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 레시피
오래전 '공지영'작가님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공지영 작가는 대중의 입맛에 맞는 책을 쓰는 소위 만들어진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이야기에 관한 사회자의 말에 그는 답한다. '안데르센'도 당대에는 대중 소설가였다고. '대중의 구미'를 모르고 작가님 개인에 관해서도 모르지만, 작가로서 그의 어느 부분이 대중에게 어필하는지 어렴풋이는 알 것 같았다. 그의 어떤 책들은 내게 분명 위로였다. 그 위로에 기대어 어떤 시간들을 견뎠던 날들이 내겐 있었다.
'소설가'로 유명한 분이지만 나는 그의 에세이를 좋아했다. 특히 딸에게 말하는 형식으로 써 내려간 에세이에는 산뜻한 따뜻함과 지혜가 담겨있어 좋았고, 같은 형식으로 써진 요리 에세이도 꽤 좋아했다. 간편하면서도 따뜻함이 담긴 그가 소개했던 요리들을 언젠가는 만들어봐야지 하고 잊고 있다가, 날씨도 마음도 스산했던 어제 기억 속에 있던 요리 중 하나인 '두부어묵탕'이 떠올랐다.
'평생을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는 없어. 그러나 10분은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 있다. (중략) 그것이 수억 개 모인 게 인생이야. 그러니 그냥 그렇게 지금을 살면 되는 것. 그 10분을 위해 집으로 가는 길에 길모퉁이의 작은 슈퍼에 들러 넓적한 어묵과 두부를 사거라. 맛있는 가을무가 있으면 그것도 하나 사자.' -공지영, 딸에게 주는 레시피
가을이었고, 마침 집에 모든 재료가 있었다. 넓적한 어묵은 아니었지만 괜찮았다. 곧 그 간편하고 따뜻한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끓는 물에(맹물이나 육수) 무를 한입에 먹기 좋게 잘라 넣고 된장과 고추장을 2대 1 비율로 넣고, 어묵도 두부도 비슷한 크기로 잘라 넣고 끓이다 마늘, 파 넣고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 끝.
'부글부글 끓어오를 때쯤이면 무는 투명하게 익고 어묵은 부들부들 불어나고 두부는 탱탱해진다.'라는 작가의 설명이 기대감을 더했다. 그것이 끓고 있는 것을 보다 보니 글을 쓰고 싶었다.
브런치북 연재를 하나 시작했다. 시작한 자체를 알아차린 분들은 많이 없겠지만 내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망설이다가 지금이 아니면 못할 것 같았고, 어떤 일들은 어떤 시간이 지나면 유효성이 상실되는 것을 알기에 일단 브런치북을 만들었다. 쓰고 나니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려 삭제버튼이 있는지 알아보고 있는데 누군가 이미 라이킷을 눌러주셨다.(감사합니다!) 어쩌면 그 덕분에 지체 없이 미리 써둔 1화를 발행했다.
나야말로 매 순간을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되게 살 수는 없겠지만, 연재글을 쓰며 의미 있고 어여쁘고 선하고 재미있고 보람된 것 중 하나는 누리리라는 것을 믿어보기로 한다. 읽는 분들께도 부디 그 마음이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어느덧 무는 투명하게 익고 어묵은 부들부들 두부는 탱탱해진 그 상태가 되었다. 맛보지는 않았어도 이미 성공임을 알 수 있는 형태의 요리가 손끝에서 빚어졌다. 새로 시작하는 나의 글도 그렇게 손끝에서 아름답게 빚어지기를 부디 바라본다.
새로운 브런치북은 이곳에 있습니다. 많은 사랑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ranyfukuo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