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설리아
추석인지도 몰랐어요.
아는 지인에게서 "멀리서 추석 잘 보내~"라는 문자를 받고서야
그때 알았어요.
아, 오늘이 '추석'이구나.
말레이시아는 연휴기간도 아니고 일상생활을 하다 보니 더 몰랐던 거 같아요.
한국이었으면 추석 때쯤 하늘은 높고 날씨는 선선해질 때인 거 같은데
여긴
해는 유난히 늦게 뜨고,
멀리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와
시끄러운 LRT(전철) 소리로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이었어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에 오는 길인데
시끌시끌 떠들던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니까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마음이 이상하게 몽글몽글하니
집으로 곧장 돌아가기가
왠지 아쉬운 날이었어요.
직진만 하면 집인데,
그날은 바로 핸들을 돌려
가끔 아침에 들리던 어느 식당으로 향했어요.
가게 문도 따로 없고,
에어컨도 없지만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들어오기도 하고
조용한 새소리도 가끔 들리는,
그런 평화로운 곳이에요.
그곳은 현지 사람들에게 '판미(Pan Mee)'로 불리는
말레이시아식 칼국수를 파는 식당이에요.
메뉴에는 여러 가지 음식이 있지만
저는 늘 판미만 먹어요.
정말 맛있거든요.
큰 사이즈 10링깃, 작은 사이즈는 9링깃.
우리 돈으로 한 그릇에 3000원 남짓.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물에 넓적한 면 그리고 푸짐하게 담아주는 나물과 멸치에
마음까지 녹아내렸어요.
그릇이 나왔을 땐
한국 동네 칼국수집이 떠올랐어요.
투박한 그릇, 푹 익은 면,
그리고 매콤한 고추간장 한 숟가락.
사실 제가 추석 연휴에
이 '판미' 이야기를 올리고 싶었던 이유가 있어요.
한국에 있을 땐 긴 연휴가 끝나면 늘 힘들잖아요.
요리하고, 치우고, 또 요리하고
추석에 먹는 맛있고 기름진 음식을 잔뜩 먹고
속을 풀겠다며 동네 칼국수집으로 향하곤 했거든요.
그때의 그 뜨끈한 국물 한 입이
몸도, 마음도 풀어주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그래서였을까요.
그날 아침 판미를 먹으며
그 시절의 우리 가족이 문득 떠올랐어요.
명절의 여운이 남은 하루,
소소하지만 마음이 따뜻했던 그 시간들이요.
그땐 몰랐었는데.....
그릇을 다 비우고 나올 때쯤,
마음 한편이 시원하게 풀리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이 스쳤죠.
"그래도 한국 동네 칼국수집 가서
깍두기 무한리필에 한 그릇 하면 얼마나 좋을까."
추석 아침, 판미 한 그릇이 유난히 위로가 되었던 이유.
어쩌면 그건, 내가 꽤 그리웠던 하루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by 설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