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격훈련과 장교 임관식
사관후보생 시절 훈련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유격훈련이었다. 악명 높은 화산 유격장에서의 2주간의 훈련을 끝으로 마침내 장교로 임관하게 되는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유격 훈련을 앞둔 긴장감과 압박감에 한동안 짓눌려 지내다 드디어 유격훈련을 맞이했다. 완전군장으로 밤새 행군하여 화산 유격장 입소를 시작으로 1주는 유격장에서 지내며 유격체조 및 산악 훈련, 암벽 타기, 헬기 레펠 등의 훈련을 받고 2주 차는 산속에서 적게는 2명 많게는 5명 천막을 치고 지내며 야전에서 취사도 직접 하고 며칠에 거쳐 주변의 거점 집합지로 이동하며 생존 훈련을 하는 일정이었다. 물론 전투 식량도 제공되고 안전관리가 철저히 되어 있어 사고를 당할 위험은 없지만, 그 기간 동안 씻지도 못하고 오로지 야외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극한 훈련임에는 분명했다. 초 여름이었음에도 그늘 한 점 없는 유격장은 더웠다. 땀 흘려 체조하고 교육받고 훈련받으며 마침내 후보생 시절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2주 차의 생존훈련인 FTX(야외기동훈련, field training exercise)는 자신의 한계에 부딪쳐 보는 훈련인데, 하루 종일 산을 타며 이동하며 체력의 한계를 느꼈고, 무엇보다 몸을 씻을 수 없어서 힘들었다. 종일 산길을 지도를 보며 이동하고 밤이 되면 천막을 치고 잠들었기에, 온수 샤워와 편안한 잠자리 생각이 간절했다. 그럼에도 혼자 받는 훈련이 아니었기에 동기들과 함께 지내며 웃을 일도 많았고, 그 시간을 잘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2주간의 유격훈련을 끝으로 마지막 군사훈련을 모두 마쳤다. 숙영지로 돌아오는 복귀 행군 가운데 홀가분함을 느꼈다.
임관까지 남은 시간들은 임관식을 연습하는 시간이었다. 임관식 연습 또한 한치의 어긋남 없이 자세를 잡고 대열을 맞춰 걷기 위해 무더위에 야외 연병장에서 연습을 거듭하는 꽤나 힘든 과정이었지만 유격훈련까지 마치고 왔기에 비교적 무난하게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를 무섭게 훈육하시던 훈육장교님도 많이 느슨해지셔서 어느 정도 우리를 풀어주셨고, 교육시간에 사적인 이야기들도 많이 해주시며 인간적으로 다가오셨다.
드디어 임관하는 날이 되었고, 2008년 7월 18일 임관식을 끝으로 나는 16주간의 훈련을 모두 마치고 마침내 육군 소위가 되었다. 임관식에는 가족들이 참석했고 누구보다 부모님께서 가장 기뻐해 주셨다.
나의 임관 성적은 여군 입교생 175명 중 173등. 형편없는 성적으로 임관했지만 그럼에도 상관없었다. 나는 결국 해냈다. 포기하지 않고 훈련을 견디고 마침내 나는 군인이 되었다. 어쩌면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이겨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관후보생 시절 겪을 과정들을 미리 알았더라면 선뜻 군에 갈 수 있었을까? 나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용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고, 그래서 그 과정을 완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는 몰랐다. 임관은 끝이 아니라 단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기나긴 군 생활의 고작 첫 발을 떼었을 뿐이라는 것을 그때 나는 결코 알지 못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펼쳐질 험난한 생활을 예상하지 못하고 임관에 대한 기쁨. 이제 자대 배치를 받고 군생활을 잘할 수 있다는 낙관과 기대.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맞이할 9박 10일의 긴 휴가. 단지 그것에 들떠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