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 지원과 입교시험
대학 졸업을 앞둔 2007년 여름. 대학생활의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졸업 후의 진로에 관해 생각하는 날이 부쩍 많아졌다. 대학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할 계획은 없었으므로 일단은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취업의 방향이 고민이 되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일반 기업체에는 큰 뜻이 없었고, 당시 내가 원했던 곳은 NGO단체나 사회적 기업 같은 비영리 단체 쪽이 일 것이라는 막연한 그림만 있었고, 마음 한구석에는 어떤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진로가 잡히지 않았던 그때는,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께서 신문에 게재된 육군 여군사관 모집 공고를 보시고 나에게 권해 주셨다. '군인'이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왠지 지원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당시의 마음을 떠올려 보면 군인이 된 내 모습을 생각하니 멋있을 것 같고, 역동적이고 모험가 득할 것 같은 그 직업 이주는 이미지가 내게 왠지 모를 이끌림을 주었다. 그렇게 나는 구체적인 계획과 정보 없이 순전히 외적인 모습만 그려보고 막연히 군인의 길을 걷겠다고 선택할 만큼 감정과 직관에 따른 선택을 했다. 1차 관문인 서류전형 합격 통보를 받고, 2차 시험인 면접 및 체력검정의 일정을 고지받았다. 조금씩이지만 체력검정에 대비해 날마다 아파트 단지 내 운동장을 달리며, 팔 굽혀 펴기와 윗몸일으키기 연습을 하는 날이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뒤 시험 당일이 되었다. 장소는 대전의 군사학교. 아침 9시부터 시험이 시작되기에, 새벽부터 기차를 타고 2차 시험장소로 향했다. 체력검정용 체육복, 면접용 정장과 화장품 등을 챙기니 짐이 제법 많아 당일치기였음에도 캐리어를 준비했다.
시험 장소에 가보니 지원자들이 제법 많았고, 연간 1회 있는 시험이니만큼 전국 각지에서 지원자들이 모였기에 전날 대전에 와서 숙소를 잡고 1박 하며 면접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시 인터넷 상에는 여군 장교 준비를 위한 카페가 있었는데 그래서 이미 안면이 있고, 함께 스터디를 진행하며 정보를 교류했던 지원자들도 많아서 이미 그룹을 형성해 모여있는 그들을 보니 혼자 참석한 나는 처음에는 좀 어색했다. 하지만 다행히 함께 면접 조에 편성된 사람들과 곧 친구가 될 수 있었고 우리는 모두 합격해서 그 인연은 군인이 된 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2차 시험은 신체검사, 체력검정, 적성검사, 단체 면접까지 총 4가지 시험으로 구성되어있고 오후에 걸쳐서 종일 진행되었다. 각 단계마다 편성된 시험관님(선배 장교)의 엄격하면서도 차분한 모습에 당시는 군인의 신분이 아니었음에도 긴장이 되었다. 그해 여군사관은 200여 명 가까이의 인원을 선발했는데, 서류 합격자가 얼마였는지는 모르지만 전체 인원을 두 개 조로 나누어서 한 조는 오전에 체력검정, 신체검사를 진행하고 다른 한조는 적성검사와 단체면접을 진행하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에는 순서를 바꿔서 진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오전에 체력검정과 신체검사를 받는 조에 편성되었다. 틈틈이 체력검정 연습을 했지만 기초체력이 없던 나는 체력 검정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체력검정의 세 항목인 윗몸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 1.5km 장거리 달리기 중 장거리 달리기를 탈락하면 무조건 불합격이라기에 달리기에 열심을 냈고 가까스로 합격점을 통과했다. 그리고 부대 내 샤워시설 및 식당을 이용하며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적성검사와 단체면접에 참석했다. 적성검사는 필기시험인데 기본 상식 및 기본 도덕성 등을 요하는 항복이 많아 비교적 수월하게 마쳤으나 가장 긴장되던 단체 면접이 남아있었다. 4명씩 한조를 이루어 참석하는데 대부분 검은 치마 정장을 준비해왔고, 화장과 복장이 (가본 적은 없지만 느낌에) 스튜어디스 시험장을 방불케 했다. 다들 조를 이루어 모여서 예상 질의를 준비하는 면접 대기실의 열기에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참석한 나로서도 없던 긴장감이 생길 지경이었다. 지원 동기를 묻는 질문들과 군에서 근무할 때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등의 질문이 오갔고, 목소리의 성량 및 발성 상태도 점검을 받았다. 그렇게 면접까지 모든 시험을 마치고 함께했던 친구들과 연락처를 교환하고 저녁 기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몇 달간의 시간이 지나고 그해 연말이 가까워질 때 여군사관(53기)에 최종 합격되었다는 결과를 전달받았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있던 나는 뜻밖의 결과가 한동안 믿기지 않았다. 군대는 그날까지 내가 살아오며 전혀 알지도 못하고 꿈에도 생각도 못하던 분야였으며, 체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닌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내가 그 관문을 통과했다는 사실에 나의 주변 사람들도 놀라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가장 놀랐다.
입교 예정일은 이듬해 3월 21일. 한동안 아주 깊은 고민이 이어졌다. 정말로 입교를 해서 군인이 되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하는 게 좋을지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미지에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무척 컸지만 일말의 동경이 섞인 호기심 또한 자주 고개를 들었고, 그들이 뒤섞인 마음에 하루에도 수차례 생각이 바뀌곤 했다. 입대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굳혀갈 즈음, 처음 내게 군인의 길을 권했던 어머니는 나를 설득하는데 나섰다. 당시 나의 나이는 26이고 의무복무 기간은 3년이기에 군 생활을 한번 겪어보고 적성에 맞다면 계속 군에 남아도 되는 것이고, 혹여나 그 길이 내 길이 아니라 해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전역 후 아직 젊은 나이이기에 다른 길을 찾을 시간이 있다는 의견에 나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래. 군인이 되어보자.' 그리고 무엇보다 그 길을 걷지 않으면 훗날 아쉬움이 남을 것 같고, 후회하게 될 것 같아 나는 마침내 군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정으로 인해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이제 다시는 군인이 되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의 삶 가운데 크고 작은 결정들을 하며 살아가고, 그중의 어떤 결정들은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는 정도로 삶의 큰 전환점이 된다. 나에게 있어서 그러한 결정적 순간 중 하나는 군인이 되기로 선택한 일이었다. 무모했고, 젊었고, 열정이 있었기에 선택했던 그 길은 나에게 큰 아픔도 기쁨도 좌절도 성취도 가져다주었지만 무엇보다 나를 단련시키고 성장시켰던 스승이었다. 그 당시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한가운데에 있는 기분이었지만 이제는 그 시간들을 '감사함'이라 고백할 수 있음에 감사한 오늘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