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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Nov 07. 2023

돈지루(豚汁)를 끓이며

포근한 '집'에서 만든 '균형 잡힌' 요리

 제목에 직접적으로 '다이어트'나 '살 빼기' 같은 단어가 들어간 책은 보지 않는다. 그냥 안 읽게 된다. 제목부터 노골적인 느낌이라, 재미가 반감되어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당신의 살을 빼 드립니다.'를 읽게 된 것은 그것이 '카기야 미우'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분의 인지도나 유명세에 관해서는 알지 못하고 나에게도 익숙한 작가는 아니나, 작품이 좋았다. 그의 저서 '당신의 마음을 정리해 드립니다.'를 의미 있게 읽은 나는 술술 읽히면서도 가볍지 않고 무언가 마음의 어느 부분인가를 누르는 부분이 있는 작품을 쓴 그가 저자라는 이유로 '당신의 살을 빼 드립니다.'라는 선호하지 않는 제목의 책을 기대감으로 펼쳤다.

 단편소설 형식으로 이어지는 4편의 이야기들은 과연 '카기야 미우'다운 책이었고, 읽다 보니 아이를 위해 '돈지루(豚汁)'를 만들고 싶어졌다. 다음은 본문의 일부를 편집, 발췌한 대목이다.


"여러분이 왜 뚱뚱한지 이유를 알았어요. 영양부족이에요."

"우리가 영양부족이요? 이렇게 살이 쪘는데?"

"필요한 영양분이 부족하니까 뇌는 영양분을 더 많이 채우라고 지시를 내려요. 그런데 여러분의 식사는 탄수화물과 당분과 지방뿐이어서 아무리 먹어도 뇌가 배부르다고 느끼지 못해요. 악순환이죠."

-당신의 살을 빼 드립니다, 카기야 미우


 책 속 등장인물인 '오바 고마리'가 사람들의 살을 빼는 일을 도우며 초등학생 의뢰인들의 건강 상태를 지적하는 부분에서 편하게 넘어가지 못했던 이유는 내 아이의 영양상태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 먹는 건 뭐든지 허용하는 남편과 달리(남편은 아이에게 라면, 탄산도 내 기준으로 보면 자주 준다.) 나는 아이의 영양상태를 신경 쓰는데, 아무래도 입맛에 맞는 것만 많이 먹는 아이를 보면 영양상태가 분명 균형 잡힌 상태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래보다 키가 크고, 덩치도 큰 편인 아이를 생각하니 문득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이어서 '오바 고마리'는 아이들에게 제안한다. 성장기 때는 먹는 걸 줄이면 절대 안 되고, 영양을 균형 있게 제대로 섭취해야 한다고. 이어서 골고루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 요리인 '돈지루(豚汁)' 끓이는 법을 알려준다.

 돈지루는 돼지고기가 들어간 미소시루의 한 종류로써, 돼지고기와 채소를 넣고 미소 된장으로 맛을 낸 요리이다. 그 부분을 읽으며 생각했다. 나도 아이에게 돈지루를 끓여 주어야겠다고.

 집에는 한국 된장 밖에 없어서 바로 미소(味噌)를 사 왔다. 책에서는 양파, 무, 당근, 감자, 두부, 고기를 몽땅 넣고 끓인 뒤 미소로 간을 맞췄지만 뭔가 더 맛있는 방법이 있을까 해서 인터넷을 검색한 뒤 곧 만들기에 돌입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삼겹살을 살짝 구워서 기름을 빼주고, 말린 표고를 넣어 함께 육수를 끓이고 깊은 맛을 위해 우동스프도 넣어준다. 끓는 동안은 다른 채소(감자, 당근, 두부)를 손질한다.

손질한 채소들을 넣고 함께 끓여주고, 마지막에 두부를 넣고 끓인다. 재료가 모두 익으면 미소를 넣어 간을 맞춘다. 끓는 동안 거품이 생기면 수시로 걷어준다. 끝.

 끓이다 보니 어느덧 집 창문에는 습기가 가득 맺히기 시작했다. 따뜻한 국물 요리는 언제나, 언제나 옳다. 특히 날이 추워질수록 그 진가는 빛을 발한다. 요리의 온기로 창문에 습기가 가득 맺힌 상태를 보면, 원래 '집'이지만 그야말로 정말 ‘집’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의 뉘앙스는 잘 모르지만 House가 아닌 Home이라 표현하면 적당할까. 포근하고 정겨운 집. 포근하고 정겨운 집에서 그렇게 '돈지루(豚汁)'를 끓였다.  

 특별히 힘들이지 않고 한 냄비가 빠르게 완성되었다. 돈지루에 갓 지은 밥을 곁들이니 다른 요리는 필요치 않았다. 아이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무척 맛있게 먹었다.

 바쁜 엄마 밑에서 긴 시간을 혼자 보내며 영양 불균형인 식사를 하던 책 속 주인공 아이는 말한다. 학교에 있는 동안, 집에 가면 커다란 냄비에 돈지루가 잔뜩 남아 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차분해졌다고. 돈지루를 먹다 보니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이래서 마음이 차분해졌겠구나. 소울푸드로 삼기에 부족함 없는 맛이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언젠가는 '돈지루(豚汁)'를 끓이는 법을 알려주어야겠다. 허기지는 어느 추운 날 저녁 함께 돈지루를 끓이며 창문에 맺힌 습기를 보며 함께 먹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돈지루(豚汁)'를 생각하면 따뜻한 분위기가 감도는 포근한 '집'을 함께 떠올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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