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Feb 29. 2024

음식은 만드는 사람을 닮아있다.

현명함의 비법(秘法)

음식은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닮았다.

 택배가 도착했다. 배추겉절이와 깍두기, 나물무침, 장조림... 손맛이 가득 담긴 어머님의 사랑이 형상화된 '냉장'택배가. 감사하게도 한국에서는 친정엄마의, 일본에서는 시어머님의 보살핌과 사랑이 음식으로 형상화되어 나를 따라다닌다.  

 사람은 자신을 닮은 음식을 좋아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생각해 보면 요리도 그렇다. 요리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을 닮아있다는 것을,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를 보며 느꼈다. 두 분이 만든 음식의 모양과 맛을 떠올려 보니 어김없이 두 분의 성품을 반영하고 있어 한편으로 조금 웃음이 났고, 글을 쓰는 지금은 조금 그립다.  

어머님의 음식은 어머님을 닮아있다.

 어머님과의 만남은 드물게 이어진다. 기회가 닿을 때 한 번씩 짧고 굵게 만나는 어머님이지만, 어머님의 애정과 마음을 확신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어머님의 음식에서 읽히는 어머님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 오리지널 일본 오뎅을 처음 끓여주신 분도, 일본 카레가 무척 맛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신 분도, 치라시스시를 처음 소개하고 만들어 주신 분도, 오코노미야끼에 한계 없이 다양한 재료를 담아 구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 분도 모두 어머님 이셨다. 함께하는 짧은 시간 동안, 어머님이 만들어 주시는 요리들은 강렬했고 특별했다. 그것들이 비일상(非日常)의 요리였기에 불러온 착각 내지는 환상은 아니었다. 익숙한 비빔밥도, 부침개도, 된장찌개도 이미 친숙했던 일상의 요리도 어머님의 손을 거치면 신기하게도 말할 수 없는 특별함을 한 스푼 얹은 요리로 탄생되었다.

 어머님의 음식은 다양하고 화려했다. 심심하거나 단조롭지 않으며, 기본에 충실했다. 그 요리는 지나치게 가볍거나 어둡게 무겁지 않으며, 적재적소에 발휘되는 유쾌함을 갖고 계시는 어머님의 성품과 센스를 닮아있다. 그 단순하지 않고 풍부한 맛의 요리들은 조미료로 점철된 어떤 기교가 아닌, 신선한 재료를 아낌없이 듬뿍 사용하는 본질에 충실하는 것에서 기인하고 그 자체가 삶의 본질에 충실한 어머님을 닮아있다. 쉽지 않았을 타국의 삶을 오랜 시간 성실하게 살아온, 삶의 본질을 알고 겪어낸 이의 성품을. 

 일본에 없는 재료들은 다른 것으로 적절히 대체하거나 비슷한 것을 찾아내 음식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길을 찾아오셨을 어머님을 예측할 수 있었고, 마트에서 한번 보고 생소해서 지나쳤던 낯선 재료들로도 요리를 만들어 내시는 모습을 보면 새로운 것들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상황에 잘 적응하셨겠구나 생각하며 그분의 지난 시간들을 떠올려본다. 그렇게 나는 음식을 통해 드러나는 어머님의 '현명함'을 읽는다. 

어머님의 최애 조미료 우동스프(좌)와 맛술(우)

 어머님의 다채로운 요리들을 사랑하지만, 그것들을 감사하며 맛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나는 두 가지 비법 아닌 비법만 기억한다. 그분의 애정템인 미림(맛술)과 우동스프를. 그것을 적절히 활용하면 여차저차 요리는 될 테니 그것으로 만족하고, 그 비법 아닌 비법처럼 요리에서 읽힌 어머님의 좋은 가치들도 비법처럼 나타나 내게 스며들기를 기대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말레이시아에서 날아온 달콤한 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