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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Feb 03. 2020

진짜 동호회는 곤란해.

회사에서 직장 분위기를 좋게 만들자며 동호회를 권장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동호회 중에서 인기가 높은 동호회는 단연 높은 분이 참여하시는 동호회였다. 임원이 등산을 좋아하면 그리 몰리고, 탁구를 좋아하면 탁구장이 미어터졌다. 동호회의 종류를 불문하고 마무리는 반드시 술자리로 이어졌다.

한 번은 클래식 음악 동호회가 크게 인기를 끌었다. 아침이면 사내 방송에서 클래식 음악이 흘렀고, 직원 중 한 명이 전담자가 어 일주일에 두 번씩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 직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알고 보니 임원의 자녀가 피아니스트였다. 좀 과하다 싶었던 것은 임원 자녀의 연주회 일정이 정해지자 부장들에게 엄청난 양의 입장권이 할당되었다.  부장들이 그 입장권을 어떻게든 떠넘기려 애쓰는 모습은 딱해 보였다. 그리고 연주회가 있던 날, 그동안 클래식을 좋아한다던 그 많은 직원들이 연주회장에 동원되어 졸며 지루해하던 모습은 볼만 한 풍경이었다.


나도 동호회를 활성화한다는 회사의 방침에 맞춰 동호회를 만들고자 했다. 동호회 이름은 "그냥 술 동호회"라고 붙이고 사내 전산망에 회원을 모집하는 글을 게시했다. 술을 두병 이상 먹는 사람은 대주주, 한 병 정도 먹는 사람은 소액주주로, 한 병 이하는 개미로 하되, 동호회비로 술값의 일부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공동 부담하는 것으로 했다.  순식간에 20여 명이 가입신청을 했다. 총무부에 동호회 지원신청서를 제출한 다음 날, 총무국장이 나를 불렀다.

"당신, 회사를 우습게 여기는 거지?"

"무슨..... 말씀이신지?"

"술 먹는데, 회사더러 돈 대 달라는 거 아니야, 그게 회사 놀리는 거지 뭐야!"

"그게 아니고요. 제가 보니 우리 회사 동호회는 전부 술 동호회 같던데요.  동호회 활동비 가지고 다 술 먹는데 쓰지 다른데 쓰는 것 못 봤습니다." 

총무국장이 픽 웃다가 다시 정색을 하곤 술 동호회는 절대 지원 못한다고 선을 그었다. 알량한 동호회비를 받고자 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우리 동호회  회원들은 동호회 인정 여부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고, 한 달에 한 차례 주주총회를 열어 맛있게 술을 먹었다.


진짜 동호회가 있었다. 밴드 동호회였는데, 자기 돈을 털어 악기를 사고 주말에 회의실에 모여 연습을 했다. 동호회가 만들어진 후 1년 정도 지나자 밴드 동호회 회원들은 본사 대강당에서 공연을 추진하기로 결정을 했다. 연말에 여러 행사가 많은 대강당을 쓰려니 어려움은 있었지만 결국 허락을 받았다.

동호회 회원들은 공연을 위해 준비를 많이 했고,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외부 사람들도 초청해서 볼만한 공연을 만들었다. 공연 날이 되자 휴가를 내고 나온 회원들이 공연장에 풍선을 일일이 불어 붙이거나 늘어놓는 등 공연장 분위기가 나도록 열심이었다.

나도 공연을 알리는 포스터를 만들어 게시판이며 엘리베이터 안, 식당 앞 등에 붙여 공연을 알리려 애썼다.


공연은 오후 6시 30분부터였다. 동호회 회원 가족들이 꽃다발을 준비해 왔고, 회원들은 엠프 등 장비를 점검하고 소리를 맞추는 등 리허설이 바빴다. 그런데 이상했다. 공연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공연을 보러 오는 직원이 거의 없어 공연장 분위기가 썰렁했다.  결국 직원 몇 명과 가족들을 위한 공연이 되고 말았다. 동호회 회원들은 서로를 위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는  못했다.

확인해 보니 내가 공들여 회사 내 여러 곳에 붙여놓았던 안내 포스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총무부 직원들이 전부 제거를 한 것이었다. 다음 날 총무부에 가서 따지니 그리 말했다. "광고물을 붙이려면 총무부 승인을 먼저 받아야지!"  총무국장이 퇴근하다 엘리베이터 안에 붙어있는 공연 안내 포스터를 보고 총무국에서 승인한 도장이 안 찍혀 있다며 한마디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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