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편애(偏愛, 어느 한 사람이나 한쪽만을 치우치게 사랑하다)하는
찰나의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때가 있다.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 일수도 있지만, 긍정적 이유에서 기인했다면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이나 상황을 만났을 때, 좋아하는 류의 대화가 오갔을때 등의 이유로 그 순간을 기억하며 한동안 머릿속으로 복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책의 어느 구절에 나오는) 문장 또한 그러하다. 찰나의 순간 만난 문장임에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그 문장은 존재함을 잊을 정도로 고요히 마음에 있다가, 어떤 순간에 모습을 드러내 '나의 편애하는'에 관해 알려준다.
가만히 내버려 둔다. 하지만 항상 마음을 쓰고 있다.
에세이스트 '사카이 준코'의 책에 등장한 이 문장을 가끔 떠올린다. 이 문장은 내가 퍽 편애하는 부류의 어떤 행동들을 문자화해서 알려주었다.
이 문장을 발견한 것은 임경선 작가님의 칼럼 속이었다. 그가 채널예스에 기고한 '글이 잘 써지는 호텔'에 관한 칼럼을 읽다가 나는 다음의 구절을 발견한 뒤 기억하게 되었다. 그 일부를 옮겨본다.
야마노우에 호텔에 숙박해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차를 마시거나 식사하려고 잠깐 들를 때마다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손님을 안심시키는 서비스를 느낀다. 이 소박한 호텔이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는 카리스마적인 매력을 지녔던 고 요시다 도시오 사장 덕분이다. '가만히 내버려 둔다. 하지만 항상 마음을 쓰고 있다'는 공기가 감도는 것은 '호텔과 료칸의 장점을 두루 갖춘 숙소'라는 것이 그의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책이 너무 많아, 사카이 준코
이 문장은 내게 고요하지만 강렬했다. 신경 쓰지 않는 듯 신경을 쓰며 좋아하는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좋아한다. 누군가 내게 하는 그런 류의 배려를 사랑해서 오래도록 기억한다. 일본에서 그 문장을 가끔 떠올린 것은 일상에서 종종 그런 류의 배려를 마주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지내며 가끔 받는 느낌은 누군가의 필요를 알아채거나 분위기, 상황 등을 읽는데 유달리 촉이 예민한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부산스럽거나 유난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은 어느새 자신이 나서주면 좋을 '틈'을 읽고 있다. (이것은 '눈치' 와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 여기는데, '눈치'는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으로 미루어 알아내는 것'이라 하니 뜻은 비슷할 수 있지만, 단어 자체를 떠올려 봤을 때 감정적 영역이 끼어들 여지가 적은 '눈치'라는 현실적 표현은 쓰지 않겠다.)
글을 쓰러 가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 그곳에는 여러 명이 이용할 수 있는 커다란 테이블과 몇몇 좌석에만 방석이 비치된 의자가 있다. 방석을 이용하거나 이용하지 않거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크게 의식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방석이 없음이 유난히 불편한 날이 있었다. 귀찮아서 그냥 있으려 했지만, 귀찮음 보다는 불편함이 커 주변의 빈 의자들을 살피며 내심 방석을 찾고 있었다. 그때 뒷자리에 계신 남자분이 일행분이랑 대화하며, 무심한 듯 내게 본인 옆자리에 있던 방석을 내게 내미셨다. 행동을 읽히고 싶지 않았던 나는 민망함에 태연한 척 거절할까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분의 행동이 너무 무심해서 가볍게 인사하고 방석을 받아왔다. 개인의 편견이 드러나는 부분지만, 그분은 내가 '예리함 혹은 사려 깊음'을 연상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외적인 모습이 아닌 수더분한 모습의 70대 전후의 남자분이셔서 (내 기준) 의외성에 더욱 기억에 남았다. 그분이 비슷한 연령으로 보이는 일행과 함께 계셔 시끄러울 것을 우려해, 내심 그분들을 피해 먼 곳에 앉아왔던 내 모습에 대한 민망함은 덤으로 따라왔다. 그 모습 또한 읽혔을 것 같아서.
그렇게 생각하면 나에게 '가만히 내버려 둔다. 하지만 (항상) 마음을 쓰고 있다'가 깊은 여운을 남기려면, 그렇지 않을 것 같은 모습의 사람이 그러한 모습을 연출할 때 유난히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 같다.
어느 비 오는 날의 기억도 있다. 비가 오는 오후 아이와 함께 도로에 인접한 길을 우산을 쓰고 걷고 있었다. 길의 폭은 넓지 않아 아이와 둘이 걷기에 적당했다. 걷다 보니 멀리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 둘이 우리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음장면을 상상하니 좁은 길에서 서로 부딪치지 않으려고 몸을 틀고, 우산끼리 부딪치며 빗물이 튀는 장면이 그려졌다. 사전 방어를 위해 우산을 높이 들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가다 보니 그들은 오지 않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나 싶었는데, 그렇게 여기기에는 너무 무심하게 멈춰 서서 마주 보며 대화를 하고 있어 딱히 그래 보이지 않았다. 또한 어려 보이는 아이 둘이 그 정도의 배려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개인의 편견으로 그들을 지나쳐 가던 길을 가며, 호기심에 다시 뒤를 보는 순간 분명히 보았다. 그들이 무심한 듯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계속하며 우리가 지나고 난 직후의 그 좁은 길을 가고 있는 모습을. 나의 그맘때를 떠올려보자 알지 못했을 배려라는 생각이 들어 그날의 장면은 한동안 기억에 남았다.
가만히 내버려 두지만 마음을 쓰는 류의 배려를 종종 만난다. 작고 사소하지만 선물 같은 순간들이 가끔 일상 속에 나타난다. 때로는 아침 달리기 길에서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며 진작에 멈춰있을 차들을 통해, 마트에서 서로의 카트가 가까워지기 전에 이미 길을 내주고 있는 상대의 움직임을 통해, 좋아하는 것에 관해 스치듯 말한 것을 기억하고 내미는 친구를 통해 일상의 선물 같은 순간들을 마주한다.
가만히 내버려 두지만 마음을 쓰는 일의 '균형'에 관해 생각해 본다. 상대가 부담 갖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무심함, 무심해서 상대가 간신히 알아차리거나 혹은 잘 모를 만큼의 미세한 그 경계선상의 배려. 과함으로 인한 불편이나, 부족함으로 인한 냉정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알맞은 거리. 생각해 보니 그것은 과히 고수의 영역이었다.
가만히 내버려 둔다. 하지만 항상 마음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한동안 위 문장을 생각하며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글을 쓰는 마음도 위의 문장과 다르지 않겠다는 것을. 나는 그것을 (많이) 원한다는 것을. 읽는 분을 염두에 둔 글을 쓰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읽는 분을 염두에 둔 글을 쓸 때 나의 마음은 (읽는 분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만 항. 상. 마음을 쓰고 있는 느낌이 전해지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을.
성격상 나의 글로 적극 유인하지 못한다. 그 방법도 모른다. 앞으로도 그러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읽으면 나만의 향기가 나는 글, 고유한 향기와 온기를 느낄 수 있는 글. 글을 읽는 사람을 향해 넌지시 마음을 쓰고 있음이 느껴지는 글.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그런 글을 쓰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 바람을 담아 오늘의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