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나의 베프 오차즈케(お茶漬)

음식에도 성정(性情)이 있다면

by 수진

문득 좋아하는 음식은 그 사람을 말해준다는 생각을 했다. 호기심에 아는 지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았다. 결과를 보니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그의 이미지와 그가 좋아하는 음식에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비슷했다. 핫하고 세련된 것을 좋아하는 친구는 이국적이고 강렬한 타코를 베스트로 꼽았고, 사람을 잘 품어주고 명랑한 누군가는 다양한 재료를 넣고 뭉근히 오래 끓이는 갈비찜을, 따뜻하지만 예민하고 예리한 누군가는 맛있지만 매운 음식을, 성격상 모난 구석이 없고 다정한 누군가는 옥수수와 감자를 꼽는 식이었다. 지극히 개인적 해석이었지만 그 사실에 흥미를 느낀 나는 가끔 누군가에게 좋아하는 음식에 관해 물을 때가 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물어보면 대략적으로 그 사람에 대해 그려졌고, 이미 아는 사람의 경우 종종 ‘역시’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오차즈케(お茶漬, 쌀밥에 녹차를 부어 여러 가지 고명을 얹어 먹는 일본의 식문화)'라는 음식을 처음 접한 것은 오래전 글을 통해서였다. 찻물에 밥을 마는 음식에 문화적 이질감이 상당했다. 녹차에 밥을 말아먹는다고? 내가 알던 그 녹차라면 상상이 되지 않았다. 짐작이 되지 않아 궁금했다. 보편적인 녹차 티백을 활용해서 만들어 보는 방법이 있었지만, 오리지널과 차이가 있을 것 같았고 녹차 티백은 차로 마신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서, 그것을 우린 물에 밥을 넣는다는 것은 내키지 않아 시도해보지 않았다.

그 개념이 조금 이해된 것은 누군가의 곁들임 설명을 본 뒤였다. 보리차에 밥을 말아먹는 개념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는 설명에, 조금 수긍이 갔다. 보리차에 밥을 말면 의외로 무척 맛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물 말은 밥의 물을 보리차와 녹차의 차이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간 오차즈케를 만난 것은 일본의 한 마트였다. 마시는 용도의 녹차가 아니고 애초에 '오차즈케'를 염두에 두고 만든 제품이라면 맛이 괜찮을 것 같아서 구입했다. 한 끼용으로 소분되어 8팩이 들어있는데 한국돈으로 몇천 원으로 가격도 저렴했다. 밥 위에 오차즈케 가루를 뿌리고 물을 부어 드디어 맛본 인스턴트 오차즈케는 굳이 의식하지 않으면 녹차임을 모를 정도로 깔끔하고 담백했고 약간의 짠맛도 가미되어 있어 부담 없이 물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인스턴트 오차즈케(김맛)

호기심에 한번 맛본 오차즈케를 자주 먹게 된 것은 일본에 온 뒤였다. 혼자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데 귀찮을 때 오차즈케만큼 편리한 음식은 드물었다. 밥에 오차즈케 가루를 뿌리고 끓는 물만 부으면 되니 라면과 비할 바 못되게 간단하고 질리지 않으며 속에 부담이 없었다. 찬물을 부어도 되지만 개인적으로는 따뜻한 물을 부은 것이 더 좋았고, 곁들임 반찬은 김, 낫토, 명란, 두부처럼 오차즈케랑 어울릴만한 깔끔하고 특별히 조리가 필요 없는 것이면 충분했다. 어느덧 오차즈케는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한 존재감으로 혼자인 날의 나의 베프가 되었다.

어린이용 오차즈케는 간이 좀더 약하고 귀여운 호빵맨 식용 어묵이 들어있다.

얼마 전의 일이다. 가족들과 시내에 나갔다가 우리나라처럼 찜질방 시설이 있는 사우나에 가게 되었고, 식당에 가니 직접 우린 차로 끓인 오차즈케 정식이 있어서 주문해 보았다. 규슈(九州) 지역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녹차 브랜드인 '팔 녀(八女) 차'를 직접 우려서 끓인 오차즈케라니 기대가 되었다. 비주얼은 평소 먹던 인스턴트 오차즈케와 비슷했지만 직접 우린 녹차였기에 간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 무척이나 깔끔했고 생선 타다키와 매실과 다시마, 오이 등의 각종 절임 반찬류를 곁들인 차림새도 정갈했다. 따뜻하고 담백한 오차즈케를 먹으며 일본에서 나의 소울 푸드를 정한다면 '오차즈케'리라 생각했다.

직접 우린 찻물로 끓인 오차즈케

음식에도 고유한 성정(性情) 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최고 까지는 아니지만 많이 좋아하는 오차즈케의 성정을 떠올려 본다. 조용하고 많은 것을 품어주지만 자기를 잃지 않고 자신의 분명한 색깔을 가진 음식. 다른 음식들과 잘 어우러지지만 홀로도 존재감을 발하는 음식. 오차즈케의 성정은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의 삶이 오차즈케의 성정을 반영하고 있는 삶이라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잔잔하고 고요하지만 고유하게 흐르는 지금의 이 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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