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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비아빠 Oct 24. 2024

트라우마

쓰러진 슬비

강현은 심부름센터로 돌아와 희중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흠... 흥미롭군. 강현, 너의 생각이 제대로 적중한 것 같아"

 "저도 놀랍네요. 그는 분명 제약사 로비스트나 영업사원 같았어요"

 "백신을 맞자 말라 그랬다고?"

 "네. 마지막에 알아서 하라고 얼버무리긴 했지만요"

 "그렇다면 회유 가능성도 조금은 있겠군"


 강현과 희중은 '면책조항'과 '입막음'이란 단어에 주목했고, '백신을 맞지 말라'는 말에 회유 가능성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GPS는 잘 부착해 놨겠지?"

 "네, 차량 하부 깊숙한 곳에 부착해 놨습니다. 하지만 수신거리가 만족스럽진 않아서 아쉽네요"

 "어쩔 수 없지. 수신거리 안에 나타나면 그때 움직이자고"


 강현은 무언가 조금씩이라도 진행이 된다는 것에 아주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슬비가 쓰러지고 나서 보름 동안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동안 강현의 마음은 하루하루 무너져 내렸다. 담당의를 만날 때마다 슬비의 상세는 차도가 없었고, 오히려 한두 가지씩 증상이 악화되고 있었다. 강현은 눈을 감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숙사 사감에게 연락받고 1시간 30분 거리를 미친 듯이 달려갔다. 하필 그날따라 폭우가 내려 마음이 급한 강현의 마음을 더욱 못살게 굴었다. 고속도로에 물이 고여 차량의 속도가 줄어들 정도로 억수 같은 비가 내렸고, 강현은 그렇게 달렸음에도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응급실 입구로 달려갔다. 병원 출입구는 군데군데 폐쇄되어 있었다. 코로나19 방역정책으로 입구를 한 곳으로 제한했고 온도측정과 마스크 착용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고 있었다. 강현은 잠옷바람으로 뛰쳐나왔기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다.


 "멈추세요!"

 "무슨 일이죠? 제 딸이 응급실에 있어요. 빨리 가봐야 합니다!"

 "기다리세요. 마스크 착용부터 하세요"

 "일단 딸부터 봐야겠습니다! 이럴 시간이 없어요!"

 "안됩니다. 마스크 착용부터 하시고 체온측정 후 출입기록 하셔야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강현은 기가 막혔다. 한시가 급한데 들어가질 못하게 막고 있었다. 강현은 싸우기보다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근처 편의점을 찾았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강현이 들어서자 점원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마스크 착용하셔야 합니다"

 "네, 그래서 마스크 사러 왔어요. 아무거나 빨리 주세요"


  1분 1초가 아쉬운 강현에게 세상은 냉정하기 짝이 없었다. 자식이 쓰러져 응급실에 누워있는 아비의 다급한 마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마스크착용 여부만 따지는 세상이 너무나 한심하게 느껴졌다.


 "세상이 정말 이상해진 것 같아. 모든 일에 마스크가 우선이라니... 미쳐 돌아가고 있어"


 빙글빙글 돌고 돌아 20분이나 시간이 지연되어 슬비를 만날 수 있었다. 강현은 응급실 입구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있는 슬비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슬비야... 아빠 왔어 일어나 봐. 집에 가자"


 강현은 슬비를 보면서 너무나 놀랐다. 단순 감기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병원에 가보지 않았던 슬비였고,  아파서 누워있는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슬비는 그만큼 건강했다. 어렸을 때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강현이 힘들어할 만큼 활동적인 아이였다.


 "슬비야... 아빠 왔어. 아빠 똥강아지 얼른 일어나..."


 강현은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그렇게 슬비 옆에 앉아만 있었다. 1시간 지났을 뿐이지만 며칠이 지난 듯 강현의 시간은 멈추어 있었다. 강현이 도착한 지 약 4시간이 흐르고 갑자기 슬비가 눈을 떴다.


 "똥강아지 일어났어? 이제 집에 가자~"


 강현이 말하는 순간 슬비는 온몸이 경직되며 눈을 껌뻑이고 입이 돌아가며 입이 악다물어지면서 전신으로 경련이 번져갔다.


 "슬비야! 왜 그래! 슬비야!"




강현은 눈을 떴다. 슬비는 정신을 차린 것이 아니라, 항경련제의 약효가 떨어지면서 발작을 일으킨 것이었다. 이 모습은 강현의 뇌리에 강한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다.


 강현은 눈을 감을 때마다 슬비가 경련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이 떠오를 때면 온몸이 식은땀에 젖곤 한다. 눈만 감으면 슬비가 경련하기 전의 눈빛이 떠오르고 경련하는 슬비 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면서 강현은 너무나 큰 죄책감을 느꼈다.


 "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짐작도 못할 것이다. 경련 이후 정상으로 돌아왔다면 잊을 수 있을까? 강현이 어둡고 깊은 슬픔의 터널의 입구에 서 있음을 암시라도 하듯 슬비의 경련은 강현이 겪을 모든 슬픔의 시작이었다.


 "어쩌다가 우리 슬비에게 이런 일이..."


 강현은 슬비가 태어난 후 슬비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강현 부부가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느 부모에게나 마찬가지겠지만, 강현에게 슬비는 특별했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식은 특별한 법이다. 강현은 주위에 결혼하지 않은 후배들에게 말하곤 했다.


 "만약 천사가 있다면, 아마 자기 자식을 두고 하는 말이야. 너희도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가 너희의 천사야" 


 강현은 슬비를 너무나 사랑했다. 매일 안아주고 업어주고 함께 시간을 보냈다. 슬비는 중학생이 되면서도 강현과 함께 시간을 보냈기에 사춘기라 할 만한 시간은 없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가족 여행을 다녔고 캠핑을 다녔다. 그것이 강현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이슬비, 이번엔 캠핑이야"

 "알았어"


 슬비는 사춘기가 만발할 시기에도 강현이 가자면 군말 없이 따라다녔다. 강현은 너무나 감사했다. 슬비가 건강함에 감사했고, 모난 곳 없이 성장해 줌에 감사했다. 너무 뛰어나지도 않았지만 뒤쳐지지도 않음에 감사했다.


 "죗값... 나는 복수하려는 게 아니야. 그것들이 지은 죄에 대한 합당한 죗값을 치르게 하려는 거야"


 강현은 마음을 다잡았다. 강현의 모든 것을 앗아간 그놈들이 반드시 처벌받도록 만들고 싶었다. 만약 그놈들이 처벌받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피해 간다면, 강현 스스로가 처절한 응징을 가할 생각이다.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만들고야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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