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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19. 2023

온천수(溫泉水)의 온기 속에서

생생하게 잡히는 찰나의 기쁨을 느끼며

 마음속의 생각과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글로 남기는 시간을 좋아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아직까지 지치지 않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은 글을 쓰는 시간 나로 존재하며 깨어있음이 느껴지는 덕분일 것이다. 글의 소재와 내용이 언제나 밝지만은 않지만 좋아하는 것에 관해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고, 그 시간 나는 행복하다. 지난 주말 온천에 몸을 담그며 온천에 관해 글을 쓰고 싶었고, 좋아하는 온천을 글로 쓸 것을 생각하니 기대가 되었다. 좋아하는 대상에 관한 글이, 읽는 분들께도 재미있게 읽히기를 바라며 쓴다. 


 후쿠오카 생활의 장점 중 하나를 꼽자면 내게는 단연 온천(溫泉)이다. 이곳에는 온천이 흐르는 곳이 많아, 원할 때면 어렵지 않게 온천에 몸을 담그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가장 온천이 유명한 곳은 벳부((別府) 지역이다. 벳부는 오이타 현(大分県)에 속한 온천 도시로써, 한국에서도 유후인(由布院/湯布院)과 더불어 제법 알려져 있다. 벳부 지역은 곳곳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는 곳이 많고, 온천 관련 다양한 관광지는 물론 기차역에는 온천수에 손을 씻을 수 있는 구간도 있었다.  

 유학시절 알게 된 오랜 친구 한 명은 벳부에 살고 있다. 친구를 통해 현지 상황을 들어보니 마을에는 100엔(작성일 기준 한화 약 897원)만 내면 이용할 수 있는 주민들을 위한 온천 목욕탕도 있고, 맨션과 같은 일부 공공 주택에는 온천수 물탱크가 있는 곳이 있어 집에서도 물을 틀면 바로 온천수가 나오는 곳도 있다는 정보에 조금 부러웠다. 친구가 그곳에 사는 것을 알기 전에 방문했던 나는 관광객을 위한 온천 시설만 이용했는데, 다음에는 현지인을 위한 온천 시설도 이용해보고 싶다. 

벳부의 온천. 솟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따뜻하다. 제일 오른쪽은 온천 족욕 시설. 족욕만 해도 몸이 나른해진다.
온천이 있는 호텔에서는 전통의상인 유카타(ゆかた)를 빌려주는 곳이 많다. 유카타를 입으면 순식간에 여행자 모드로 전환되어 기분이 좋아진다.
벳부에는 온천 증기로 요리를 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취향껏 고기와 채소를 골라 증기에 20여분 찐 뒤 제공되는 소스에 찍어먹는데 건강해지는 맛이다. 조리는 셀프.

 벳부는 관광지역이라 자주 방문하지는 않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가야 하지만, 현재 있는 곳 근거리에도 온천수 목욕탕이 있기 때문에 아쉽지 않다. 온천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종종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비 오면 비가 와서, 스산하면 스산해서, 날이 추우면 추워서, 바람이 시원하면 시원해서, 맑으면 맑아서. 주말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시간 그곳에 가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럴 때면 종종 엄마 생각이 난다. 따뜻하고 좋아서, 온기가 생생해서, 그 순간만큼은 더 바랄 것이 없어서, 엄마도 온천을 좋아하실걸 아니깐, 나보다 더 만족하며 누리실 걸 아니깐 그 아쉬움에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엄마는 웬만하면 이곳에는 잘 안 놀러 오실 것을 아니깐 생각은 늘 아쉬움으로 끝난다. 

 엄마와 소소한 일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어떨 때는 고민이 된다. 내가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실 엄마의 입장을 알면서, 나 혼자만 누리는 것 같아 엄마와의 가벼운 대화에서도 마음으로 소재를 고를 때가 있다. 좋은 것을 누릴 때면 종종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는데, 온천에 가면 유독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가끔 마음으로 '언젠가는...'이라는 말로 무언가를 기약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어쩌면 결국 아쉬운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기약 없는 기약 아닐까.  

규모는 크지 않지만 깔끔하고 친절한 동네 온천. 제일 오른쪽 노천탕 사진은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엄마는 없었지만 어쨌든 만족스럽게 온천을 마쳤다. 

 따뜻한 온천수를 느끼며 물에 성정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분명 따뜻한 물의 성정은 따뜻함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그렇게 밖에 결론지을 수가 없다. 그 따뜻한 기운이 어느덧 마음까지 스며든다. 남편과 아이에게 뾰족하게 대했던 모습을 떠올리며, 그 마음을 느슨하게 풀기로 한다. 다시 반복될 일상이겠만 다시 뾰족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이겠지만, 그럼에도 오늘분의 가족들을 감싸 안을 만큼의 너그러움을 충전해 이곳을 나가기로 한다.  

온천 시설 내 가판대. 지역 특산품, 수제품등 이런저런 물건들을 파는 모습이 정겹다.

 우리 가족은 한결 가뿐한 모습으로 다시 만난다. 그새 나를 보며 반갑게 달려오는 아이가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가는 길 우동집에 들러 각자의 기호에 맞는 식사를 주문해 사이좋게 나눠먹고,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집으로 향한다. 잠이 잘 올 것 같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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