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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26. 2023

'란가츠(ラン活)'를 했다.

일본 생활에 또 한발 담그며

 독특한 이국의 문화를 알아가는 시간은 언제나 흥미롭다.

 '란도셀(ランドセル)'을 처음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은 '예쁘다'는 생각이었다. 일본 초등학생용 가방이라고만 알고 있던 란도셀이 한화 50-70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의 가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드는 것을 구하기 위해 길게는 1년 전부터 시간을 내서 준비해야 하는지도 나의 일이 되기 전에는 미처 몰랐다.


 아이는 내년에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다. 일단은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예정이니 막연히 '입학 전에 란도셀을 사야지.'라고 생각하던 지난 3월 등원길에 같은 반 아이 엄마를 만났다. 그에게 오후에 아이 란도셀을 사러 가야 해서, 수영 수업 참석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몹시 의아했다. "에?? 란도셀이요? 초등학교 입학은 내년 4월이니 1년도 더 남았잖아요? 너~무 빠르지 않나요(일본은 4월에 새 학기가 시작된다)?"라고 묻자 아이 아빠가 오늘밖에 시간이 안 돼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그렇군요.'라고 답하고, 여전히 납득이 안되던 나는 언니와 통화하다 그 사실을 말했고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난 언니를 통해 일본 란도셀 문화에 관해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란도셀을 구매하는 활동이 대대적인 행사였다. 한번 사면 보통 초등학교 6년 내내 쓰는 고가의 그 가방을 위해, 마음에 들고 희소가치가 있는 예쁜 것을 선점하기 위해 길게는 1년 전부터 아이 부모들이 일부러 휴가까지 내서 예약에 나선다는 사실을, 란도셀은 대부분 주문 제작으로 이루어지기에 미리부터 주문을 넣고 기다리며 입학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란도셀을 구하는 활동을 란도셀(ランドセル)과 활동(かつどう, 活動)의 앞 글자만 따서 '란가츠(ラン活)’라고 불린다는 것도 이번기회에 알게 되었다.

가끔 쇼핑센터에서 즉시 구매 가능한 란도셀이 할인된 가격에 판매되기도 하지만, 한번 구입하면 보통 6년 내내 사용하는 만큼 심혈을 기울여 고르는 경우가 많고, 주문하면 제작 기간이 길게는 반년 가까이 소요되며, 행여 늦게 구매한다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지나치게 무난하거나 선호도가 떨어지는 물건만 남아있을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에 불현듯 없던 초조함이 생겼다. 심지어 같은 반 아이 엄마는 아이를 셋을 키우고 있는데 셋째 아이 란도셀을 1년 전부터 서두르는 것을 보면 분명 경험에 의한 행동일 것이라는 생각에 초조함의 강도가 짙어졌다.

 그 초조함은 나도 당장! 란도셀을 예약하지 않으면, 마치 내 아이에게는 가장 안 예쁜 란도셀만 남겨져 있어 아이가 맘에 안 드는 가방을 메고 다녀야 할 것 같은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제야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작년 말부터 아이 유치원 가방에 줄기차게 란도셀 카탈로그들이 딸려오던 일이. 아직 멀고 먼 이야기라는 생각에 가차 없이 카탈로그들을 내버렸던 나의 모습까지 떠오르며, 당장 란가츠(ラン活)에 나서야 할 것 같았다.

  집에 몇 개 없는 란도셀 카탈로그를 추리고, 같은 반 엄마에게 정보를 물어본 뒤 가볼 만한 매장을 물색해 그 주말 바로 란도셀을 보러 갔다. 다행히(?) 아직 종류는 많았고, 신랑, 나, 아이 모두 돌아다니는 걸 귀찮아해 첫 매장에서 어느 정도 의견을 모은 뒤, 짙은 그린색의 란도셀을 찜해 놓고 마지막 주문 가능일을 확인 후 명함을 받아 돌아왔다. 그렇게만 해도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아이가 남자 아이라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온갖 종류의 휘황 찬란하고, 블링 블링한 여자 아이들의 란도셀을 보자, 지나치게 예뻐서 결정하는데 심각하게 고민이 될 것 같았고, 예쁜 것을 선점하기 위해 미리부터 손써야 할 것 같은데 정보력도, 부지런함도 심히 떨어지는 나로서는, 대부분 심플한 가방 일색인 남자아이의 보호자라 오히려 편했다.

 그 후로 틈틈이 란도셀 행사장을 몇 군데 방문했으나 특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없었고, 결국 처음 보았던 매장의 다크 그린한 란도셀을 주문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다시 그곳에 방문했다. 가방을 선택한 걸로 끝은 아니었다. 가방 색깔을 물론이며 가공방식에 따른 질감, 가방에 바느질되어 있는 실의 색상, 가방 안쪽면의 색상, 위험방지 야광 테이프 부착 위치, 가방에 새겨질 이니셜(서비스), 가방 안쪽면 박음질 실 색상 등 고를 것이 많았다. 마침내 그 모든 선택 사항에 관한 선택을 끝나고 지난 5월 란도셀을 주문했고, 주문한 란도셀이 제작완료되어 8월 말 배송받으며 짧지만 강렬했던 '라가츠(ラン活)’를 완료했다.

첫 매장에서 보았던 이것으로 최종 확정했다. 귀찮아서는 아니다. 이것이 제일 예뻤다. 색상은 '다크 그린'
다양한 란도셀 카탈로그들과 배송 완료된 란도셀.
한 군데 한 군데 무척이나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만지기 조심스러울 정도다. 저상태 그대로 내년 4월까지 보관해야 한다.ㅋ

 방 한구석에서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의 '란도셀'을 보며 바라본다. 학교 생활이 시작되면 아이가 엄마 아빠의 마음이 담긴 가방을 메고 즐겁게 학교를 오가며 많은 추억을 쌓고 많이 사랑받고 많이 사랑하는 시간이 되기를.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배우며 몸도 마음도 아름답게 성장하기를. 소중한 시간들이 아이의 삶에 보물처럼 쌓여, 그 추억들이 아이가 살아가는 날동안 큰 힘이 되어주기를.    


 글을 쓰며 '란도셀'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어원은 네덜란드어로 백팩을 뜻하는 단어 중 하나인 '란설'(ransel)이 일본어에서 '란도세루(ランドセル)'로 변형되었다. 란도셀은 물에 빠졌을 때 튜브 대용으로 쓸 수 있고,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충격을 흡수하는 완충기능을 갖춘 가방이라고 한다. 또한, 튼튼한 가죽으로 만들어졌고 안에 철판이 부착되어 있어 지진 및 유사시 머리를 보호할 수 있게 제작되었다고 하며, 한번 사면 기본적으로 초등학교 6년간 사용하기 때문에 보통 무료 6년 AS가 가능하다고 한다. 개인적 의견이지만 실질적으로 가방 자체의 무게가 상당하며 가방 안에 교과서, 물통 등등 필요 물품들을 수납하여 일일단위로 들고 다녀야 해 무게에 따른 부담은 클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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