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감각(感覺)으로 기억된다. 여행지의 분위기와 불었던 바람의 질감, 먹었던 음식의 맛, 그날의 감정. 여행의 순간순간 세밀하게 스며들었던 구체적 감각은 여행의 매개체가 되어 예기치 않은 순간 다시 여행지로 데려간다. 그래서 한순간의 여행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일본에 온 뒤 여행은 이어졌다. 종종 일본의 곳곳을 다니며 새로움을 경험하고, 오래도록 꺼내볼 추억을 만들고, 반가운 만남을 안고 돌아왔다. 여행을 더욱 빛내준 것은 여행지의 맛(味) 이었다. 다채로운 여행지의 맛은 여행지에서 만난 자체로 이미 특별했고, 익숙한 요리나 처음 먹어보는 요리 모두 새로운 의미를 입고 다가왔다. ‘맛’은 어김없이 ‘몸’으로 기억되기에, 여행을 마치고 다시 그것을 맛볼 때면 여행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여행은 때로는 맛(味)으로 기억된다.
‘후쿠오카(福岡)’ 지역에서 가장 편애하는 여행지는 ‘벳부(別府)’이다. 후쿠오카 지역의 첫 여행지였던 벳부에서 좋은 사람들과 매 순간 만족스러웠던 여행을 했던 이유도 있지만, 더 본질적인 이유는 ‘벳부(別府)’는 선호하는 모든 것을 품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가보기 전에는 몰랐다. 그토록 아름다운 온천도시가 존재한다는 것을. 도시 자체가 지닌 고유한 매력과 개인적 선호까지 더해진 ‘벳부’에서 예감했다. 오래도록 벳부 여행을 기억하며, 벳부와의 인연을 앞으로도 이어가리라는 것을. 예감대로 벳부는 후쿠오카 지역에서 가장 편애하며 종종 찾는 여행지가 되었고, 존재 자체로 마음에 온기를 주는 지역이 되었다.
아름답고 고요했던 벳부의 시간을 떠올려 본다. 고즈넉하고 평온했던 벳부가 내어준 시간을. 맑은 온천에 아침저녁 몸을 담그고, 온천수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던 시간을. 명소인 ‘지옥(地獄, 사람이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온도가 높은 온천을 지옥이라 부른 것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을 둘러보며 온천의 신세계를 경험하던 시간을. 이국의 정취가 담긴 ‘유카타(ゆかた, 기모노의 일종)’를 입고 온천을 오가며 요리를 먹던 시간을. ‘다다미(たたみ)’ 특유의 향이 감돌던 청결한 이부자리의 분위기를. 그 시간들과 매끄럽게 어우러졌던 벳부의 다양한 하늘빛과 자연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거의 모든 것이 담겼던 벳부 여행의 별미(別味) 중 하나는 ‘온천 찜’ 이었다. 현지에서는 ‘지옥 찜(地獄蒸し, 지고크무시)’이라 불리는 ‘온천 찜’은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부터 이어져온 요리로, 조리법 자체는 간단했다. 먹고 싶은 식재료(채소, 버섯, 옥수수, 고기, 해물 등)를 커다란 찜기에 층층이 담은 뒤, 온천 증기로 끓고 있는 아궁이에 냄비째 넣는다. 타이머(15분-20분 정도 소요된다.)를 확인하며 재료들이 익기를 기다린다. 시간이 완료되면 찜기에서 냄비째 꺼낸다. 요리의 모든 과정은 셀프(self)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온천 찜‘을 소스(유자 간장)에 찍어 먹었다. 재료를 온천수에 쪄낸 외양만 보고, 단순하리라 여겼던 ’온천 찜‘의 맛은 단순하지 않았다. 지방을 비롯한 불필요한 물질들이 제거되고, 소금기가 함유된 온천 증기가 순식간에 쪄낸 온천 찜에는 식재료 본연의 맛이 담겨 있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지켜줄 것 같은 건강함의 ’정수(精髓)‘가 담긴 깊고 담백한 그 맛은 기분 좋은 포만감을 주었다. (어쩌면 그것이 온천수 기운에 힘입은 기분에 의해 빚어진 맛이라 할지라도.) ’온천 찜‘을 먹으며 생각했다. 벳부의 저력은 ’넉넉함‘에서 비롯된 것이리라고. 벳부의 곳곳을 뚫고 나오는 온천의 넉넉함. 온천을 품은 다채로운 풍경의 넉넉함. 자연이 지닌 아름다움의 넉넉함. 벳부 역(駅) 앞을 지나는 이에게조차 손을 담그는 온천수를 제공하는 넉넉함. ’온천 찜‘에는 벳부의 넉넉한 기운으로 빚어진 생기가 담겨 있었다.
마음이 맞는 일행들과 느긋하게 ’온천 찜‘을 먹으며 건강한 기운으로 몸을 채우고 족욕 물에 발을 담갔다. 쉼 없이 족욕 공간을 흐르던 온천수에는 온기가 가득했고, 발만 담갔을 뿐임에도 온천수가 내어주는 따뜻하고 나른한 기운이 온몸으로 번졌다. ’족욕‘은 ’온천 찜‘에 가장 어울리는 후식이었다.
매 순간 여러 겹의 행복으로 채워졌던 벳부의 시간을 잊을 수 없다. 추억은 몸 곳곳에 착실히 저장되었고, 일부는 맛(味)에 저장되었다. 그 후 종종 벳부를 찾아 새로운 추억들을 더해갔고, 가끔은 벳부가 담긴 ’온천 찜‘을 만들어 먹었다. 찜기에 식재료(시금치, 배추, 버섯, 상추, 숙주 등)를 층층이 쌓고, 가장 위에는 대패 삼겹이나 샤부샤부용의 얇은 고기를 쌓아 채소를 덮는다. 찜기에 물을 넉넉히 넣고, 소금도 조금 넣어준 뒤 불을 올리고, 재료가 익는 상황을 확인하며 중불에 20분 전후로 쪄낸다. 완성된 요리를 소스(유자 간장)에 찍어 먹는다. 고난이도라 여겼던 ’온천 찜‘은 생각보다 집에서 만들기 쉬운 요리였다. 엄밀히 따지면 온천(溫泉)과 관계없이 모티브만 따와서 만든 셀프 온천 찜이지만 신기하게도 추억의 도움으로 셀프 온천 찜에도 ’벳부(別府)‘가 담겨 있었다. 덕분에 온천 찜과 함께 다시 벳부로 돌아갔다. 몸을 채워주는 건강한 감각은 덤이었다.
여행은 그렇게 감각(感覺)으로 기억되고, 맛으로 기억된다. 넉넉한 도시 벳부의 요리 ’온천 찜‘을 먹으며, 다시 그 넉넉함을 감각한다. 온천 찜을 먹는 마음에도 넉넉함이 넉넉히 깃들기를 바라며.
안녕하세요^^오늘도 이곳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요리의 말들' 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376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곧 장마가 시작될 것 같아요. 빗길 조심하시고,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