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아내의 향기와 손길이 남아있는 모든 것들이 내게 의미가 깊은 것들이 되었다.
아내가 직접 담근 김치는 나에게 보물처럼 귀한 것이 되어, 장롱 맨 깊은 곳에 있는 금붙이처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김치냉장고 귀퉁이에 깊이 늘 남아 있었다.
"죽은 사럼은 사랑하기 쉬운 얼굴을 하고 있데요..." 딸아이는 무심히그렇게 말했었다.
아내의 물건들..... 손수건, 가방, 악세사리, 옷, 신발, 이불, 그릇, 화분, 편지, 사진, 잡다한 메모.... 아이들에게 남겼던 편지와 일기.... 그 모든 것이 건드릴 수 없는 성물처럼 새록거리며 내게 의미를 속삭였다.
생각의 왜곡일까? "사랑하기 쉬운" 얼굴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든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생쥐처럼 까만 눈동자로 나만 바라보고, 나는 사망신고며, 상속이며, 불편한 것들을 처음 맞선처럼 생뚱맞게 상대해야만 했다.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 있었을까... 난 돌아 볼 여유가 없었다.. 세상 모든 것들이 나에게 낯 설고 피하고 싶은 상황극 같았다. 아이들은 처음 물에 빠진 고양이처럼 그저 허우적 거렸던 것 같다..
아내가 남긴 김치로 찌게를 끓일일 때 용기가 필요했다. 기억을 더듬어 생각하고 또, 또, 생각했었다.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볶고,.. 후추를 뿌리고.... 김치를 잘게 썰어 넣고.. 파와 청양고추와 된장과 김치 국물을 더하고...
맛은 기억과 추억일 뿐..... 그것이면 다였을까... 아내가 남긴 육아일기 같은 것이었을까... ?
김치찌게는... 내게 쥐똥나무 꽃 향기처럼 깊고 품위있고 시큼하고 사랑이 넘치는데, 이름은 쥐똥나무 처럼 그런 것일 뿐이었을까..
아내의 시큼하고 깊은 그 김치찌게 맛이 사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