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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웠던 기타큐슈(北九州)의 '모지코우(門司港)'

가까운 곳에 담겨있던 아름다움

by 수진

오래전 (혼자) 일본 곳곳을 여행하리라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다. 이도시 저도시를 다니며 다양한 일본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 후 한참의 시간이 지나 계획에 없이 일본에 와서 살게 되었으나, 막상 이곳에 온 후에는 그 생각을 잊고 지냈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일본의 생활이 일상이 되며 눈이 '일본스러움'에 익숙해져 일본 어느 지역에 가도 익숙해진 일본의 정취를 알아차리며 획기적인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다. 또, 긴 여유 시간을 낼 수 있을 때는 한국행을 택하다 보니 일본 생활 간에는 집 주변의 생활권과 아지트, 자주 방문하는 곳들만 오가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집에서 멀지 않은 '모지코우(門司港)'라 불리는 아름다운 항구에 뜻밖에 가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남편은 대체로 집에 있는 것을 사랑하지만, 가끔씩 어디론가 바람을 쐬러 가는 것을 선호하는 덕분에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모지코우(門司港)'라는 항구가 있다는 것을 찾아냈고, 적극적으로 추진한 덕분에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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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인 정취가 흘러 넘쳤던 '모지코우(門司港)'

'모지코우(門司港)'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일본 곳곳의 분위기를 이미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오산이었다. 모지코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예측했던 일본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항구 도시에서 기인했을 이국적 정취와 그날의 날씨(해 질 녘+비)가 어우러져 낯선 곳으로 여행을 온 기분이었고, 그 풍경 속을 거니는 시간마다 기분이 좋았다. 우리에게 이제 발견되었을 뿐, 이미 잘 알려진 그곳에는 관광객도 많았지만 다행히 관광지 특유의 (상업적) 느낌보다는 도시가 지닌 아름다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모지코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인 '야끼카레(焼き カレー)'를 먹고 해변가를 산책하고 돌아오는 길 온천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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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코의 명물 야끼카레(焼きカレー), 맛있을 수 밖에 없는 조합

초여름이었지만 비가 흩날리는 해 질 녘의 바닷바람은 온천과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조합이었고, 평화로웠다. 그 평화로움은 평화롭다는 생각보다 앞서 몸이 이미 감각하는 그런 평화로움이었다.

겪어보지 않고 지레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 예상이 옳을 때도 있지만, 어떤 것은 겪어보기 전에는 결코 모를 수 있다. 후쿠오카의 삶은 후자였다. 겪기 전에는 몰랐다. 조용하고 잔잔한 이곳의 삶이, 일회성이 아닌 지속되는 그 일상이 생각보다 나와 잘 맞는다는 것을. 이 시간이 별로 답답하지 않다는 것을. 사실 나는 이 삶을 꽤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이 일상에서 나를 지탱하는 힘이 나오며, 나를 나로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을. 모든 것을 겪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다.

여러 상황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드러나는 자아(自我)가 있겠지만, 나는 지금의 이 삶 속에서 제법 나 다운 자아를 끌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때 드러난 자아의 모습을 나는 꽤 좋아하고 있음이 느껴져 좋았다. 늘 동일한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아니니, 이때의 충만했던 감정도 금방 다른 감정으로 바뀌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한순간의 짧은 여행을 계기로 즐거웠던 기억을 쌓고, 더불어 나와 또 한 번 마주친 시간이 되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덧. 여행 가서 보이는 현지 특산품들은 큰 기대가 안되면서도 막상 안 사자니 아쉬워서 결국 한두 개는 사게 된다. 간혹 뜻밖에 맛있는 것도 있지만 대체로..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기대하게 되고, 결국에는 필요이상으로 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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