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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08. 2023

남편표 나베(鍋)의 양대산맥:모츠나베와 밀푀유나베

남편이 쏘아올린 최선

 '그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 현주에게 건넸다. 무심한 듯 천진해 보이는 동작이었다. 아무런 판단이나 의사표시를 할 겨를조차 갖지 못한 현주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다. 뭔가 어설픈 채로 그것이 코베인의 최선이라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은희경, 장미의 이름은 장미

 책을 읽다 보면 스치듯 등장하는 대목이지만, 마음에 남는 문장이나 구절이 있다. 글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차치하고, 방문자에게 무심한 듯 자신의 최선을 내주는 남자의 행동이 묘사된 문장이 마음에 남았던 이유는 좋아하는 성향의 서사였기 때문이리라. 무심한 듯 마음을 쓰는 일.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끌리기 마련일 테니. 


 최근 남편이 손님 접대를 위한 두 가지 요리를 만들었다. 남편표 '나베(鍋, 전골)' 시리즈인 '모츠나베'와 '밀푀유나베'가 그것이었다. 요리를 먹으며 나는 그것에 관해 쓸 것을 예감했고, 글을 풀어나갈 방법을 고민하다 보니 위의 문장이 떠올랐다. 요리를 먹은 손님들 입장까지는 알 수 없으나, 지켜본 나는 그것이 남편의 최선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모츠나베'는 곱창이라는 뜻의 '모츠(もつ)와 전골을 뜻하는 나베(鍋)'가 결합된 말로, 후쿠오카 지역의 명물요리이다. 의미만 놓고 보면 '곱창전골'이겠지만, 익히 알고 있는 곱창전골과는 전혀 다른 그 요리는 '모츠나베' 자체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곱창이나 해장국류를 좋아하는 남편의 취향은 '모츠나베'에도 제법 부합했고, 집 가까운 곳에 잘하는 곳을 찾기도 쉽지 않고, 일부러 찾아가서 양껏 먹기에도 성에 안 차 모츠나베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결과는 대성공! 그 뒤 남편표 모츠나베는 우리 집의 별식 중 하나가 되었다. 

 동생이 후쿠오카에 놀러 왔다. 후쿠오카를 처음 방문한 동생은 후쿠오카의 명물인 '모츠나베'를 먹고 싶어 했고, 남편은 만들어 주겠다고 나섰다. 모츠나베용 시판 소스(간장맛, 소금맛, 된장맛 중 고를 수 있다.)와 곱창, 양배추, 부추, 마늘, 두부 등을 동원해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남편은 오래지 않아 모츠나베 한 냄비를 만들어 냈다. 본인의 강점인 데코 능력을 발휘해 만든 모츠나베는 파는 모양새와 흡사한 비주얼이었다. 식탁 한가운데 모츠나베를 놓고, 맛있는 그 요리를 함께 먹으며 온기가 흐르는 시간을 보냈다. 즐거움으로 충만한 순간이었다. 

남편표 모츠나베. 이날은 미소(된장) 베이스였다. 

  며칠이 지나 동생이 생일을 맞이했다. 축하 장소를 고민하던 우리는 홈파티로 의견을 모았고, 남편은 이번에는 '밀푀유나베'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밀푀유나베는 메인 요리 하나만 준비하면 되고, 실패할 확률이 적지만 육수도 내고, 겹겹이 재료를 쌓아 준비하다 보면 생각보다 손이 꽤 많이 가는 요리이다. 그렇지만 그 밀푀유나베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이번에도 대 성공이었다. 채소가 듬뿍 들어간 밀푀유 나베는 속이 편해지는 요리였고, 아이들도 함께 즐기기에 좋았다. 심심한 육수에 끓여 부드러워진 재료들을 유자청과 겨자, 간장, 식초 등을 넣어만든 소스에 찍어먹는 맛이 좋았다. 따뜻한 생일 저녁 식사를 끝으로 동생가족과 함께 한 여행의 마지막날이 끝났다. 아름다운 피날레였다.  

남편표 밀푀유나베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리자 남편이 내어 준 것은 본인의 '최선'이었음을 알 수 있어 지켜보는 마음이 좋았다. 물론 남편은 표현에 있어서 무심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먹는 이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주의를 기울이고 맛있다는 소리에 내심 매우 기뻐하는 스타일이지만, 그럼에도 그가 내어준 '최선'이 즐거운 시간을 큰 비중으로 견인한 덕분에 충만한 시간이었다.    

 '즐거움'은 일상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수많은 즐거움들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흘러 보냈음을 알지만, 사하게도 최근에는 일상에서 드러나는 즐거움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아챌 수 있었다. 

 나의 '최선'에 관해 고민해 본다. 나는 어떠한 최선으로 누군가에게 무엇을 선물할 수 있을지에 관해.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순간은 이 글을 아름답게 쓰는 것이 나의 최선이므로 최선을 다해 마음을 담아 쓴다.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언젠가 마음먹고(!) 글을 쓰고자 할 때, 이미 다 써버려서 소재가 고갈되면 어떻게 할까에 관한 생각을. 이내 깨달았다. 글은 결국 삶에서 나오기 때문에, 쓰는 삶을 산다면, 살아가는 한 글은 계속 나오리라는 것을. 혹여나 글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오늘은 오늘의 글을 쓰기로 한다. 오늘의 나는 최선을 다해 남편표 모츠나베와 밀푀유나베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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