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주 간의 여군사관후보생 생활(입교 및 군사훈련)
08년 3월 23일 경북 영천에 있는 육군 3 사관학교에 여군 장교가 되기 위한 군사훈련을 받으러 입교했다. 그해 함께 임관하는 학사 51기 남군들과(그 당시 우리는 남군, 여군으로 구분되었다.) 함께 16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을 예정이었다. 일주일의 가입교 기간을 거쳐, 4월부터 7월까지 네 달간 16주의 훈련을 마치고, 9박 10일의 임관 휴가를 보낸 뒤 08년 8월 1일부로 육군 소위로 임관하는 일정이었다. 중간에 허용된 2박 3일간의 외박 두 번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학교 기관에서 숙식하며 훈련을 받는 고된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입교일이 되어 규정대로 귀밑 1센티미터 가까이 짧은 단발로 자르고 필요한 물건을 구비해 육군 3 사관학교로 향했다. 남자들의 경우 대부분의 생필품은 군 보급품이 제공되지만 여자들의 경우 속옷, 세면용품, 샤워용품, 여성용품, 기초 화장품 선크림 등 필요한 것들이 군 보급품으로 제공되기에는 무리가 따르기에 각자 16주간 사용할 개인 물품을 준비해 오고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지만 10여만 원의 구매 비용이 지급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함께 동행해 주신 부모님과 마지막으로 인사를 마치고 입교하며, 나의 군 생활이 시작되었다.
당시 함께 입교한 175여 명의 여군은 4개 중대로 나뉘어 훈련받았고, 우리 중대의 경우 여자 동기 44명 남자 동기 150여 명으로 이루어졌다. 곧 우리 중대를 훈육하실 네 분의 훈육장교님(중위, 대위)과 훈육대장님(소령)을 마주했다. 여군이셨던 3 훈육 장교님께서 여군 중대를 담당하셨는데 당시 그분은 20대의 임관한 지 오래지 않은, 중위였음에도 전투모 아래로 보이는 예리한 눈빛과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모습에서 예사롭지 않음을 느꼈다.
병 기본과 제식훈련, 군 기본자세 등을 교육받는 일주일 간의 가입교 기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군사 훈련이 시작되었다. 일과는 매우 규칙적이었다. 특별한 일정(야외 훈련, 장기간의 훈련, 임관식 연습 등)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06시에 기상해서 연병장에 집합해 아침 점호 및 체력단련(뜀걸음, 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을 마치고 아침 식사하고 오전 수업 듣고. 점심 식사하고 오후 수업 듣고. 17:00에 수업을 마치고 아침과 동일하게 오후 체력단련을 마치고 저녁 먹고 교육을 받거나 개인 정비 시간을 보내고 군가를 외우고 수양록을 작성하고, 21:30에 야간 점호를 받고 22:00에 취침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에도 매일이 주는 힘듦에는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이틀에 한번 정도 잦은 빈도로 편성되는 2시간의 야간 불침번 근무로 수면부족은 일상이었고, 행군과 체력단련으로 인한 무릎이나 발목 등 어느 한 군데의 부상이나 통증이 늘 수반되었다. 수업도 어려웠다. 실내 수업 30%~40% 야외수업 60~70%로 이루어진 수업은 매일 평가가 진행되기에 배운 내용을 채 습득하기도 전에 평가를 받으며 내게 아득함을 안겨주었다.
야외수업은 각개전투, 분대공방, 수류탄, 화생방, 구급법 등이 있었는데 단독군장, 혹은 완전군장으로 3 사관학교를 둘러싼 산 어딘가의 교장으로 도보로 이동했다. 가까우면 30분남짓 이었고, 멀면 한 시간 이상 걸리는 교장에 도착하면 이미 기진맥진 하기 일쑤였고 그 상태로 수업을 듣고, 몸으로 구르고 눕고 무거운 총을 들고 실습에 참여했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숙영지로 돌아오면 오후 6-7시 가까이 되어있고, 늦으면 9시가 넘는 날도 있었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잠들었다가 불침번 근무를 서다 보면 아침이 금방 찾아왔고, 다시 새벽 6시부터 반복되며 시작되는 일정에 몸과 마음을 맞추기 위해 허덕이며 보냈다.
가끔은 영내에서 진행되는 실내 수업이 있었지만 그것도 결코 가볍게 볼 것은 아니었다. 어려운 군사용어가 난무했고, 방대한 수업량을 단시간 습득하고 바로 이어지는 평가로 나는 무언가를 학습하고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고사하고 간신히 몸만 그곳에 갖다 둔 상태로 지내던 날이 많았다.
주말에도 6시 기상해 체력단련을 받고 병 기본 훈련 및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그나마 일요일에는 종교행사에 참석하고 약간의 개인정비 및 자유시간이 주어지고 입교 시 맡겨둔 핸드폰을 돌려받는 시간이 있었으나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힘들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용기가 없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며 내일은 반드시 훈육장교님을 찾아가 그만두리라 말씀드려야겠다고 다짐했던 많은 날이 있었지만 나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없이 기상부터 점호까지 그날의 일정을 따라가다 보면 훈육장교님을 언제 찾아가야 할지 몰라 또 그렇게 하루를 보내게 되었고, 어제는 그렇게 괴롭고 짜증 나더니 그날따라 수업도 편하고 견딜만한 날들이 오기에 참기도 했고, 훈육장교님을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 결국 발걸음을 떼지 못한 날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그만둘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를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쪽팔림'이었다. 그것이 번번이 나의 발목을 잡았다. '대단하다' '멋있다' '상상도 못 했다'는 소리를 들으며 입대했는데 이렇게 단시간에 그만두면 민망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잠시 외국에 나가 있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나는 결국 후보생 시절 그만두려는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다.
그렇게 간신히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시간은 흘러갔고, 나중에는 일종의 오기가 생겼다. 이제껏 버텼는데 후보생 생활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군 간부가 되어 군 생활의 실무도 경험해 봐야 하지 않을까. 조금만 더 버티면 임관인데 조금만 버텨보자. 하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추스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는 소중한 동기들이 있었다. 사관후보생 시절이 내게 힘들기만 한 시간이 아니라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동기들의 존재였다.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군에 입대하고, 군 생활을 견디고 훈련을 받고 어려움을 이겨내는 그들을 보며 많은 동기 부여가 되었고, 의지가 되었고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나누며 우정을 쌓고, 그들의 삶을 통해 열리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것도 기쁨이었다. 입대 전 승무원, 조리사, 학생, 부사관 등 다양한 삶을 겪다가 군에온 그들은 의무가 아니었음에도 군 생활을 스스로 선택해 버틸 만큼 삶에 굳은 심지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고, 그런 그들이 나는 좋았다. 그렇게 사관후보생 시간을 함께 겪으며 임관하고, 전우애로 뭉쳤던 동기들은 전역한 지금까지도 서로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니 참 감사한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