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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an 16. 2024

알리고 싶지 않은 편지들, 그럼에도

욕망이 향하는 곳

 학창 시절,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 그 편지들을 모아두었다. 양이 너무 많아 다시 꺼내보지 않는 편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떤 편지들은 종종 꺼내서 읽었다. 읽으면 여지없이 내가 충전되는 편지들, 마음에 온기를 주는 편지들, 마음속에 깊은 의미를 남기는 편지들, 기분이 좋아지는 편지들, 내가 스스로가 생각하는 나보다 더 근사한 사람으로 표현되는 편지들, 나에 관한 칭찬이 담긴 편지들.. 그 편지들을 종종 읽으며, 나중에는 찾기 쉽도록 수많은 편지를 모은 상자 제일 위쪽에 모아두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대목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읽었던 그 편지들을 떠올리며 사실은 나는 그 편지에 담긴 '내 모습'을 사랑했음을 글을 쓰며 깨달았다. 

 편지를 써준 이에게는 내가 수없이 너의 편지를 읽으며 어떤 대목에서 힘을 얻었다고 구체적인 내용까지 밝힐 수 없었다.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그것은 나의 꾸미지 않은 욕망의 본질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리라. 내가 되고 싶은 나, 보여지고 싶은 모습의 나, 내가 마음속으로 추구했던 나의 모습과 맞닿았던 그 편지의 어떤 부분의 구체성을 알림으로 나의 욕망을 내보이는 일이 될 것 같아 말하지 못했는지 모른다. 그 당시 나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무의식 중에도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오래전의 일을 마음에서 끄집어내는 이유는 책을 읽고 어떠한 구절을 의미 깊게 새기고 기억하는 것의 본질은 특정 편지를 반복해서 읽던일과 꽤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의 욕망이 향하는 곳에 있는 글이 내 마음을 찌른다. 마음에 남는 구절들을 모아 보면 알 수 있다.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무엇을 보고 있는지. 그래서 나는 책을 읽다 마음에 남는 어떤 대목에 관하여는 그것이 나누기 쉽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일 때는 그것에 관해 쓰고 그것에 관해 말하지만, 어떤 부분은 혼자 간직하고 있다. 나의 욕망이 향하는 곳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누군가가 써준 편지처럼. 가끔은 나 역시 그것에 공감한다는 것을 숨기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글을 쓰는 일의 딜레마(dilemma, 선택해야 할 길은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는 그곳에 있다. 

 쓰는 마음에 관하여 생각해 본다. 과연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아무 답장도 받지 못한 편지를 끝까지 지치지 않고 쓰는 행위를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온 마음을 쏟아 수없이 자신의 글을 매만져본 사람은 안다. 누군가에게는 글씨에 지나지 않을 그것이 자신에게는 너무 귀하다는 것을. 글을 썼다고 만족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그 글로 맺어진 열매를 보고 싶다는 것을. 

 읽는 마음에 관하여 생각해 본다. 읽는 마음은 알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욕망이 드러날까 봐, 혹은 귀찮아서, 반드시 읽은 마음을 표해야 하는 것이 아니니깐. 혹은 글을 쓴 이에게는 슬픈 일이지만 그 글이 딱히 감흥을 주지 못해서. 딱히 마음을 건드리지 않아서 어떠한 표현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은 그런 경우가 훨씬 많다. 나 역시 자주 그랬으니깐.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의 글이 맺은 열매를 결국은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쓰는 사람은 여러 번 실망해도 글을 쓴다. 결국에는 쓰는 일을 멈출 수 없어서, 쓸 수밖에 없어서 슬프지만 행복해서 그래서 쓴다.  


 '소설가가 된 이후, 이따금씩 친구의 그 말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에겐 찻집도 없고, 편지를 보내오는 사람도 없지만, 나는 어쩌면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해 계속 답장을 써 보내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백수린, 다정한 매일매일


 어쩔 수 없다. 나의 글이 내가 원하는 곳에 닿았는지, 내가 원했던 글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는지,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았는지 어쩌면 결국에는 영영 알 수 없을 것을, 어쩌면 영원한 짝사랑이 될 것 같은 그 일을 사랑해 버려 지금도 이렇게 쓰고 있다. 

덧. 지금도 내게는 학창 시절의 편지와 같은 것이 있다. 어떤 댓글들은 내게 너무너무 힘이 되어 나는 그것을 핸드폰에 저장해 두고 가끔 열어본다. 여지없이 내 마음을 뜨겁게 하는 그것을, 나는 써 준 이에게 아직도 말하지 못하고 어쩌면 말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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