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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12. 2023

일본의 유치원 운동회

아름다운 아날로그의 세계에서

 외국에서 지내며 늘 현지 생활에 깊숙이 들어가 보고 싶은 바람이 있다. 흥미로운 이국의 문화를 현지인처럼 생생하게 겪고 싶지만, 현지에 연고지가 없다면 가능한 경험에는 한계가 있다. 적극성이 떨어지는 성격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감사하게도 아이를 통해 때때로 일본생활 깊숙이 들어가 볼 기회가 주어진다. 덕분에 나는 부족한 적극성으로는 엄두 낼 수 없는 일본 현지 문화 속으로 초대받고 있다.


 토요일, 아이의 유치원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초등학교 진학 전 마지막 행사이니 만큼, 아이 연령대 반 아이들이 행사의 많은 부분을 담당했다.    

시작에 앞서, 오픈 세리머니의 형식으로 일본 전통악기 '타이코(たいこ, 太鼓, 북)' 연주가 있었다. 유치원에서는 세심하게도 연주하는 학생들의 유인물을 각 가정에 미리 개별적으로 전달해 두는데, 유인물에는 해당 가정 아이의 위치와 그에 따른 보호자의 관람 위치까지 지정되어 있었다. 아이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도록 사전에 미리 배려한 그 꼼꼼함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실제 행사 참석을 해보니 현장 상황은 조금 달랐다. 자율적 준수에 의존되는 보호자의 위치는 지정된 위치가 유지되기 어려웠다. 예의나 상식의 문제라기보다는 행사 특성상 흥겨운 자리이다 보니 자유롭게 이동하며 행사를 즐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심리였기 때문이리라. 

(좌)(가운데) 운동회 순서지 및 배치도. (우) 타이코(たいこ, 太鼓, 북) 공연시 아이 위치와, 해당 보호자의 위치를 개별 표시해서 나눠준다.

 공연 복장을 갖춘 아이들이 미리 준비해 둔 '타이코(たいこ, 太鼓, 북)' 앞에 위치하면 공연의 막이 오른다. 흥겨운 북소리가 이내 운동장을 가득 채우며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북소리에 담긴 흥과 마음을 건드리는 선율로 인함이었을까, 그간 열심히 연습해 공연을 펼치는 아이의 대견함으로 인함이었을까. 타이코 연주를 듣다 어느 순간 울컥하는 감정이 차올랐다. 열심히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공연에 임하던 아이의 열정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다. 

일본북인 '타이코(たいこ, 太鼓)'가 준비되어 있고, 연주 복장을 갖춘 아이들이 입장하며 공연은 시작된다.

 아날로그 문화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일본의 모습은 행사를 통해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직접 만든 장신구와 장비를 보며 기시감과 정겨움을 느꼈다. 

행사 소품들은 대부분 직접 만든 물건이었다. 
긴 시간을 들여 연습에 임했던 아이들
(좌)보호자 릴레이. (가운데)단체 릴레이(우)초등학교 진학 준비 퍼레이드

 두 시간가량 진행된 운동회는 매 순간이 흥미로웠다. 보호자 릴레이와 아이와 함께 댄스를 추는 시간 등 보호자의 참여도 계획되어 있었고,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진학할 예정인 학교별로 퍼레이드도 진행되었다. 오래전부터 준비했을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노고를 기억하며 최대한 즐겁게 행사에 참여하며, 순간순간을 즐겼다. 내게도 감사한 시간이었다. 

 또한, 아이가 단체 속에 머물며 그곳에서 얻어지는 배움을 흡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소수 인원이 모였을 때의 장점이 있지만, 대규모 인원이 모였을 때 비로소 누릴 수 있는 장점도 있으니 아이가 그것을 흡수하기를 바랐다. 아이의 세계가 넓어지고 풍요로워져 내가 채워줄 수 없는 배움과 에너지를 그 시간을 통해 흡수하고 성장하기를 바랐다. 

 시상식과 기념품 수여를 끝으로 행사를 마쳤다. 이어서 공휴일인 월요일과 운동회 대체 휴무까지 3일의 연휴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하신 선생님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아이와의 (긴ㅋ) 연휴를 즐겁게 보내고자 마음먹으며, 우리는 사이좋게 인도커리를 먹으러 갔다. 바람도 적당히 선선했던 10월의 아름다운 가을날이었다. 

(좌)운동회 기념품들. 메달도 수여받는다.(우)아이가 타이코를 좋아해 남편은 닌텐도용 북을 주문했다. '태고의 달인'의 태고가 타이코였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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