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따뜻하고 매콤한 카레
최근 들어 부쩍 혼자만의 시간이 늘었다. 결혼 후, 정확히는 아이와 함께 한 후 깨달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시간이 얼마나 나를 나답게 만들어 주는 시간인지. 혼자만의 시간이 얼마나 내게 소중한지.
아이러니하게 내게 혼자만의 시간은 무한정일 때가 아니라 끝이 정해져 있을 때 오히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곧 있으면 이 시간이 끝나니 1분 1초라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 가사도 급한 일이 아니면 뒤로 미루고, 식사도 최대한 간단히 해결하며 시간을 절약하려 애를 쓴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으로 거창한 무엇인가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간 속을 마음껏 유영하는 자체로 충만하고 행복하다.
작년 여름, 긴 여름 방학을 보내며 나는 좀 지쳐 있었다. 일본 유치원의 여름방학은 한 달이 넘고 특별한 사유가 있지 않은한 유치원 돌봄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으며, 후쿠오카는 남쪽 지역이라 바깥에 30분 정도만 있어도 타들어 갈 듯한 더위가 무서워 낮에는 쉽게 바깥을 돌아다닐 수도 없던 그 여름방학 동안 계속 아이와 함께 해야 했다. 엄마와 집을 사랑하는 아이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겠지만, 나로서는 아이에 대한 사랑과는 별개로 나를 잃어가며 조금 지쳤던 시간이었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출근하던 남편은 회사일로 아이와의 시간이 지나치게 부족함을 깨닫고 문득 아이를 데리고 출근해야겠다고 말했다. 오후에 출근했고, 회사가 아이를 데리고 출근해도 되는 환경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 옷을 입히며 외출 준비시키는데 기분이 몹시 상기됨을 느꼈다. 두 남자를 배웅하고 적막한 집안에 들어서자 남편이 나에게 얼마나 값진 선물을 주었는지 깨달았다. '시간'. 그가 나에게 선물한 것은 '시간'이었다. 당시의 내 상태를 생각하자 어떤 값진 물건을 선물 받았다 해도 그만큼 가치 있게 여겨질 것 같지 않았다. 그날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며 내게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깨달았다.
그 뒤로 남편은 종종 아이만 데리고 외출을 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날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늘 가족과 함께 하길 좋아하는 그도 내가 굳이 그 자리에 동행하기 원하지 않는다면 강요하지 않는 센스! 가 생겼고, 커가는 속도가 눈에 보이는 아이와의 시간이 애틋해서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걸로 꽤 만족하는 눈치였다. 사랑하는 집에서 사랑하는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아이의 시선을 외면하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지만, 이내 나의 시야를 벗어나면 아이는 집에 돌아오기 싫어할 정도로 즐겁게 노는 것을 봐와서 편한 마음으로 보내준다.
오늘도 남편은 출근길에 아이를 동행했다. 두 남자를 보내고 가볍게 집정리를 하고 숙제부터 끝내자는 마음으로 나가서 달리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매콤한 카레가 생각났다. 산뜻한 마음으로 컴퓨터를 펼쳤다가 허기가 느껴져 일단은 요리부터 하기로 했다. 냉장고를 스캔하여 다져둔 당근과 팽이버섯 시금치 두부를 꺼내고, 밥을 데웠다. 도마까지 꺼내면 귀찮으니 가위만으로 조리 가능한 재료로 선별했다. 육수를 내기 위해 국 한 그릇 분량의 물을 끓이고, 다시다 대용으로 우동수프를 조금 넣고 다진 당근, 가위로 자른 팽이버섯을 넣고 10분 정도 끓인 뒤 매콤카레 한 블록(일 인분)과 역시 가위로 자른 시금치와 연두부 한 토막을 넣고 3분 정도 끓이면 끝. 라면만큼 간단히 조리한 카레를 데워둔 밥에 부어주니 나를 위한 간편하고 영양가 있는 맞춤 요리가 만들어졌다. 카레는 소위 말하는 대기업의 검증된 맛이니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맛있을 테니 편하다.
따뜻하고 매콤한 카레는 맛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와 개운한 마음으로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결코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리기 어렵다. 이 음식을 먹고 나 개인이 되어 오늘 하루도 풍성하게 보내기를. 이렇게 충전된 에너지로 힘을 내서 다시 주어진 일상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