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韓食)’을 특별히 선호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일상에 밀착되어 있던 그것(한식)은 선호를 고려할 대상이 아니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일상의 매 순간을 의식하지 않듯, ‘밥’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일상 속 ‘한식’ 또한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다. ‘한식(또는 밥)’의 존재감은 사는 곳을 옮겨 그것과 물리적으로 멀어진 후 드러났다. 당연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당연하지 않게 된 후 존재감이 드러나는 것이었다. 일상이었던 한국 음식과 멀어지자, 비로소 그것의 부재를 의식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찾고 만드는, ‘밥’을 의식하는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조력자(助力者)는 근거리에 있었다. 우선, 식재료의 도움이 있었다.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일본은 섬나라이기에 한국과 기후는 다르지만, 비슷한 위도(緯度)에 있어 식재료는 많은 부분 유사성을 띠었다. 구하기 어려운 특정 식재료(고춧가루, 청양고추 등)나 양념(고추장, 된장, 조미료 등)을 제외하고 현지 식재료를 활용하면 한국 요리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었다. 굳이 현란할 필요는 없었다. 두부, 어묵, 달걀, 버섯, 채소, 생선, 고기 등의 식재료에 소금을 뿌려 굽거나 간장, 설탕, 참기름, 고춧가루 등으로 양념해 볶거나 익히는 등 간단한 조리로도 그럭저럭 한국 음식이라 할만한 요리가 만들어졌고, 일본 또한 ‘쌀(rice)’이 주식이었기에 만들어진 요리를 밥에 곁들일 수 있었다. 주변에 한국 식당이나 배달음식, 식품 가게 등의 혜택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 밥을 먹으려면 부지런해야 했지만, 덕분에 ‘일상 요리’ 한식의 공백은 적었다.
다음으로는, ‘한류(韓流,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포함한 한국과 관련된 것들이 대한민국 이외의 나라에서 인기를 얻는 현상.-출처:위키백과)’의 혜택이 있었다.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 거주하는 지역은 ‘한류‘의 영향권 내(內) 있었고, 그 영향력은 확대되고 있다. 그 움직임이 두드러졌던 어느 날, 종종 방문하던 마트 한쪽에 ‘ソウル市場(서울시장)’이라는 제법 큰 규모의 ‘한국’ 전문 코너가 생겼다. 한국 라면, 김치, 국, 과자, 김, 당면, 각종 장류(된장, 고추장) 및 만두, 양념치킨 등의 냉동식품과 커피믹스, 차(茶) 류 및 음료수, 화장품까지 판매하는 ‘서울시장’의 등장은 개인적으로 일상 속 ‘한국 음식’의 질이 격상됨을 의미했다. 남편과의 실력을 합쳐도 평소 누리던 한국 요리는 계란말이, 두부조림, 생선구이, 된장국, 닭곰탕 등 ‘일상 가정식’ 급이었다면, ‘서울시장’의 등장으로 (매일은 아니지만) 육개장, 떡만둣국, 삼계죽, 잡채, 순두부찌개, 호떡, 떡볶이 등으로 집에서 누릴 수 있는 한국 요리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또한, 편의점에서 한국 간편식품을 만나는 날도 있었다. 일본 일부 편의점은 한시적 이벤트로 1~2주간 지역별 특산 요리를 판매하곤 하는데, 어느 순간 한국 간편식(장조림 삼각김밥, 김치 삼겹살 덮밥, 삼계죽, 호떡 등)을 판매하는 이벤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한국’이라 이름 붙어 한시적으로 판매되는 편의점 간편식은 익히 알던 한국 요리와 차이는 있었지만, 현재 거주하는 지역의 현황을 감안하면(지난 2년간 근처에서 우연히 한국인을 마주친 것은 단 한 번이었다.), ‘한류’ 자체의 영향력을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마지막으로 선물 같은 조력자로 한국인 지인(知人)이 있었다. 타지 생활에 따른 공감대를 갖고 있는 우리는, ‘한식(韓食)’에 관한 서로의 필요와 바람도 잘 알기에 종종 ‘한국’에 관한 것을 품앗이하곤 했다. 한국에서 온 밑반찬이나 조미김 등을 나누거나, 특정 한국 식품을 판매하는 곳의 정보를 나누는 등 소소한 교류였지만 같은 것을 공감하고 이해받을 수 있어 그들은 존재 자체로 든든했다. 그렇게 다양한 경로의 조력자에 힘입어,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한국 요리의 흐름을 끊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한국 요리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아니게 된 후로도, 그것과 계속 이어지는 마음을 생각해 보았다. ‘한국 요리’가 의미하는 바에 관해. 지속적으로 의지를 들여 그 끈을 잡고 있는 마음에 관하여.
‘그리움’. 그 마음은 그리움이 아닐까. ‘밥’으로 형상화된 ‘그리움’. 개인적이고 보편적인 그리움. 그래서 그것과 멀어진 이제도 의지로 그것을 곁에 두고자 하는 건 아닐까. 그 그리움의 흔적을 따라서.
그 그리움은 많은 것을 품고 있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관한 그리움, 먹고 자란 음식에 관한 그리움, 음식에 깃든 추억에 관한 그리움, 만들어준 손길에 관한 그리움, 엄마를 향한 그리움. 그리고 가끔은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모르면서 느꼈던 그리움 자체를 향한 ‘그리움’. 기억에 새겨진 그 그리움의 흔적을 따라 의식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한국 요리를 곁에 두는 건 아닐까.
그 그리움의 근원은 ‘처음’에서 비롯된 마음이었으리라. 태어나서 ‘처음’ 만났던 요리였을 밥, 그 후로 가장 오랜 시간 접했던 밥, ‘엄마가 만들어준 엄마의 밥’을 몸으로 기억하며 그것의 흔적을 따라 요리를 하는지 모른다. ‘엄마의 밥’ 안에 담겼던 애정과 사랑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이에게 좋은 것을 주려는 애정,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애정, 삶에서 자주 길을 잃고 자주 차가워지던 마음을 녹여주고 방패가 되어주던 애정, 오랜 시간의 고민 들을 작게 만들어 주던 조언과 애정.
자신의 소중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 애정을 형상화했던 엄마의 요리를 감각으로 기억하고, 그 마음이 그리워 요리를 하는지 모른다. 그것을 증명하듯 힘들거나 우울하고 기분이 가라앉거나 아픈 날이면 본능적으로 엄마가 떠오르고, 그와 더불어 평소보다 한식 생각이 간절해진다. 뜨거운 국물이, 갓 지은 밥이, 오랜 시간 끓인 미역국이. 오랜 시간 엄마가 마음을 쏟아 만들어 왔던 요리들이 생각난다. 음식은 결국엔 그것을 만드는 이를 닮아있기에.
매 순간 요리하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때로는 그 마음을 기억하며 밥을 짓는다. 가까운 곳에서 보고, 받고, 경험하고, 배웠던 애정과 사랑이 나의 요리에 조금이나마 스미기를 바라며. 그것이 나에게, 주변에게 흐르길 바라며.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곳에 방문해 주셔서 반갑습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요리의 말들' 칼럼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7294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날이 조금씩 더워지고 있네요. 건강한 여름 보내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