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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Nov 11. 2024

'시모노세키'와 '모지코'를 감싼 아름다움 속에서

시모노세키(下関)와 모지코(門司港)를 감싼 아름다움 속에서

 가을의 절정을 지나던 날 시모노세키(下関)로 향했다. ‘시모노세키 조약(청·일전쟁의 전후 처리를 위해 1895년 4월 17일 청국과 일본이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체결한 강화조약-출처:두산백과)’으로 지명이 익숙한 그곳이 지금 사는 곳에서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역사적 의미를 되짚어 보기 위함은 아니고, 시모노세키의 가을 바다가 보고 싶었다. 반나절이면 오갈 수 있어 특별한 준비 없이 바로 출발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달리자 어느덧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시모노세키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아름답다. 맑은 날이 도시의 매력을 극대화했을 수도 있지만, 사실 바다가 모든 서사에 당위성을 부여했을 것이다. 바다로 둘러쌓인 곳이 안 아름답기는 불가능하니깐. 

 시모노세키를 감싼 가을 바다의 아름다움을 한동안 보다가, 유명한 카라토(唐戸)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다양한 스시와 해산물이 있고, 이곳의 특산품인 ‘복어(ふぐ)’가 있는 곳으로.

 관광객들로 붐벼야 하는 시장이 휴일임에도 한산했다. 마음이 앞서서 알아보지도 않고 시모노세키로 온 탓에, 폐장시간(15:00)을 앞두고 도착한 것이었다. 시장 구경은 접고, 관람차를 타고 마지막으로 시모노세키를 둘러본 뒤, 바다 건너편 ‘모지코(門司港)’ 행으로 일정을 바꿨다. 바다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자 금세 모지코에 도착했다. 다리 하나 건넜을 뿐인데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모지코(門司港)는 무역의 중계 기지의 역할을 하는 항만 도시로서 번창했고, 주변보다 우선적으로 개항한 도시답게 이국적 정취가 가득한 도시이다. 바다에서 먼 곳은 전형적인 일본 소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항구 주변은 일본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빛깔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지만 어딘가 존재하고 있을 이국의 아름다운 정취가 모지코 여행의 묘미였다. 

 이국을 떠올리는 외적 분위기와 달리 일본 특유의 정적(靜的)인 내적 분위기는 모지코에서도 느껴졌다. 관광지라 조금의 활기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흐르는 분위기는 쓸쓸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고요한 일본 특유의 결을 반영하고 있다. 시모노세키 수산시장 방문이 무산된 덕분에, 식사 메뉴는 모지코의 특산품인 야끼 카레(焼きカレー, 밥 위에 카레 소스와 치즈 등을 얹어 오븐에 구운 카레라이스)로 바꿨다. 

 특별할 것 없는 요리였지만, 모지코의 독특한 아름다움 덕분에 특별했다.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카레와 한끝이 달랐던 야끼 카레를 먹으며 요리는 지극히 보편적이지만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생각했다. 이 순간의 이 요리는, 이 요리를 함께 나눈 사람들만이 공유하고 기억할 수 있는 특별함이 담겼기에 의미가 깊었다.

 식사를 마친 뒤 바닷가로 갔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시간, 가을 바다는 산책하기에 완벽했다. 가끔 어둠이 내려앉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쓸쓸해지는데, 이곳에서는 그 마음을 피할 수는 없어도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을 스쳐가는 사람들도 다들 그렇다고. 누구나 쓸쓸한 한구석을 품고 산다고. 그럼에도 그 쓸쓸함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순간들도 있다고. 사실은 그 쓸쓸함이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만드는 거라고.

 마침내 바다를 둘러싼 거리는 완전히 어두워졌고, 산책을 마친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어두운 밤까지 아름다운 날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곳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149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한주 잘 보내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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