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Nov 26. 2023

'훠궈(火鍋)' 먹기 좋은 날

만든 '훠궈(火鍋)'를 먹는 마음

 음식은 날(日)이나 상황의 선택을 받을 때가 많다. 그로 인해 특정한 상황과 세트로 묶이거나, 특정한 날 어울리는 음식들이 있다. 관용어처럼 된 '비 오는 날의 파전'이나 비 오는 날의 칼국수 혹은 수제비, 이삿날의 중국요리, 소풍날의 김밥, 우울할 때의 단 음식이나 추운 날의 국밥 같은. 어떠한 상황에 운치를 더하거나, 감각을 조율해 주는 음식들.

 일반적으로 날씨나 상황에 따라 음식을 선택한다면, 내게 훠궈(火鍋, 중국식 샤부샤부)의 경우는 음식이 날(日)을 선택한다. 훠궈를 만드는 법을 모르고(사실 남편도, 나도 배울 의지가 없다.), 사 먹을 만한 곳을 찾을 만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아 능동적으로 먹을 수 없는 요리이기 때문일까? 그 이유로 훠궈(火鍋)를 먹는 날은 훠궈를 먹기 좋은 날이다.


 불편한 모임에 조금씩 발을 빼기 시작했다. '불편함' 까지는 아니어도 친목을 위한 편한 의도로 만들어진 자리지만 '나답지 못함'을 연출하느라 방전되는 자리는 (종종) 참석하지 않을 때가 많다. 남편의 지인이나 가족 모임에 종종 참석하지 않는다. 자연스러움 이상의 에너지를 끌어내 친목을 도모하는 자리보다, 나의 시간이 소중하다 여겨질 때 "나는 안 갈래. 잘 다녀와."라고 말하는 순간의 불편함 내지는 미안함을 감수한 뒤 펼쳐지는 나만의 신세계를 사랑한다. (이제는 거절하는 순간의 불편함도 약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머리로 참석 여부를 고민하기 이전에 예스를 하는 자리가 있다면 훠궈(火鍋)가 있는 날의 모임이다. 훠궈 냄비를 가운데 놓고 앉아, 불편하거나 나답지 않음을 연출할 필요 없이 방심하는 자리. 내게 훠궈가 있는 날의 풍경은 그러하다.

(좌)중국에서 가져온 재료에 이것을 섞어 훠궈 육수를 만든다(고 한다).(가운데, 우)훠궈블럭과 파, 생강, 이름모를 재료등을 넣고 우린 육수. 오래 끓일 필요는 없다.

 식탁 한가운데 인덕션이 놓여있다. 인덕션 위에는 2-3인용의 냄비가 올려져 있고, 냄비에는 훠궈용 육수가 담겨있다. 훠궈 블록과 생강 대파, 이름 모를 흡사 약재(藥材)가 연상되는 각종 중국산(産) 재료들을 넣고 우린 육수가. 훠궈는 재료를 넣은 뒤, 실시간으로 건져 먹는 음식이니 인원이 많다고 큰 냄비가 필요치는 않다. 인덕션을 중심으로 주변에 손질된 재료들을 펼친다. 마, 각종 버섯, 쑥갓, 배추, 양상추, 시금치, 청경채, 고기, 생선완자, 해산물, 고구마 납작 당면, 소시지... 훠궈가 품을 수 있는 무한한 재료들을. 각자의 앞에는 훠궈를 찍어먹을 소스를 버무릴 그릇과 젓가락을 세팅하고 아이 앞에는 훠궈의 매운맛을 씻어 낼 미지근한 물그릇을 하나 놓아준다. 먹을 준비가 완료되면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인덕션 불을 올린다. 준비한 분께 감사를 표하고, 신나게 '훠궈(火鍋)'를 먹기 시작한다. 맵고 강렬한, 중독적이고 자극적인 맛의 집합체인 훠궈를 함께 즐긴다.

훠궈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들. 뭐든지 포용이 가능하다.(우)훠궈용 소스. 고수, 쪽파, 마늘, 참기름등을 취향껏 비율을 조절해 넣은 뒤 참깨 소스에 버무린다.

 재료를 하나하나 넣고 찬찬히 익혀먹으면 성에 차지 않는 우리는 냄비가 넘치도록 재료들을 한 번에 잔뜩 집어넣고 먹으며, 먹는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재료를 투하한다. 즉석요리에 수반되는 그 지속적인 행위로, 행여 자리가 불편하거나 침묵을 느낄 틈이 없다. 그렇게 여러 번 재료를 투하하다 보면 어느덧 한 사람씩 그만 먹기 시작하고 서서히 인덕션 불을 낮추다 종래는 불을 끈다.  

 언제나 옳은 것은 드물지만 음식에 있어서 그 표현은 관대하게 적용된다. 언제나 옳은 음식은 많고, 경험에 의하면 훠궈 또한 언제나 옳다. 훠궈의 맛은 언제나 옳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만든 요리를 먹다 보면 내게 불편한 지점이 하나 있다. 직접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나는 아는, 그렇지만 상대의 마음은 확인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모르고 싶은 그 불편함은 부채감(負債感)에서 기인한다. 재료를 일일이 손질해 요리를 만드는 노고에 비해, 가끔씩 마늘을 까는 정도로 거드는 나의 손길이 턱없이 보잘것없음을 아는 것에 따른 부채감. 그럼에도 그에 상응한 요리를 내줄 엄두가 안나 우리의 식탁에 초대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칠 생각조차 못하는 것에 따른 부채감.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할 다른 방법을 생각하면 다시 머릿속이 바빠진다.  

 그럼에도 부채감으로 초대에 응하지 않기에는 훠궈의 유혹은 강력해서, 이번에도 무의식 중에 훠궈 먹기 좋은 날의 선택을 받고 말았다. 의식이 수반되어도 선택은 같았겠지만.

 먹은 자리를 정리하며 만류를 사양하고 설거지에 나섰다. 다른 마음은 없었다. 단지 기꺼운 마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이외의 것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한다. 확실한 것은 그날도 훠궈 먹기에 좋은 날이었다.


 '틀릴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을 안다. 그럴 때는 혼자 숨어서 그리면 된다. 마음에 들 때까지 칼날을 다듬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혼자 만들어낸 날이 성에 차지 않는 때가 온다. 뭔가 틀리고 있다는 감각 때문에 갈증이 온다면 그때가 배울 때다. 며칠 물을 먹지 못한 화분이 물을 빨아들이듯 배움을 흡수할 수 있다. 그러니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틀려보는 것이다.' -이연, 모든 멋진 일에는 두려움이 따른다.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강력한 방식은 역시 책이다. 무언가 의욕이 사라지거나, 자신이 없을 때 책의 어느 부분 들은 나를 일으켜 세운다. 며칠에 걸쳐 조금씩 이 글을 쓰며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 읽으나 마나 한 재미없는 글이 될까 자신감을 잃은 마음에 의욕을 준 것은 위의 대목이었다. 덕분에 결국 이 글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글을 마무리 짓길 바랐던 소망 위에 작은 소망을 하나 더 얹는다면, 요리에 관한 글이 부디 따뜻하고 맛있게 읽히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썼다.  

매거진의 이전글 돈지루(豚汁)를 끓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