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왜 코타키나발루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분명 도시를 좋아하는 부부였다. 전시, 영화, 야경, 그리고 무엇보다 시원하다 못해 추운 에어컨 바람이 빵빵하게 나오는 대형 쇼핑몰. ‘이상하게 휴양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때 우리의 선택은 휴양지였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살고 싶어 했다. 나도 캐나다 토론토에서 2년쯤 살아본 경험이 있었고, 그 기억은 나름 괜찮았다. 아침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길을 걸어 지하철역까지 가던 풍경, 어학원에서 처음 알게 된 외국인 친구들, 한국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묘한 자유로움. 그래서 ‘해외에서 산다’는 말이 낯설지는 않았다.
대학생 때부터는 또 이상한 꿈도 있었다. “내 아이는 홍콩 국제학교에 보내야지.” 현실적인 비용은 계산조차 안 해봤으면서, 홍콩이라는 이름이 주는 국제적인 분위기에 괜히 마음이 끌렸다. 방학마다 여행책자를 한가득 쌓아두고 “언젠가는 꼭”을 외쳤지만, 결국 한 번도 못 가본 도시. 그런 막연한 동경들이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래서 연애 시절부터 우리 대화는 자주 해외로 흘렀다. “결혼하면 해외에서 살아보는 건 어때?”라는 말이 농담처럼 오가다가, 어느 순간 진담처럼 들리던 때가 있었다. 시험관 시술을 멈추기로 한 바로 그즈음, 남편은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고 있었다. 외국에서 뭔가 해보고 싶다는 말에, 내 머릿속에는 오래전에 본 영화 한 장면이 번쩍 떠올랐다. 숀 코너리와 캐서린 제타 존스의 앤트랩먼트. 그 영화 속 쿠알라룸푸르의 야경이 이상하리만큼 강하게 남아 있었다. “저런 도시에서 한 번쯤 살아보면 어떨까.” 근거 없는 상상일 뿐이었지만, 그 이미지는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우리가 정착을 고민하며 고른 곳은 쿠알라룸푸르가 아닌, 코타키나발루였다.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라면 지금도 막힌다. 다만 생활비가 비교적 저렴했고, 말레이시아라는 나라 자체에 끌렸고, 잠시 쉬어가기엔 적당해 보였다. 그렇게 석양이 아름답다는 바닷가 도시에서 3개월 살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우리는 휴양지에서조차 도시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바다보다 수영장을 좋아했고, 햇볕보다는 시원하다 못해 추운 에어컨 나오는 쇼핑몰을 더 좋아했다. 해가 지면 바닷가 산책로에서 석양을 잠깐 감탄하고, 이내 서로를 보며 말했다. “저녁은 뭐 먹지?” 그리고 발걸음은 늘 쇼핑몰 푸드코트로 향했다. 국수 한 그릇, 닭고기 요리 하나, 디저트로 열대 과일 주스. 계산대 옆에 놓인 플라스틱 번호표를 받아 들고 기다리다 보면, “우리 지금 어디더라?” 싶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지인가, 일상인가.
장보기도 시장보다는 대형 마트가 편했다. 시리얼 코너에서 내일 아침엔 어떤 상자를 열어볼지 한참을 고르다 보면, ‘휴양지에 와서 내가 왜 시리얼 고르는 데 이렇게 진심이지’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서점에 들러 영어책을 느릿하게 넘겨보고, 문구 코너에서 예쁜 노트를 한 권 꺼내 들면, ‘아, 이게 내 방식의 여행이구나’ 싶었다.
하도 쇼핑몰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나중엔 가게 앞에서 호객을 하던 직원들과 안부 인사를 나눌 정도였다.
“오늘도 오셨네요?”
“네, 또 왔어요…”
휴양지에 와서 이런 대화를 나누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사실을 인정하자면, 우리는 휴식을 찾아왔지만 결국 도시적 리듬으로 쉬었다. 일정표가 바닷가보다 쇼핑몰 중심으로 돌아가니, 여행 같으면서도 생활 같았다.
코타키나발루에서의 하루는 단순했다. 낮에는 레지던스 수영장 물에 발을 담그고, 오후엔 방 안 에어컨 바람을 세게 틀어두고 낮잠을 잤다. 해가 기울면 바닷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고,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드는 걸 보다가, 다시 쇼핑몰 불빛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루틴을 며칠쯤 반복하자, 비로소 내 마음이 조용해졌다. 몸의 온도가 내려가듯, 그동안 달궈져 있던 마음도 식는 기분. ‘아, 지금은 이 정도의 속도가 필요했구나’라는 걸, 그때 알았다.
누가 보면 “휴양지까지 가서 뭘 그렇게 똑같이 사냐”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똑같음’이 이상하게 나를 살렸다. 새로운 풍경은 석양으로 충분했고, 새로운 선택은 푸드코트 메뉴판에 서면 됐다. 일상의 무게를 잠시만 내려놓고, 익숙한 방식으로 숨 돌리는 시간. 그게 우리에게 맞았다.
그러니까 우리의 코타키나발루 3개월 살이는 ‘휴양지 생활’이라기보다 ‘쇼핑몰 옆 레지던스 생활’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시간이 헛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우리는 우리 취향의 중심을 선명하게 보게 되었다. 바다는 여전히 좋지만, 살아감을 책임지는 건 도시적인 곳에서의 선택지들이라는 것. 적당히 시끄러운 곳에서, 적당히 고를 게 많은 곳에서 우리는 이상하게 활력을 얻는다는 사실.
코타키나발루에서의 3개월, 우린 휴양지에서도 결국 도시적으로 살았다. 그리고 아마, 그 선택이 쿠알라룸푸르로 이어지는 첫 단추였을 것이다. 도시가 우리에게 맞는 옷이라는 걸, 그때 비로소 알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