 내 뒤통수를 치고 깔깔거리며 도망가고 있었다. 그 순간 그전부터 꾹꾹 참아오던 인내심은 사라져 버렸고, 나는 3m가량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보고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그녀들을 향해 단전에서 끓어 나오는 한국 욕을 뱉어냈다.

"XXXXXXXX-----!!!!!!!!!!!!!!!!"


어떤 외국어일지라도, 하나도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있다. 바로 '욕'이 그렇다. 내가 그들을 향해 한 한국 욕을 듣고 A가 (그 무리 중에 행동대장으로 보인다.)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건 전쟁이다.. 3:2... 쪽수로도 밀리고 딱 봐도 등치로도 밀린다. 게다가 쟤네는 여기 나라 사람. 하나 더하면 저들은 현재 제정신이 아니다.'

내 모든 오장육부들은 쪼그라들고 있었지만 겉으로는 씩씩거리며 다가오는 그녀의 두 눈을 끝까지 쳐다봤다. '에라이. 이렇게 된 이상 얻어맞더라도 S가 맞은 뒤통수 두 대, 내가 맞은 뒤통수 한 대는 꼭 갚아주리라.'



P20180716_091013474_01AA77F7-F550-4E96-A833-455E693CDF8A.JPG 한때 내 호주 생활은 이렇게 먹구름 가득가득했었다.



A의 술 냄새가 느껴질 만큼 바로 코 앞에 도착했다. A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본능적으로 나는 A의 손을 내 왼손으로 막았고, 그녀는 내게 알아듣지 못할 영어(욕)를 내뱉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내 뒤에서 누군가 쑥 나타나더니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막았다. 190cm 가까이 되어 보이는 장신의 한 백인 남자였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A와 그 친구들은 갑자기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그 백인 남자는 우리에게 한 마디를 했다.

"너네 괜찮아?"

"어? 어.. 우린 괜찮아. 고마워."

그는 허리를 숙여 우리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쿨하게 제 갈 길을 갔다.


우리도 일단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S는 눈물이 터졌고, 이렇게 말했다.

"아, 진짜 너무 억울해. 언니. 여기는 신고를 해도 경찰도 다 동양인 편 안 들어준다며. 만약에 그 백인 남자 안 왔으면 걔가 언니한테 또 어떻게 했겠어. 너무 억울한데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게 더 화나."

그런 S에게 나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나도 그때까지도 놀란 가슴을 억지로 부어 잡고 있었지만 S를 겨우겨우 달래줬다.

"그래도 여기서 끝난 게 다행이야. 갑자기 그 백인 남자가 와서 다행이기도 하고.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됐을 수도 있고. 뭐.. 억울은 하지만.. 어쩌겠어.. 우리가 남에 나라에 살고 있고, 동양인이고.. 뭐 그러니까 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 찾아가서 복수를 할 수도 없고. 이쯤에서 끝난걸 다행히 생각하자.."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한다. 길을 지나가다가 뒤통수를 얻어맞은 경험이 처음이라 잊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때 느낀 억울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 상황이 잊히지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알게 모르게 눈치 봐야 했고, 주눅 들어야 했던 적은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눈에 띄는 사건을 겪어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 스스로도 차별받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다.


그리고 백인이 나타나자마자 도망가는 그 여자아이들(에보리진)은 어쩌면 나보다도 더 인종에 대한 차별에 대해 더 억눌려있고 젖어있는 상태인 것 같았다. 지나가는 동양인에게는 시비를 걸고,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하면서 백인이 나타나자마자 갑자기 도망가는 그 모습이 지금은 조금 안쓰럽게도 느껴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도 엄연한 피해자인 것은 맞으니까. (하지만 그때 맞은 뒤통수의 고통과 모욕은 잊지 못한다. 얼마나 세게 때렸으면 S는 뒤통수에 커다란 혹이 생겼었다..)


2년이 더 지난 지금도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갔던 그 친구들을 떠올리면 화부터 나지만, 도망가는 뒷모습에서 그동안 나의 모습도 어렴풋이 보인다. 당연하게 당했던 차별과 그리고 무의식 속에 나도 누군가를 향해했던 차별이.


그리고 생각해본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차별의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이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무의식 중에 '인종'이라는 무의미한 단어와 '차별'이라는 무가치한 단어 속에 속아 살고 있는 건 아닌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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