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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01. 2022

보안감사를 준비하던 시간

그 하루를 위해 

 중요한 일들은 막상 당일보다는 기나긴 준비과정이 힘들듯 군대의 업무도 그러했다. 각종 점검, 검열을 앞두고 준비했던 시간들은 길고 힘들었고 지루했다. 긴 준비과정에 지쳐 차라리 당일을 기다리게 되었던 업무들이 있었다. 운영 장교 보직을 받은 뒤 얼마 되지 않아 맡은 중요 업무는 보안감사 수검이었다. 군대에서 보안사고는 가장 엄격히 다뤄지는 과실 중 하나였고, 보안 사고의 위험성과 중요성은 늘 강조되고 있었기에, 보안감사를 앞두고 부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운영과는 보안의 중추 부서였고, 그런 운영과의 운영 장교였던 나의 책임감과 부담감은 상당했다. 당시 근무하던 대대가 소속된 사단 차원에서 행해지는 수검이었음에도 부담감은 컸고, 전입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빠르게 업무 파악부터 해야 했다. 나는 탄약과 정비를 담당하는 병기병과 소속의 장교였고 해당 병과 교육만 받았음에도, 정비대대 '운영과'에 근무했기에 업무를 위해 정보 분야에 관한 공부를 해야 했다. 각 분야별로 준비해야 할 사항은 많았다.  

-비문관리

-시설 보안(군사 목적으로 사용하는 각종 시설에 대한 위해 및 탐지 행위로부터 군사 관련 시설을 보호하는 활동,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 참조):위병소 외부 출입인 명단 확인 및 부착된 패널 점검, 부대 울타리 이상 유무 점검 등의 업무 등. 

-인원보안(비밀을 취급하는 인원에 대한 통제 대책과 보호를 요하는 인원에 대한 안전 방책, 국방과학기술용어사전 참조) : 간부들 출입증 등록 및 휴대폰 보안 스티커 부착, 보안 앱 설치 여부 확인, 이용차량 블랙박스 등록 여부 확인 등 

- 정보보안(정보통신 수단에 의하여 처리, 저장, 소통되는 정보를 보호하거나 도청 및 해킹 등 외부 위협으로부터 취약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각종 수단과 방법, 병역 관련 용어해설 참조) : 부대 내 PC등록 여부 확인 및 이상 유무 확인, 배경화면 점검, 간부들 퇴근 시 일일 보안 결산 사항 지속 확인 등

-기타: 4개 중대와 3개 과(운영과 정비과 보안과) 사무실 및 행정반 순찰 및 준비실태 점검 등 

 보안 감사 시 점검관의 관점에서 집중적으로 확인할 것을 고려해서 많은 경우의 수를 헤아리며 준비해야 했고, 살피고 주의를 기울여도 어딘가에 있던 구멍이 결정적인 순간 나타나기에 행여나 놓친 부분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야 했다. 틈틈이 사단 정보과와 통신과를 방문해 각종 비문 점검 및 보안점검 대비한 교육을 받고, 보안기기 상태도 점검해야 했기에 바쁘게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무언가 쉴 새 없이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업무 누락에 대한 불안감에 선뜻 부대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의 준비 시간이 지나고 기다리던(!) 보안감사의 날이 되었다. 기무부대의 간부와 사령부 보안과에서 합동으로 실시하던 보안감사 당일은 준비과정에 비할 바 못하게 순탄하게 흘러갔다. 큰 지적사항은 없었으며 점검을 하러 오신 분들에게 100% 완벽이란 없으므로 몇 가지 작은 지적사항은 있었지만 치명적이지 않았다. 보안을 담당하던 우리 부서에서는 따로 지적받은 사항도 없어, 책임부서에서 과실이 발생하는 민망한 상황도 맞닥뜨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날 저녁은 대대장님과 부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함께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수고했다는 인사와 격려가 오갔지만 보람보다는 씁쓸함이 앞섰다. 일을 하며 나에게 견디기 힘든 지점이 어느 부분인지 명확히 드러났다. 일 자체의 힘듦보다는 그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마주해야 하는 누군가의 무례함이 견디기 힘들었다. 군에서는 업무의 성과에 대한 칭찬보다는 과실에 대한 질책이 크게 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을 하다 보면 강하게 업무를 추진해 나가는 몇몇 동료나 상관들을 맞닥뜨릴 때가 있었다. 질책도 싫을 테고, 때로는 장기복무와 진급을 앞두고 있기에 필사적이던 그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럼에도 무례하다 싶게 업무를 해나가는 모습에 마음에 생채기가 날 때가 있었고, 나는 그 생채기를 견디느니 차라리 잘못한 일에 대한 질책을 받는 것이 나을 정도로 마음에 내성이 없었다. 하지만 일을 위해 모인 집단에서 마음의 무게감을 해결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니, 나는 주어진 시간 동안 내 몫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운영 장교로써의 첫걸음을 내딘밤이 그렇게 복잡한 생각들과 함께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과제를 잘 마쳤으니 오늘 밤에는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겠지...


비 온 뒤 날이 선선해 아침에 달리고 돌아왔다. 기분 좋은 아침의 상쾌함이 모두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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