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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24. 2022

운영 장교 삶의 한 복판에서

나의 삶은 어디 있을까.

 운영 장교 시절 하루하루가 바빴다. 참모부는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였기에 늘 많은 행정업무에 둘러싸여 지냈다. 군대의 업무라는 것은 정해져 있는 듯 보여도,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끝없이 살피고 수정하고 손봐야 빈틈을 겨우 메울 수 있는 업무도 많았고, 상급자의 검토에 따라 수정을 거듭해야 했으며, 수시로 내려오는 대대장님과 상급 기간의 지시사항 및 각종 검열에 대비하다 보면 일은 끝이 없었다. 낮에는 걸려오는 전화 및 지휘통제실에 찾아오는 인원들과 외부 업무들을 상대하다 보면 업무는 정규 근무시간 내에 끝낼 수 없었기에 야근은 거의 매일 정해진 수순이었다. 늘 퇴근이 하고 싶었다. 숙소에 가도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나, 즐거운 일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업무보다는 나았다. 정확히는 부대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럼에도 표면적으로는 (정상적인) 군 간부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늘 운영 장교의 직책의 옷을 입고 있어야 했다. 

  어떻게 사는지도 모르는 채 삶이 흘러가고 있었다. 당시 나는 미혼이었고 혼자 지내는 삶이었기에 나만 관리하면 되었음에도 나를 살필 여유가 부족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부대에서 보냈고 일을 하는데 시간을 썼다. 퇴근해서는 흔히 말하는 개인정비(샤워, 빨래, 청소 등)를 하기에도 바빠서 수면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여가는 잊은 지 오래였고, 어쩌다 일찍 마치는 날이면 갑자기 주어진 시간에 뭘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고 공허했다. 근처에 근무하는 동기들과 연락해 시간이 맞으면 함께 식사를 하거나, 만날 사람이 없으면 기분전환을 위해 피부관리나 손 관리를 받거나 쇼핑을 하고 독서를 하며 어떻게든 그 시간을 견디기 위해 노력했다. 너무 힘든 날은 잠깐 본가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한 발버둥은 찰나의 위안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원래의 내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던 사람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의 인생은 내가 없는 상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궁금했다. 군 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계신 분들은 당최 가정생활을 어떻게 보내실까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내 기준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유별나게 헌신적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전역 자원이기에 그나마 느슨하게 지냈고 전역을 몇 달 앞둔 시점에서는 당시 운영과장님의 배려로 많은 날들을 정규 근무시간을 마치고 18:00 이전에 퇴근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그분들을 부대에 두고 먼저 퇴근했고 다음날은 어김없이 아침 일찍 그들과 마주해야 했다. 그럼 그분들의 군인으로서의 말고 개인으로써의 삶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일까. 나는 궁금했다. 어떤 이유든 간에 그분들은 스스로 군에 남기를 선택했을 것이고 나는 다른 삶을 원했기에 전역을 택했다. 나에게 허락된 삶의 시간들을 모두 군에서 보낼 자신이 없었다. 예쁜 옷과 액세서리, 염색과 화장이 그리웠고, 해외도 자유롭게 나가고 싶었다. 군에서는 이 모든 것들이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서 내면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을린 피부와 전투복에 갇힌 몸에 점점 사복은 겉돌았다. 이렇게 나이 들어 버린다면 젊은 시절의 내가 너무 그리울 것 같아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가 억울했다. 물론 이것은 단지 나의 입장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생각과 기준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으므로.. (열정적으로 군 생활을 하며 행복하게 개인이 삶을 꾸려가고 계신 분들에게 행여나 누를 끼칠 일말의 마음도 없음을 밝혀둔다. )

 전역한 뒤 어느덧 군생활을 했던 시간 이상으로 시간이 많이 흘렀다. 전역이 인생의 해답은 아니기에 극적으로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삶은 늘 호락호락하게 곁을 내주지 않았고, 군인 시절 원하던 것이 가능하게 되자 오히려 그것들에 대한 갈망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 자신의 마음의 목소리를 들을 여유가 생겼다. 그때도 지금도 격하게 '나 여기 있어요'라고 소리치고 있던 나의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모든 순간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사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마음의 소리를 따를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고 움직이게 되었다. 지금도 자주 비틀거리고 때로는 넘어지만 그럼에도 또 오늘 하루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성실히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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