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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16. 2023

센스와 배려로 빚은 요리

노릇한 군만두와 따뜻한 만두전골

 어쩌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과정이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함께하는 생생하고 촘촘한 그 시간을 무엇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아이와의 시간은 아름답다. 그 시간에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바꾸고 싶지 않은 가치가 담겨있다. 내 삶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줄지라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아름다운 가치가


 ↓라고 나는 생각한다. 머리로 그렇게 여기고 타당성을 수긍하지만, 시간과 체력의 한계에 종종 발목을 잡히는 나는 아이에게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경계의 선(線) 위에서 자주 고민한다. 

 대체로 시간과 체력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나는 아이의 바람에 응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지금이 아니면 어느 순간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날이 오고, 아이에게 그것이 더 이상 중요치 않아 지며, 무엇보다 아이는 너무 빨리 커서 지금 원하는 것을 더는 원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마음이 서늘할까 봐, 가끔은 아무런 계산 없이 아이가 원하는 곳에 동행한다. 

 유치원 휴무로 며칠간의 휴일이 이어졌다. 집에서 노는 것을 좋아해 야외활동에 대체로 수동적인 아이가 수족관에 가자고 먼저 제안했다. 피곤했던 몸 상태와 오후에 예정된 일본어 수업에 순간 멈칫했으나, 동행하기로 이내 마음을 정했다. 야외활동하기에 아름다운 10월이었으며, 아이는 언제나 수족관을 좋아했다. 일본어 수업을 늦춘 뒤 필요한 물건을 챙겨 빠르게 집을 나섰다.  

열차를 타고~후쿠오카 수족관으로! 화창한 가을이었다.

 평일의 수족관은 한산했다. 붐비지 않는 여유 속에 찬찬히 바다생물들을 보고, 다시 보고 싶으면 몇 번이고 다시 보며 시간을 보냈다. 여유롭게 관람을 마친 뒤 아이는 돌아가기 아쉬웠는지, 다음 일정을 원했고 우리는 수족관 옆 '우미노나카미치(海の中道) 해변공원'으로 향했다. 폐장시간까지 한 시간 남짓 남았을 뿐이지만 개의치 않기로 했다. 

 10월의 공원은 아름다웠다. 계절의 아름다움 보다는 놀이의 즐거움을 사랑하는 아이는 내 손을 잡아끌고 부지런히 어린이 놀이 구역으로 갔다. 짧지만 강렬하게 뛰놀며 아이는 온몸으로 그 시간을 즐겼고 한 시간은 빠르게 흘러 곧 폐장시간이 되었다. 아쉬워하는 아이를 달래 반드시! 다시 올 것을 약속하며 일본어 수업을 위해 이동했다.  

아름다웠던 10월의 '우미노나카미치(海の中道) 해변공원'

 날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피곤했고, 허기졌다. 수업을 마친 뒤 저녁 식사를 위해 집에 올 시간이 되어가는 남편과 가능한 안(案)을 떠올리며 메뉴를 고민했다. 배달음식이 없으니 선택지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수업을 마치고 우동을 먹으러 가는 안(案)은 편하겠지만 동선을 고려하니 효율적이지 않았고, 근처 식당에서 중국 요리를 포장하는 방안은 수요가 많은 저녁시간이라 장시간 대기가 예상되었다. 라면을 끓일까도 생각했지만, 점심을 스낵류로 간단히 해결했던 터라 내키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남편은 집에 오는 길에 재료를 사서 만두전골을 만들 것을 제안했고 그것으로 결정했다. 

 수업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남편의 귀가는 의외로 빨랐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니 맛있는 냄새와 함께 주방이 이미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만두와 요리 영상을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만두전골을 준비하고 있는 남편을 보자 피로가 벌써 조금 풀렸다. 만두전골은 어느덧 육수만 붓고 끓이면 완성되도록 정갈하게 냄비에 세팅되어 있었다. 

가지런히 구워진 만두와, 정갈하게 셋팅된 만두전골

 그 모습을 보며 잠시 결혼의 순기능에 관해 생각했다. 시간과 체력의 한계를 메울 수 있도록 나 이외의 손길이 하나 더 있는 일. 결혼의 바람직한 순기능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장점이 십분 발휘된 요리는 비주얼이 좋았다. 만두 케이스에 그려진 샘플과 똑같이 예쁘게 구워진 바삭하고 따뜻한 군만두를 하나씩 떼어먹으며 만두전골이 끓기를 기다렸다. 전골 속 재료들이 익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계란을 두르며 만두전골이 완성되었다. 우리는 메인요리인 만두전골을 냄비째 식탁으로 옮겨왔다. 

 먼저 따뜻한 국물부터 맛을 본다. 어느덧 차가워진 저녁바람에 추웠던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따뜻한 국물은 소고기 가루의 힘을 빌린 것을 알면서도 손맛이라 기꺼이 속고 싶은 다정한 맛이었다. 배추와 버섯과 만두를 차례차례 건져먹으며 인스턴트지만 건강함이 추가되어 온전히 인스턴트는 아닌 요리에 기대어 그날의 피로와 허기를 해결했다. 어느덧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반가운 마음에 잠이 잘 올 것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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