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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Aug 26. 2023

엄마밥의 달라진 위상

최고의 요리(단, 과부하만 피한다면)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것이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구체화된다면, 나의 엄마에게 그중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당신의 요리일 것이다.  


 국내에서 부모님을 떠나 살기 시작했을 때 늘 나를 따라다닌 존재가 있다. 지금처럼 레트로트 식품이 보편적이 되기 오래전부터 엄마의 자체 제작 포장 요리들은 (내가 굳이 부탁하거나 챙기지 않아도) 자주 내 주변에 머물고 있었다. 

 시작은 군 생활이었다.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딸의 식사가 부실할까 봐 엄마는 휴가를 나왔다 복귀하는 나에게 물만 부어 끓이면 되는 찌개, 국 류와 익히기만 하면 되는 오징어 볶음 등의 수제 레트로트 식품과 김치, 반찬등을 자주 준비해 주셨다. 물론 그것들을 제대로 모두 챙겨 먹을 여유는 없었지만;  

 결혼 후 엄마의 수제 레트로트 포장요리는 배달요리로 진화를 거듭했다. 부지런한 새벽형 엄마는 딸 내외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어 아침에 자주 갓 만든 요리들을 집 앞에 배달해 두었고 당시 엄마의 요리들은 가끔의 끼니를 챙기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바쁜 직장생활과 다양한 배달요리의 풍요 속을 살던 시절에 특별히 반갑거나 고맙지는 않았다. 

 육아를 시작한 후 엄마의 요리는 비로소 잠시 환영의 길로 접어들었는데 분야는 '이유식' 분야였다.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기도, 주문해서 먹이기도 했지만 엄마가 온갖 재료를 풍성하게 동원해 만들어 주신 이유식이 최고였고, 그것에 기대 아이의 많은 끼니를 해결하며 엄마 밥의 고마움을 조금 이해했다. 

 일본행을 준비하며 한동안 친정에서 지내던 시기 엄마의 요리는 다시 내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고, 특별히 내 것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는 나의 당부와 아빠와 둘이 살 때보다는 뭐라도 하나 더 준비하려는 엄마의 마음은 자주 맞섰다. 

 그런 엄마의 요리가 다시 내게 위상을 회복하고, 내가 드디어 엄마밥에 담긴 마음을 읽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다소 뻔한 이야기지만 일본에 온 뒤 가끔의 식사를 일임할 외주 업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자주 아이의 밥을 준비하다 보니 한두 번의 이벤트성 행사가 아닌 매 차례 풍성한 요리는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임을 깨달았고, 나는 조금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 풍성함과 기교면에서 엄마와 비교도 안 되고 아마 앞으로 따라잡을 수 없고 그럴 계획도 없지만 이제 엄마의 요리에 담긴 본질은 제대로 안다. 

상투적인 문장을 이해하려면 대단히 비상투적인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

 오랜만에 아이와 한국에 다녀왔다. 엄마는 매 순간 요리로 넘치는 사랑을 고백했다. 내가 너를 이만큼 이만큼 사랑한다고 엄마의 요리는 끝없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식사시간 엄마의 사랑이 형상화된 요리들을 보며 나는 그것을 주제로 글이 쓰고 싶어 질 것을 알았고, 귀한 엄마의 요리를 사진으로 남겼다. 

(좌) 아침 식탁에 차려져 있던 아이를 위한 반찬. (우) 같은 날 오징어 숙회와 가지찜과 김치볶음. 아침에 6가지의 반찬을 만드는 것은 대체 얼마나 부지런해야 가능한 일일까. 
된장찌개와 아이용 반찬들. 계란말이에는 채소가 잔뜩 들어가 있어서 좋았다.
(좌)비빔국수(우)김치말이국수. 둘다 맛있었다.
(좌)저녁은 떡 하나면 될것 같다고 했더니 샐러드와 옥수수와 우유가 셋트로 나왔다.(우) 김밥을 싸는 정도는 딱히 일도 아니신 듯 하다. 

 엄마의 요리는 완벽하다. 맛있고 풍성하고 정성이 담겨 있고 흠잡을 곳이 없다. 그럼에도 사실 개선해야 할 사항은 하나 있다. '절제'. 그것은 절제이다. 사랑의 절제가 아닌 음식 양의 절제. 음식에 담긴 넘치도록 풍성한 사랑은 이미 읽었으니 부디 음식 양은 좀 줄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먹는 사람이 행여 양이 부족할까 봐, 엄마의 마음으로 결코 쉽지 않은 일 이겠지만 그것은 정말이지 중요한 일이다. 안타깝고 슬프지만 기한 내 다 먹지 못하거나 과도한 양에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아 질 때는 결국 버려지고, 그 마음이 결코 편치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엄마가 요리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여서 좀 더 편해지셨음 하는 바람도 있지만 엄마는 나뿐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만들어 베푸는 것에서 행복을 느낄 때가 많은 것 같아서 그 부분까지 관여하지 않기로 한다. 나는 단지 기회가 될 때, 엄마의 요리를 맛있게 먹고 맛있다고 어필하며 내 몫으로 주어진 고백에 답하는 것이 최선일뿐. 

 3주간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본으로 왔다. 일본에 돌아오니 며칠 전에 택배로 도착했을 어머님의 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꽈리고추와 우엉조림과 김치와 모로헤이야 등의 반찬들을 보니 마음에 온기가 퍼진다. 나의 마음에 약간의 따뜻함이 있다면, 그것의 한 축은 분명 사랑이 담긴 요리에서 기인했을 것임을 나는 안다. 


   쓰다 보니 궁금해졌다. 내 안에 있는 '사랑'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구체화된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로 표현될까에 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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