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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의 땀을 뺀다.

by 셀레스테 Mar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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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셈 모르고 진탕 채워 넣은 초록병에 속이 부대끼면서도 온전히 깨지 못한 손으로 냉장고 야채칸을 뒤적인다. 아무 일정이 없는 토요일 아침, 당구공 알 만한 크기의 양파 두 개를 찾아내 전날 초록의 악령에 미처 벗어나지 못한 정신과 무뎌진 엄마의 칼날이 할 수 있는 한, 얇게 채를 썬다. 팬에 버터 조금과 기름을 두르고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동안 ‘양파의 땀을 뺀다.’

양파의 땀을 빼는 동안은 아무 생각도 없다. 그저 내 양파가 타지 않고 적당한 갈색으로 잘 물들어주기만 바란다. 주말 아침, 아무도 시킨 바 없는 혼자만의 저릿저릿한 노동이 끝나고 나면, 노랗게 땀이 빠진 양파들을 잘 소분해 냉동실에 재워놓는다. 그리고 제 몫을 할 수 있을 때마다 깨워 넣는다. 카레나 짜장에는 물론이고, 단맛이 필요한 어느 음식에도 땀 빠진 양파는 기가 막히게 풍미를 올려준다. 당이 있는 아버지 요리를 할 때 엄마가 넣는 스테비아나 설탕, 물엿 따위의 보이는 단맛과는 차원이 다른 깊이다. 땀을 뺀 양파가 듬뿍 들어간 카레라이스를 가족과 나누어 먹다가, 본래의 질감 따위는 없이 죄다 허물어진 양파가 주는 감칠맛에 새삼스레 놀란다. 이토록 맹렬한 여름께 에, 한 시간 남짓의 무료한 번거로움을 기꺼이 마주하는 이유다. 양파를 썬 손으로 무심코 만진 눈에서 흐르는, 감동적으로 뜨거운 눈물을 감내하면서도 말이다.

소위 있어 보이는 말로 카라멜라이징(Caramelization)이라고 부르는 이 과정은, 사전적인 의미로 음식물 속의 다당류에 지속적으로 일정한 열을 가해 단당류로 성분을 변화시켜, 특유의 풍미가 나는 단맛과 감칠맛을 끌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고 한다. 요리하는 사람들은 이걸 ‘양파 땀을 뺀다’고 부른단다. 양파 땀을 뺀다니, 우연히 이 말을 듣고 온라인게임의 양파 캐릭터 모습이 떠올라 귀엽다는 생각을 하면서, 사람도, 일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신조대로, 재미없는 카라멜라이징 대신, 나도 이 주말 오전의 남모를 노동을 양파의 땀을 뺀다고 부르기로 했다.

이번 주말에는 또 다른 양파(Double par)로 또 땀을(이때의 땀은 진땀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빼면서, 문득 세상에 정말 단번에 이뤄지는 일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도, 운동도 그리고 사람도. 아무리 SF영화도 10년이면 현실이 되는 세상이라지만 그건 반백년이 지난대도 절대 현실이 될 수 없는 생각이었다. 어떤 성과를 내기까지, 요술처럼 한 번에 이뤄지는 일은 없다. 적어도 내게는 없었다. ‘아, 나도 혹시 땀 빼고 있는 양파인가.’

양파의 땀을 뺄 때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적당한 화력이다. 지나치게 센 불에는 금세 타버리고 그렇다고 타는 게 무서워 불을 너무 줄여버리면, 한 시간이면 족할 노동의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나 버리고 만다. 어떤 상황에도 적당한 열기로 꾸준히 계속하는 것, 그게 당장은 가늠할 수 없는 풍미와 감칠맛을 만드는 것이다. 비록 실존된 형체는 보이지 않을지라도.

크게 인상적이지 않은 시간이 기어코 흘러가야만 할 때, 그저 땀 빼는 양파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릴없이 반복적인 시간을 이겨내고 언제고 주어질 깊은 풍미를 위하여. 어디든 어우러져 감칠맛 나는 사람이 될 수 있기까지, ‘아, 나는 땀 빼고 있는 양파다.’

그렇게 이번 주말도, 또 여러 의미의 양파로 땀을 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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