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대접은 처음 받아요.
좋은 사람을 만나는 행복
공공기관에서 25년 넘게 일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 속에는 일을 대하는 태도도 배우고, 좋은 사람을 만나 사귀는 즐거움도 있었다.
직장인들끼리 통하는 말 중에는 재미있고 의미 있는 말들도 많다.
"아무리 좋은 상사도 없느니만은 못하다"
"일에 실수를 하면 살아 남아도, 의전에 실수하면 살 수 없다"
"직급이 깡패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입사할 때부터 계속 들어서 어느새 몸에 새기게 되었다.
직장인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 의전과 관련된 일들이 많다. 회의장이나 행사장의 좌석 배치에서부터 상사와 부하직원의 엘리베이터 타고 내리는 순서, 차를 탈 때 상사에게 차 문을 열어주거나 하는 모든 과정이 의전이고 그런 일을 잘 못하면 질책을 당하거나, 미움을 사고, 심하면 좌천을 당하기도 했다.
나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의전 문제로 고생을 한 적이 많았다. 이사회의 좌석배치 때문에 임원에게 몇 달간 미움을 받기도 했고, 상급기관에 업무보고를 할 때 좌석배치가 잘못되었다고 회의가 중단되고, 상급기관 사람들이 퇴장해 버려 죽을 고생을 겪기도 했다.
임원들 중에는 의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서 부하직원들이 입는 옷매무새부터 결재를 받으러 임원 사무실에 들어갈 때 인사하는 각도며, 술자리에서 술잔 주고받는 문제까지 까다롭게 따지는 분들이 많았다.
어떤 분은 술 병에 마지막 남은 한 잔을 드리면 화를 내면서 싫어하기도 했다. 정답이 없으니, 상사의 취향을 빨리 알아서 처신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렇게 의전이 몸에 밴 내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임원 한 분이 새로 부임해 오셨는데, 그 분과 함께 일하면서 의전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그분은 차 문을 부하들이 열어주는 것을 절대 못하게 막았다. "그 정도야 뭐"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놀라운 일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 임원은 운전기사에게 사람대접을 해 주었다. 어느 곳에 가든지 운전기사와 한 상에서 밥을 먹고 늘 상대를 존대했다.
그 기사분이 한 번은 우리들에게 "오랫동안 기사로 일하면서 사람대접받아보긴 처음"이라며 눈시울 적시는 것을 봤다.
운전기사도 직원이지만 임원들을 모시고 다니면서 임원들이 식사를 하는 동안 눈치껏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독 밥을 먹거나 그도 어려우면 굶기 일수였다.
예를 들어 임원이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 운전기사의 음식값을 임원이나 수행 직원이 따로 챙겨주지 않으면, 주머니 사정으로 그 식당 음식을 먹기에 부담스러울 수 있었다. 그러면 인근에 싼 식당을 찾아 급히 식사를 하고 차에서 대기하거나, 마땅한 식당이 근처에 없으면 식사를 걸러야 했다.
그 운전기사분이 전에 모시던 임원 중에는 아주 늦도록 술자리를 즐기는 분이 있었는데, 술자리에서 숙소까지 아주 가까운 경우에도 반드시 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시겠다 해서 밤늦도록 차 안에서 대기하며 몇 년을 고생을 한 적도 있었다.
무슨 일이든 처음 몇 번이야 남에게 잘 보이려고 그럴 수 있겠지만, 처음 부임하면서부터 퇴직하실 때까지 모든 직원들, 청소하는 분들까지 사무실로 불러 차를 대접하며 존중해 주시는 모습은 권위적 의전에 젖어있던 나에게 문화적 충격이었다.
그 이외에도 새로 부임한 임원을 위해 새로 만든 폼 나는 명패를 치워 없앤 일이며, 간부회의 때 임원들에게만 차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고, 회의 참석자 모두에게 동일한 대접을 해 달라며 차를 끝까지 마다하셨던 일, 간부들에게만 특별식이 제공될 때에는 그 음식을 마다하고 일반 직원들과 같은 줄에 서서 식사를 하시는 등 조직 내에 있는 일상적인 차별들을 민감하게 인식하고 바꾸려는 감수성이 높으셨다.
의전이란 상사 또는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어, 그분이 평안하게 본래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임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