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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Mar 12. 2024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시간속의 치라시스시

  곳곳에서 ‘봄(春)’의 아름다운 징조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집을 밝히는 햇살의 빛깔도 어제보다 화사해져 있고, 외출 시 몸에 닿는 바람의 차가움 끝에는 온기가 묻어있다. 길가 화단의 꽃들에도, 나무에도 하루가 다르게 파릇한 기운이 선명해져 간다.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일본의 봄이 오는 모습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봄이 다가오는 익숙한 풍경 속 ‘히나 인형(雛人形)’이라는 낯선 존재를 만날 수 있다. 지금 일본은, ‘히나마츠리(雛祭)’를 맞이하고 있다. 

↑각각의 고유함을 지닌 히나 인형(雛人形)

 ‘히나마츠리(雛祭,りひなまつり)’는 매년 3월 3일 여자아이의 행복을 기원하며 붉은 천으로 덮은 ‘히나단(ひな壇)’에 ‘히나 인형(雛人形)’을 장식하는 일본의 전통 축제로, 축제를 한 달 이상 남겨두고 일찍부터 곳곳에서 축제를 준비하는 ‘히나 인형(雛人形)’들을 만날 수 있다. ‘히나마츠리’에는 온 가족들이 모여 어린 여자아이의 미래를 축복하며, ‘히나단’에 쌓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아이의 몸에서 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의미의 백색 술 ‘시로 자케(白酒)’와 쑥 향기로 악한 기운을 쫓는 쑥떡 ‘쿠사 모치(草もち)’, 봄을 대표하는 꽃인 벚꽃을 활용한 ‘사쿠라 모치(桜餅)’, 그리고 피어나는 봄날의 생기를 닮은 아름다운 치라시스시(ちらし寿司)’

(좌)전차역에서 봄을 기다리는 히나 인형(雛人形)(우)동네 병원에서 봄을 기다리는 히나 인형(雛人形)
(좌)고가(高價)에 판매 중인 히나마츠리(雛祭,ひなまつり)인형 세트(한화 약 1,416,000원)(가운데)(우)여자 아기들을 위한 히나마츠리(雛祭) 용품

 내게는 ‘히나마츠리’의 추억은 없지만 ‘치라시스시(ちらし寿司)’와의 추억이 있다. 오래전, 어머님의 손에서 만들어진 ‘치라시스시’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치라시스시’는 ‘흩트려 놓음’이라는 뜻을 가진 일본어 ‘치라시(散らし)’와 ‘스시(초밥, 寿司)’가 결합된 단어로 단촛물(식초와 설탕을 섞은 것에 소금을 약간 넣어 만든 물)로 간을 한 밥 위에 다양한 빛깔의 재료들을 흩뿌리며 만드는 초밥으로, 축제나 나들이 때 먹는다는 설명과 함께 등장한 어머님표 ‘치라시스시’의 첫 모습은 아름다웠다.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숟가락으로 떠서 맛을 보니 알록달록한 외양만큼 맛도 아름다웠다. 단촛물로 잘 버무려진 밥은 식욕을 돋우었고, 스시 위에 올려진 다양한 빛깔의 재료들은 보는 즐거움과 맛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재료의 맛 또한 다양해, 자칫 일품(一品) 요리가 줄 수 있는 단조로움도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 살던 나는 평범한 우리 집 부엌에서 만들어진, 아름답고 화려한 이국의 요리가 궁금했다. 비밀은 간단했다. 연근, 당근, 표고버섯, 죽순 등이 들어간 ‘치라시스시’ 키트가 있다면, 화려한 비주얼에 비해 쉽게 만들 수 있었다. 

(좌)시판 치라시스시용 키트(4인분)와 스시 재료들.(가운데)키트에 들어있는 단촛물과 절여진 채소와 밥을 잘 섞어준다.(우)스시용 계란은 시판(市販) 제품으로 대체가능하다

 갓 지은 밥을 한 김 식혀 준 뒤, 치라시 스시용 키트를 붓고 밥과 함께 버무린다. 여기까지 하면 절반은 완성이다. ‘치라시스시’ 키트가 없다면 연근, 당근, 표고버섯 등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다지고 섞어 밥을 짓고, 설탕 식초 소금을 1:1:1의 비율로 배합한 단촛물로 버무리면 비슷하게 만들 수 있다. 그 조차 번거롭다면 밥에 넣는 채소들을 생략하고, 단촛물로 밥만 버무린 약식(略式)으로 진행한다. ‘치라시스시’의 핵심은 밥 위에 다양한 재료들을 아름답게 흩뿌리는 일에 있으므로.       

  기본이 되는 스시 밥이 완성되면, 메인이 될 스시 위를 꾸며 준다. ‘전망(前望)이 좋다’는 의미의 연근과 허리가 구부러질 정도의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새우와 ‘건강하고 부지런히 일한다’는 의미의 콩 등 길조(吉兆)의 의미가 담긴 재료들과 색상의 다양함을 위한 계란(노랑), 오이(초록), 맛살(빨강), 어묵 등의 재료를 한 입 크기로 잘라준다. 기호에 따라 연어 알과 연어 등을 넣어줘도 좋다. 모든 재료가 준비되면 만들어진 스시 밥 위에 다양한 재료들을 흩뿌린다. 여러 가지 색깔이 다양하게 조화를 이루도록 구석구석 모든 재료를 꼼꼼하게 배치한다. 

↑조금씩 덜어먹어도 모든 재료가 다양하게 담기도록 골고루 배치한다.

 전통적 의미(여자아이의 행복을 기원함)의 ‘히나마츠리’를 함께 즐길 여자아이는 없지만, 다가오는 봄이 아름다워 ‘치라시스시’를 만들었다. 아름다움에 비해 손쉬운 요리 ‘치라시스시’는 금세 만들어졌고, 만드는 동안 ‘이렇게 이렇게 만든다’며 만드는 법을 알려주신 어머님의 다정한 설명이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분명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시며 만들어 주셨을 어머님 덕분에 만드는 시간 동안 포근하고 따뜻했다. ‘치라시스시’를 알려주신 어머님께도 축제 같은 날들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가족들과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살려 ‘치라시스시’를 나눠먹었다. 봄을 품은 ‘치라시스시’를 먹은 마음에 희망이 깃들었고, 서로로 인해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좌) 해물치라시스시, (우)‘かに(게)’가 주재료로 담긴 치라시스시

※ 칼럼에 사용된 완성된 ‘치라시스시’ 사진은 식당에서 만들어진 요리임을 밝힙니다. ‘치라시스시’ 사진을 제공해 주신 최민지 작가님(‘이럴 거면 혼자 살라고 말하는 당신에게’저자)께도 감사를 전합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요리의 말들' 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741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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