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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Dec 01. 2023

말레이시아에서 날아온 달콤한 온기

흑백의 날에는 카야(Kaya) 토스트를

흑백의 날이 이어지고 있다. 

 춥고 스산해졌다. 비나 눈이 오려는지 어제부터 흑백의 날이 이어지고 있다. 하늘도, 풍경도 흐려서 색깔이 있는 것들의 색조차 흐리거나 바래게 보이도록 만드는 흑백의 날. 이런 날은 마음도 스산해지기 쉬워, 온기가 담긴 글을 쓰고 싶었다. 사진만 저장해 두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 쓰지 않았던 '말레이시아에서 날아온 온기'에 관한 글을 펼칠 시간이다. 

스산한 흑백의 날

 한동안 '카야(Kaya) 토스트'가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별다른 흥미가 없었던 것이 이유겠지만, 나는 그 열풍에 미처 휩쓸려 보지 않은 채 카야의 맛을 모르고 지나갔다. 그 후 이름조차 희미해진 '카야(Kaya)'를 기억에서 불러오고, 토스트를 만들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뜻하지 않게 카야잼을 만났기 때문이다. 

 말레이시아에 다녀온 (손이 큰) 지인을 통해 커다란 꾸러미의 선물을 받았다. 다양한 쿠키와 종류별 화이트커피가 잔뜩 담긴 다정한 꾸러미 속에 함께 있던 것은 '카야잼'이었다. 어렴풋이 기억에 있던 카야잼을 마침내 이렇게 만나니 반가웠다. 살짝 찍어 맛을 보았다. 고소하고 달콤하다. 언젠가 먹어본 것 같은 맛에 정체를 확인하니 코코넛, 설탕, 달걀로 만든 잼임을 알 수 있었다. 카야잼은 개봉 후 2주 이내로 소비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곧 토스트 만들기에 나섰다. 

 내게는 만들어 먹기 위한 요리가 있고, 만들어 주기 위한 요리가 있는데 후자의 대표적 요리 중 하나는 '토스트'이다. 가끔 다른 사람을 위해 토스트를 만든다. 내가 토. 스. 트. 를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주는 이유는 요리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직접 만든 무언가를 주고 싶은데 요리에 자신이 없을 때 토스트는 안전하다. 빵을 굽고, 잼을 바르고, 야채를 넣고, 계란을 굽고, 설탕을 뿌리고, 버터를 두르는 등. 토스트는 무언가 맛을 개량하고 조합해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행위만 하면 완성되는 요리이기에 실패가 없다.  

 '카야토스트' 레시피를 검색했다. 다양한 레시피 중에 틀림없을 조합인 치즈+버터+카야잼을 택했다. 버터를 두른 팬에 식빵 두쪽을 굽고, 구운 식빵 위에 카야잼을 두툼하게 바른 뒤 치즈를 올리고 나머지 한쪽면도 동일한 과정을 거친 뒤 포개면 완성. 빵을 태우지 않는 한 실패할 수 없는 안전한 레시피. 

 빠르게 만들어 남편과 아이에게 권했더니 자발적으로 엄지를 올린다. 단짠의 조합에 버터의 풍미까지 더해졌으니 당연하다. 성공!

다음은 말레이시아에서 유명하다는 화이트커피(White coffee)를 만들어 본다. 만든다는 말이 무색하게 간단하다. 커피와 크림과 우유가 들었다는 풍성한 화이트 커피 가루에 따뜻한 물과 우유 조금을 붓자 금세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가 만들어졌다. 그걸 마시면서 글을 썼다. 손이 큰 지인 덕분에 화이트커피와 쿠키가 풍성해 주변 친구들과도 나눌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날아온 달콤한 온기를 퍽 바람직하게 사용한 날이었다. 

이것이 화이트 커피

 마음까지 스산해지기 쉬운 스산한 날이다. 마음의 스산함을 이겨내는 것에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내게 그중 하나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온기다. 그 온기를 떠올리며 스산함을 몰아낸다. 

 그럼에도 아직 춥다. 남아있는 몸의 스산함은 오늘 저녁 가까운 온천물에 들어가서 몰아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밤의 온천'을 떠올리자 다시 조금 따뜻해진다. 그렇게 따뜻한 것들을 곁에 두다 보면 어느덧 이 흑백의 날도 지나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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