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에서 전 조합원에게 특별 조합비 10만 원을 내라고 했다. 특별조합비는 조합의 파업 등 특수한 필요에 의해 거두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명목이 이상했다. 위원장이 연맹 위원장에 출마하는데 필요해서 특별회비를 거둔다는 것이었다.
위원장이 상위 연맹 위원장에 당선이 되면 조합원들에게도 결국 좋은 일이니 돈을 내라는 말이었다.
조합원들은 노조위원장의 위세에 질려 있었다. 노조위원장에게 밉보이면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그는 회사 누구와 패거리가 되어 인사를 주무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쥐꼬리 봉급에 먹고살기도 팍팍한 말단 직원들에게 10만 원은 적은 돈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들은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삥을 뜯기는 판이었다.
게다가 돈을 계좌에 입금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지사별 조합원 명단을 만든 후 돌려가며 서명을 받아서 누가 특별조합비를 내고 안 내었는지 한눈에 드러나게 해서 반대하지 못하도록 미리 쐬기를 쳤다.
〈그림 by 유예린〉
부모 없이 할머니를 봉양하며 살고 있는 막내 여직원이 마지못해 머뭇거림 끝에 서명하는 것을 보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 직원은 그 돈으로 반찬이며 전기세며 빠듯한 살림을 챙길 터였다.
"우리 부서는 그런 특별조합비 못 내겠어" 내가 큰 소리로 말하자 서명을 받으며 돌아다니던 노조 간부가 좋은 게 좋은 거지 뭘 그러느냐고 싫은 내색을 했다.
"위원장이 개인 영달을 위해서 출마를 하는 것인데 조합원들에게 돈을 내라는 게 말이 돼요? 그리고 우리 조합원이 2천 명이 넘는데, 한 사람당 10만 원이면 특별회비가 2억 원이나 되는데 국회의원 출마하는 것도 아니고 2억 원을 모금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내가 언성을 높이자 부서 조합원들이 모두 한 마디씩 거들었다. 억울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든 것이었다.
할머니와 사는 그 여직원도 한 마디 했다.
"저번에 IMF 때 직원들 시험 쳐서 시험 못 본 직원 수백 명이 해고될 때 위원장이 시험장 돌아다니며 시험 잘 보라고 그러시데요. 노조위원장님이면 직원 해고를 막을 생각을 해야지 안 잘리게 시험 잘 보라고 그러면서 돌아다니더니.. 연맹 위원장 출마해서 당선되면 산하 노동조합들 돌아다니며 뭐라 하실지 궁금하네요.."
같은 부서에 근무하는 이 차장도 나를 거들었다. "나도 그런 돈 못 내니까 위원장한테 얘기 해!"
노조 간부가 얼굴이 벌게져서 사무실을 나갔고, 우리 부서에는 특별조합비를 낸 직원은 노조위원장 줄 타고 들어왔다고 알려진 직원 한 명 밖에 없었다.
전국적으로 특별조합비를 내지 않은 조합원들은 우리 부서 조합원들이 유일하다고 했다.
정기 인사철을 두어 달 가량 앞두고 있었다. 인사부 차장이 전화를 해서 태백으로 곧 발령 날 거라며 준비하라고 했다. 같이 일하는 이 차장은 영월로 갈 것이라 했다.
"아니! 내가 이 지사로 발령받아 온 지 1년 막 지났고, 차장님도 알다시피 내가 지금 대학에 복학해서 밤에 공부하고 있는데 갑자기 오지로 가라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립니까?"
할 말이 없어진 인사계장이 짜증을 내며, "인사라는 것이 발령내면 가는 거지 말이야... 이렇게 미리 전화라도 해 주면 고맙게 생각해야지.. 인사를 하는데 본인하고 상의라도 하라는 거야 뭐야!!"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옆에 차장은 영월로 발령이 났고, 나도 태백은 아니지만 가가멜이 근무하는 곳으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돈을 걷으러 다니던 노조간부는 쾌재를 불렀다.
그 지사를 떠난 다음 날 할머니와 사는 그 여직원이 밤에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노조 간부가 우리 부서 직원들에게 저녁을 살 테니 전부 모이라고 해서 갔는데요,
노조에 협조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잘 봤을 거라며 떠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 사람한테 노조 간부들이 시장 똘마니들 보다도 못하다고 그랬거든요, 근데 그 사람이 하도 행패를 부려서 술자리에서 벗어나 전철을 타려 플랫폼에 들어가 있는데, 거기까지 쫓아와서 행패를 부리는 거예요.."
억울함에 울먹거리는 소리에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그리고 잘못된 것에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친구 두 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