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스산한 날이었다. 후쿠오카(福岡)의 삶이 이어지니 감이 온다. 온천의 도시 벳부(別府)로 떠나기 완벽한 때라는 감이. 수건을 준비해, 커피를 마시며 바로 고속도로에 오른다. 편도 두 시간 남짓 달렸을까. 온천에서 비롯된 안개들이 자욱해지며 벳부에 근접했음을 알 수 있다.
넉넉한 온천을 품은 도시 벳부에 들어서자 대기부터 달라진다. 벳부 전체를 감싼 따뜻한 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벳부에 왔음을 실감한다.
온천의 도시에 왔으니 온천이 만든 요리를 맛본다. 온천의 증기로 쪄낸 달걀과 증기 속에서 만들어진 푸딩, 그리고 ‘온센 타마고’(温泉玉子, 온천의 물이나 증기를 이용해 삶거나 쪄낸 달걀, 노른자위는 반숙이고 흰자위는 반응고 상태인 달걀.) 요리들을.
온천이 만든 온천을 품은 요리들은 순하고 따뜻했다. 별다른 기교의 도움 없이도 완전한 요리를 맛본 뒤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벳부가 담겨있다. 오래된 온천마을에서 비롯되는 느긋한 여유. 주민들을 위해 만들어졌을 공원은 벳부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지만 그만큼 깊은 푸근함을 준다. 넓은 공원을 찬찬히 산책하며 잠시 벳부의 일상을 상상해 본다. 고요하고 잔잔할 이곳의 일상을. 그 때문일까. 공원에서는 유독 노인들이 많이 보인다. 번잡스럽지 않고 느긋하게 반려동물과 공원을 산책하는 그들의 모습에도 벳부가 담겨있다.
소박하지만 넓은 숲의 호사를 누리며 공원 산책을 마치고 마침내 이곳에 온 목적인 온천으로 향한다. 지속적으로 우리를 부르고 기다리던 온천으로.
역시. 벳부는 결코 이름뿐인 온천의 도시가 아니다. 지금까지 불현듯 벳부로 달려오고, 온천 요리를 먹고, 공원을 산책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이 온천을 만나기 위함이었음을 깨닫는다. 일부러 알아내려 하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는 감각. 벳부의 고유한 온기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몰랐을 뿐 사실 온천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받아주려고 안아주려고 품어주려고 언제나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덕분에 온천의 온기를 머금은 우리는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 온천의 배웅을 받으며 이제 벳부를 떠난다. 기약하지 않아도 다가올 다음 만남을 예감하며.
안녕하세요. 오늘도 이곳에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의 원문은 '소믈리에 타임즈' 칼럼 https://www.sommelier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221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칼럼에 등장하는 온천 주소도 함께 첨부합니다. 어느덧 11월 마지막 주에 접어들었습니다. 추워지고 있는데 건강 조심하시고, 한주 잘 보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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