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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한승 Feb 07. 2020

두부 한 모로 행복해지는 법

좋은 사람 만나는 행복

일터에서는 회식을 해야 할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좋은 성과를 내거나, 오래 고생한 일이 마무리되어  칭찬과 격려, 위로나 질책, 조직의 소통 등 많은 일이 회식자리를 통해 이루어다.


그 취지가 어떠하든 임원이나 고위 관리자가 참석하는 회식은 일반 직원 입장에서 고역인 경우가 있었다. 많은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높은 분이 대화 주도권을 잡고 여러 시간 꼰대 이야기를 늘어놓아 직원들이 정색을 하고 별로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에 집중해야 할 때는 회식이 곧 연장근로였다


회식 자리가 초상집 분위기로 돌변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높은 분들이 직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특정 직원을 계속 질책하면서 "그러려 면 나가라" "앞으로 일 안 시킬 테니 그냥 앉아만 있어라"라는 식으로 말을 하면 그 직원은 울거나 수치심으로 주눅이 들었다.

  

음식의 종류도 중요했다. 높은 분이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특정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는데 모르고 음식을 주문했다거나 하면 눈치 없는 사람으로 찍히게 마련이었다. 한 번은 한정식을  싫어하는 상사분이 "당신들 나 엿 먹으라고 한정식집 예약한 거지?" 하면서 그냥 가버리시는 바람에 한여름에 냉동창고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나는 술자리와 관련해서 119(한가지술 1차, 9시까지)니 뭐니 하는 이야기들은 상사들이 주도하는 술자리에 필요한 제안이라고 생각한다. 일반 직원들끼리 마음이 통해 이루어지는 술자리는  다음 날 일에 지장이 없을 정도면 남이 간여할 일이 못된다.

 

내가 전에 함께 일했던("모셨던"이라고 하면 그분이 불편해하실 것이다) 임원은 다 좋은데 육고기를 안 드시는 분이어서 회식 때면 곤란한 일이 생겼다. 늘 시장 모퉁이 허름한 횟집이나 해물탕 같은  음식점에 가니 직원들은 가끔 삼겹살이나 닭볶음탕 같은 기름진 음식을 먹고 싶어 했다.   


한 번은 우리에게  경사가 있었다. 여러 직원이 오래 고생해서 외부 기관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었다. 우리 기관 전체가 기뻐할 일이었지만 특히 그 일을 담당하고 고생했던 우리는 같이 격려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그날 저녁 회식이 있었다. 그런데, 당연히 회식에 참석할 것으로 여겼던 임원이 바쁜 일이 있다며 우리끼리 회식을 하라고 하셨다. 경사가 있어 하는 회식에 임원이 참석해서 격려를 해 주셨으면 하는 서운도 있었으나, 그분이 안 계신 틈을 타 육고기로 회식을 하자 했고 직원들은 환호했다.  회사 인근 보쌈집을 찾아 소주몇 순배 돌 왁자하니 대화가 활발해지며 웃음이 넘쳤다.  


그때 우리 임원분이 손에 두부 한 모를 들고 회식장소에 들어섰다.

"난 두부 한 모만 있어도 된다고, 회식장소 신경 쓰지 말라고 여러 번 말을 해도, 내 눈치를 보고  횟집만 자꾸 가려고 해서, 일부러 늦게 왔지요, 두부 사 가지고 오느라 좀 늦었어요" 하셨다.

직원을 배려하는 그 마음이 전해졌다. 두부 한 모로 전 직원이 행복해진 저녁이었다. 직원들이 보쌈을 안주로 소주를 나누는 동안 그 분은 두부 한 모와 김치로 회식을 즐기셨다. 회식이 끝나 임원 전용 차량에 빼곡히 직원들이 탔다. 같은 방향 직원들은 늘 임원의 전용차를 얻어 타는 영광을 누렸고 운전기사도 행복했다.

 

즘은 직원들과의 회식도 많이 줄었다. 젊은 직원들은 부담스러운 상사나 선배와의 술자리를 당당하게 거부한다. 당연한 일이긴 해도 한 편 아쉬운 점도 있다. 선배들이 오랫동안 일하면서 겪은 애환이나 경험, 선후배 간의 유대감은 술자리에서 더 활발하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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