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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18. 2023

오뎅(おでん)의 아름다운 쓸모

무한한 오뎅(おでん)의 세계

 집에서 가장 큰 전골냄비를 꺼낸다. '무'를 통으로 자른다. 두께 3-5cm 정도로,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게 통으로. 전골냄비에 물을 받아 통으로 자른 무를 넣고 우동스프를 하나 풀어준다. 끓인다. 무가 다 익어 투명해질 때까지 30분가량 팔팔 끓인다. 무가 익을 동안 다양한 종류의 어묵을 손질한다. 


 남편은 오뎅을 끓이고 있다. 국물요리 덕후답게 그의 요리들은 대부분 냄비에서 이루어진다. 밀푀유나베, 모츠나베, 만둣국, 오뎅... 돌고 돌아 오늘은 오뎅이다. 

 일본은 특정 몇몇 식재료가 특화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는 '어묵'이다. 바다 위 섬나라이기 때문일까. 마트에 가면 냉장식품 한쪽 어묵코너에 온갖 종류의 어묵이 가득하다. 우엉어묵(ごぼう天), 튀긴 두부어묵(厚揚げ), 표고버섯 어묵, 치즈 어묵, 구멍 뚫린 어묵(ちくわ), 일반적으로 어묵 하면 떠올리는 보통 어묵조차 모양에 따라 둥근 어묵(丸天), 사각어묵(かく天) 등으로 나뉜다. 그 밖에도 오뎅에 넣고 함께 끓일 곤약, 스지, 유부 떡주머니(お餅の巾着), 삶은 달걀, 말린 표고, 소시지 등의 식재료까지 따져보면 오뎅의 세계는 무한하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오뎅이나 어묵은 식재료이며, 오뎅을 넣고 끓인 탕을 어묵탕 혹은 오뎅탕이라 부르지만, 일본에서 '오뎅(おでん)'이라하면 오뎅을 넣고 끓인 '오뎅탕' 자체를 뜻한다. 

찬바람 조금 불기 시작하면 마트 냉장식품 한쪽코너는 오뎅재료로 가득 채워진다.
(좌)오뎅에 넣을 '유부'만해도 종류가 많다.(가운데)곤약도 모양별 색상별로 비치되어 있다.(우)도시락 데코용 귀여운 어묵
어묵은 종류별로 소포장해서 팔고, 포장에는 각각의 이름이 적혀있다.  

  일본 오뎅의 신세계를 처음 맛본 것은 어머님을 통해서였다. 오래전 일이다. 집에 방문하셨던 어머님의 캐리어에는 각종 먹을거리와 오뎅재료가 잔뜩 들어있었다. 어머님은 곧 오뎅 요리를 시작하셨다. 무를 통으로 썰고, 유부 안에 찹쌀떡을 넣어 실로 묶고, 계란을 삶고, 어묵을 한입 크기로 자르고, 국물에 우동스프를 풀고... 오랜 시간의 능숙함이 몸에 배어있는 어머님의 요리하는 모습은 구경만으로도 흥미로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오뎅을 맛본 뒤, 먹기 전에 '오뎅은 오뎅일뿐'이라고 지레 짐작한 나의 짧은 식견을 반성했다. 정성이 가득 담겨있었기 때문일까. 어머님표 오뎅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부족한 언어로 맛을 표현할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오뎅은 오뎅 이상이었다. 

 그 뒤로 먹어본 적이 없던 오뎅을 일본으로 이사 온 뒤 종종 만들어 먹고 있다. 좋은 기억이 담긴 어떤 음식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먹는 일이 더 좋은데 내게는 오뎅이 그랬다. 남편은 가끔 오뎅재료를 종류별로 잔뜩 사 와 오뎅을 끓이는 날이 있다. 

(좌,가운데)어머님의 최애 조미료 우동스프. 소고기 다X다 처럼 우동 이외에도 각종 국물요리에 사용한다. (우)데워먹으면 되는 완제품 오뎅. 직접 만드는게 훨씬 맛있다

 조금씩 무가 다 익어 간다. 어느덧 무는 부드럽고 투명해져 있고, 우동스프의 도움까지 받아 집 안에는 따뜻하고 맛있는 냄새가 가득 차기 시작한다. 손질한 오뎅 재료들을 냄비에 투하하고 끓을 동안 남편은 곁들임 양파무침을 만든다. 양파를 잘라 고춧가루와 간장, 식초를 넣고 버무린 곁들임 요리를. 오뎅은 금세 익는다. 오동통해지면 완성. 

 이제 식탁으로 옮겨 다양한 재료들을 기호대로 골라먹을 차례다. 나는 무와, 곤약, 표고어묵과, 두부어묵 등 탄수화물(!)이 비교적 적게 들어간 것 위주로, 아이는 소시지와 일반 어묵 위주로, 남편은 손에 잡히는 대로(!) 일품이지만 일품이 아닌 요리를 먹으며 각자의 입맛대로 모두가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다. 

터질것 같이 오뎅이 오통통해지면 완성. (우) 곁들임 양파 무침

  조금씩 날이 추워지고 있다. 조금 추워진 이후로 오뎅을 첫 개시했다. 언제나 그렇듯 아름다운 시작이었다. 올 추위에도 분명 오뎅의 힘이 필요할 것을 알려주는.  


 음식에 관해 글을 쓰는 일은 대체로 즐겁다. 즐겁게 쓴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읽길 바라며 글을 쓴다.. 

 언제나 이곳을 방문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조금씩 추워지고 있네요. 환절기 감기 조심 하시고 건강한 가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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