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나 개인적인
한 작가를 좋아하는 데는 책 한두 권이면 충분하다. '사랑의 이해'라는 드라마와 책으로 호감을 느낀 이혁진 소설가는, '광인'을 통해 굳히기에 들어갔고 그의 작품은 믿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확하고 예리한 문장과 뜨거운 글, 단단한 현실을 기반으로 쓰인 빈틈없는 소설. 모호한 시공간이 아닌 실제 존재하는 시공간 위에 써진 사실적인 글. 놀랍게도 그의 책에서 정확하게 그 본질이 묘사되는 '사랑'은 처음부터 그의 주력분야는 아니었다. 이혁진 작가가 궁금했다.
호감이 생긴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나는 그에 대한 정보들(사진, 인터뷰 기사 등등)을 찾아보는데 인터뷰에서 다뤄지는 그분의 커리어를 보며 느꼈다. 롤모델 삼고 싶은 분 임을. 경제학과 출신으로 잡지사 기자를 거쳐 조선소 근무까지. 맥락 없이 이어지던 자신의 커리어는 진작에 망가졌다고 인터뷰 간 유쾌하게 말하던 작가. 그는 소설을 쓰고 싶어 마침내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소설 속에 생생하고도 날카롭게 녹여낸 기반 위에 소설을 쓴다.
그가 소설가가 되던 일련의 과정을 상상해 본 나는 그를 공식적인 소설가로 만들어준 그의 첫 책 '누운 배'(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에서 생각지 못하게 그의 뜨거움과 생생하게 조우한다.
-글을 써보고 싶어.(중략) 어떤 건지 모르지만 아무도 쓰라고 한 적 없는 거. 내가 쓰고 싶고 진짠 거 같은 걸 써보고 싶어.
-도망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글이었다. 한때 내가 잘한다고 인정받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랐지만 가장 먼저 도망쳐온 것이었다. 그 끝을 한번 보고 싶었다. 내가 최선을 다했을 때 어떤 것이 나오고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했고, 그것만큼 궁금한 것은 없었다. (중략) 나는 비로소 내가 되겠지만, 그 나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하지만 망설이기만 한다면 내 뒤에 쌓이는 날들은 나를 더 늦고 무모하고 무책임하게 만들 터였다.
-(작가의 말) 그만두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기어이 끝까지 써내는 것밖에 없었다. 그것을 확신하기까지도 3년이 걸렸다. (중략) 이 소설 한 권이 읽는 사람에게 생각의 재료나 밑밥으로 쓰인다면, 또 세상과 우리 자신에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화할 수 있는 말머리가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소설이지만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작가 본인의 이야기라는 것을. 그 진정성과 열정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울컥해지는 책이었고, 그의 바람대로 읽는 이에게 생각의 재료와 밑밥이 되는 글이었다. 앞으로도 그의 글을 기다리게 될 것 같다.