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았더라면, 듣지 못했을 이야기.
자발적으로 글을 쓰고자 했을 때, 아마 나는 '군대 이야기'를 쓰리라 생각했다. '추측' 보다는 '의지' 혹은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좋든 싫든 내게는 강력했던 군대에서의 시간이 나를 쓰고 싶게 만들었을 것이고, 그것의 나의 할 말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군대에 관한 이야기를 (일부) 썼다. 그 이야기는 '여군 소대장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작품으로 묶이기도 했고, 이제도 가끔 나의 글의 주연이나 조연으로 등장하고 있다.
쓰면서 깨달았다. 군대이야기는 나의 글의 종착점이나 전부가 아닌, 끝없을 글쓰기 여정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래서 기뻤다. 나의 이야기는 미지의 영역에 넘치도록 있었고, 군대 이야기는 그 세계의 극히 일부였을 뿐이었다. 왠지 조금 많이 기뻤다. 시작된 글은 군대 이야기에서 내 안의 다른 세계들로 영역을 넓혀갔다. 어떠한 나의 의도나 계획이 있었거나, 의지는 아니었다. 가장 강력했던 이유는 나의 손과 마음을 다른 이야기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삶에 찾아오는 이야기들이 나를 뜨겁게 사로잡아 시간에도, 체력에도, 능력에도 한계가 있는 나는 마음이 더 많이 기우는 곳으로 글의 방향을 틀었다. 자주 그렇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일상 속 요리에 담긴 말들에 관해 썼고, 사랑하는 '글쓰기'에 관해 썼고, 평범하지만 특별한 '나의 후쿠오카 이야기'에 관해 쓰며 삶이 내게 때로는 속삭이고 때로는 외치는 이야기에 손과 마음을 내주었다.
이야기가 나를 선택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마음에 찾아오는 이야기들을 설명할 수가 없다. 모르는 사이에 마음에 찾아와, 자리 잡고, 자라고 있던 이야기들. 내게 쌓여 있던 이야기들. 쓰이고 싶다고 말하는 이야기들. '글'을 입기를 원하는 이야기들. 나는 그것을 썼다. 완벽한 형태는 아니지만, 이야기들은 조금씩 글의 형태를 입고 나를 뚫고 나왔다.
나는 그렇게 나의 이야기를 꺼냈고, 나는 그렇게 세상에 나왔을 다른 이야기들을 만났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뜨거웠다. 어떠한 이야기의 뜨거움에 사로잡혔고, 어떠한 이야기의 아름다움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고, 어떤 이야기에 마음에 희망을 심었다.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뜨겁게 만든 것은, 그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는 일이었다. 그 이야기가 글의 옷을 입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하면 종종 마음에 파도가 휘몰아쳐, 그것에 기꺼이 휩쓸려 나의 마음과 감정을 내어주고 싶어졌다.
박완서 작가는 마흔에 등단했다. (중략) 오랫동안 아주 오랫동안 박완서 작가는 그 이야기를 쓰고 싶었을 것이다. 밥을 하다, 아이의 머리를 땋아주다, 장을 보다, 문득문득 문장이 떠올랐을 것이다. 손으로는 국을 끓이고 빨래를 하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고 바느질을 하지만 마음속에는 이야기가 소용돌이쳤을 것이다. 헛구역질처럼 문장이 쏟아져 나와 참을 수 없을 때 마침내 펜을 들어 액체 상태의 이야기를 어떤 '형태'로 만들었을 것이다.
오정희 작가도 그랬다. (중략) 배수아 작가도 그랬다.(중략) 카프카도 그랬고 위화도 그랬다. (중략) 내가 쓰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글이란 이야기가 나를 이용해 생을 획득하고 이어가고 확장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중략) 아직 세상에 없는 이야기가 눈을 빛내며 기지개를 켠다. -어딘, 활활 발발
나는 다시 마음이 뜨거워진다. 글의 보이지 않는 이면(裏面)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가 글을 입고 힘겹게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생각하면 그 고단한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울컥할 때가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며,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삶의 소중한 시간을 쏟아부으며 기어이 써낸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면 그 글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야기가 나를 선택한다.
모든 일의 시작은 쓰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쓰지 않았더라면, 써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찾아오는 이야기들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박완서작가를, 오정희 작가를, 배수아 작가를, 카프카를, 위화를, 그리고 김현아(어딘) 작가를 찾아왔을 아름다움에 전율을 일으킬만한 이야기의 소리를 듣고 써낼 수 없을지라도, 감사하게도 나는 삶이 나에게 속삭이는 이야기들은 써낼 수 있다.
쓸수록 알아지는 것은 내 안의 광활한 우주의 소리를 어쩌면 나는 모두 담아낼 수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라는것. 그럼에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오늘의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고 그 이야기에 글을 입히는 것. 그것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