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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라 하나 주세요, 소주두요.

by 셀레스테 Mar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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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8년째 단골로 다니는 김치찌개집이 있다. 신입사원 때부터 같은 지역에서 일해온 덕에, 내 직장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하는 단골집이다. 시작은 자의는 아니었다. 당시 근무하던 곳의 상무님께서 그곳의 김치찌개와 찬을 좋아하시던 탓이다. 둥그런 테이블에 앉으면 주문도 전에, 숭덩숭덩 큼직한 생고기가 들어간 진득하고 새큼한 묵은지 김치찌개, 벌겋고 찐한 양념의 무생채, 맛소금간이 간간한 콩나물무침이 나온다.

김치찌개가 끓기를 기다리며 먹어야 할 것은 ‘짤라’다. 콤콤하게 소 내장 부속류를 삶은 수육 같은 것인데, 짤라를 시키면 먼저 나와 찌개가 끓고 있는 누런 양은냄비 위에 내장이 담긴 허연 플라스틱 접시를 턱하고 얹어주신다. 어차피 잠시 뒤, 이 소주 도둑이 해할 내 건강 앞에서, 플라스틱을 가열했을때의 환경호르몬이니 뭐니 같은 건 아무래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 집을 짤라집이라고 부르는데, 처음 갔을 때부터 짤라를 먹은 것은 아니었다. 점심 메뉴 선택 권한이 없는 스물 다섯의 사회 초년생이, 집에서 늘상 먹는 김치찌개집을 일주일에 두번도 넘게 다니게 된 건 이곳의 무생채를 특히 좋아하셨던 상무님 덕이었는데, 상무님께서 짤라는 좀처럼 시켜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번도 저 미지의 메뉴는 시킬 생각을 않으시기에, 내장류를 찾아먹지도 않으면서 어느 때인가,
“저 짤라라는 건 뭐에요? 이름이 왜 짤라에요?”
궁금한 것이 하나도 없는 물음, 의도가 뻔히 보이는 의뭉스러운 말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원체 청렴하고 대쪽같은 성정으로 유명하셨던 상무님은 기어코 퇴사 직전까지, 짤라는 시켜주시지 않으셨다.

어느새 사회초년생을 벗어나며, 나에게 메뉴 결정권한이 생겼고 넉넉지는 못하나 결제를 할 수 있는 지갑사정이 생겼던 것과 또 가장 주요한 이유로 낮술을 좋아하는 상사들을 연거푸 새로이 만나게 된 탓에 이제 그 김치찌개 집을 갈 때마다 식전 메뉴로 짤라를 필히 시킬 수 있게 되었다. 야들야들하고 쿰쿰하게 삶아진 벌집양, 홍창, 곱창 따위를 맛소금에 한 입, 쌈장에 통마늘을 얹어 한 입 먹고 나면, 소주 한 잔, 또 한 잔. 어느새 잔뜩 열이 올라 끓고 있는 시큼한 김치찌개는 뒤로 하고, 옅게 벌개진 앞사람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할 이야기가 있을 때마다 이곳을 갔다. 일 때문에 속이 상한다던지, 사람 때문에 속이 상한다던지, 일 때문에 즐겁다던지, 사람 때문에 즐겁다던지 할 때마다 번번히 짤라집을 찾았다. 사실 직장 생활의 거의 모든 부분이 저 네가지 범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짤라집은 핑계다. 그러니 나 누구 때문에 속상합니다, 일이 잘 안돌아갑니다 하며 냄비 위에 툭 놓아지고 그 온기로 서서히 더워지는 짤라처럼 속 얘기를 툭 내어놓고 데워놓고 싶을 때마다 가는 것이다.

호쾌하고, 유쾌하고 멀리서도 가까이서도 즐겁게 바라보던 상사 분의 인간적인 고뇌와 또 속 시끄러운 회사일과, 기어코 그 고민들을 발 밑에 쌓여가던 소주병과 함께 성정마냥 호탕하게 비워내기로 하셨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모두 그 짤라집에서였다.

”점심 약속 없으시면 짤라집이나 가실까요?“
”아, 무섭게 왜 그래.“

월요일 아마도 이런 대화가 사무실에 들린다면, 없는 선약이 있노라 외치겠다고 조용히 다짐하지만 이윽고 아는 체를 하는 조용한 미소와 함께, 생고기를 한 뭉텅이를 턱 서비스로 넣어주는 짤라집 이모님들과 인사를 하게 되겠지. 인삿말은 짤라 하나 주세요, 소주두요. 발 밑에 쌓이는 초록병들과 빨간 무생채같은 마음들을 듬성듬성 나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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